화려한 영상미를 장기로 삼는 리들리 스콧 감독이 구약성경의 모세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었다. 평소 스타일대로 웅장한 화면을 즐길 수 있지만, 캐릭터들이 좀 빈약하고 스토리는 밋밋하다. 아마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성경 속 이야기인지라 자세한 재해석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거나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그 바람에 압도적인 화면과 비교되어 내러티브가 휑한 느낌이다. 

** 이하 영화 내용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글래디에이터"에서 역사 속 가상인물을 표현한 적이 있고, "킹덤 오브 헤븐"에서 꼼꼼한 고증을 자랑했는데, 이번에는 그 둘을 섞은 듯 보인다. 고대 이집트와 역사 속 인물로써의 모세를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빈약한 스토리임에도 개인적인 추측이나 상상들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이집트 문명이나 시대상은 정말 치밀하게 고증한 것 같다. 전쟁씬이나 도시경관은 충분히 역사적 재현이라고 생각된다. 

영화는 야훼를 믿는 히브리인들의 지도자인 모세와 신을 인격화한 이집트 왕인 람세스의 대결에 촛점을 맞춘다. 이 둘 간의 성경적인 결론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지만, 역사 속 인물인 모세와 람세스를 다른 시선들을 본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영화가 아주 흥미로웠다. 영화 역시 성경의 결과를 따르고 있긴 하지만, 희미하게나마 그 해석을 현실적으로 접근해 보려는 흔적도 남겨두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적 해석으로 근거를 삼기에는 부족하지만, 우리나라에는 크리스티앙 자크라는 고고학자가 쓴 "람세스"(전 5권)라는 소설이 번역되어 있다. (소설이다!!) 인터넷이나 루머로 떠돌고 있는 내용들과 비슷한 내용들을 찾을 수 있는데, 중요한 건 지은이가 고고학자라 현실적인 기반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는 점이고, 소설 내용은 "람세스"가 주인공이고, "모세"가 조연이라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모세가 이끈 엑소더스를 영화와는 전혀 다르게 해석해 놓고 있는데, 너무 그럴싸해서 기존의 상식이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소설이라는 점과 유대교, 카톨릭 그리고 개신교와는 반대되는 입장에 서 있는 시선을 감출 수 없어 읽고난 후에 이런 부분을 상당히 감안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수메르 신화나 성경에 포함되지 않은 외경들이 성경이 역사의 기록이면서도 상당히 설화적인 면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기에 소설 "람세스"의 해석 역시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들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영화가 신화 속 모세를 현실적인 수준으로 변모시켜 압제로부터 자유를 찾으려는 소수 민족의 도전을 스펙타클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과 연관되어 흥미진진했다. 이런 시도들은 이미 여러 차례 있어왔지만, 종교적인 해석과 역사적 해석 혹은 현실적 해석 사이에 불협화음때문에 언제나 조심스러웠는데, 리들리 스콧 감독마저 이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성경 속 모세와 소설 속 "람세스"에 관한 희미한 기억들..

어린 시절 개신교 교회를 다녔던 적이 있었기에 성경을 통해 모세라는 인물에 대해 익숙한 편이지만, 이제는 너무 시간이 흘러버렸다. 소설 "람세스" 또한 몇 년 전에 한 번 읽은 수준이라 인터넷에 떠돌았던 얘기와 섞였을 가능성은 있지만, 성경 속 "모세"와 정치적 인간 "모세"에 대한 상반된 해석이 상당히 충격적이었기에 어설프게나마 기억을 적어본다. 

성경 속 모세는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 핍박받고 있다는 히브리인들을 인솔해 오늘날의 이스라엘인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 왕궁에서 왕위후계자인 "람세스"와 같이 성장했고, 자신이 히브리인임을 알게 된 후 이집트 병사를 죽인 죄로 도망쳤다가 유대인들의 창조주인 야훼의 부름으로 인해 돌아와 람세스와 대적하게 된다.

람세스가 모세의 요청에 순순히 응하지 않자 진정한 신인 야훼의 뜻이라며 10가지 재앙이 닥칠 것을 경고하고, 이 재앙을 겪은 람세스는 히브리인들을 놓아주게 되나 곧 뒤쫓아가다가 홍해의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 이후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가나안땅을 향해 나아가지만, 오랜 세월 사막을 헤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이집트로부터 탈출했던 대부분의 히브리인들은 죽게 되고, - 심지어 모세조차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 그의 자손들과 소수의 살아남은 사람들을 여호수아가 이끌고 마침내 오늘날의 이스라엘에 도착해 기존의 정착민들을 무찌르고 나라를 만들게 된다. 

반면 소설 "람세스"의 경우에는 "모세"를 아주 정치적인 인물로 묘사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본래 히브리인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왕궁에서 람세스와 권력다툼을 하다가 밀려나 변방으로 쫓겨간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후 히브리인의 요청인지 아니면 하층민을 다루기 어려워진 이집트 권력층의 계략에 의해서인지는 몰라도 히브리인의 지도자로 지명받았다면서 돌아온다. 하지만, 성경에서와 마찬가지로 모세는 말더듬이 증상이 있었거나 히브리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히브리인인 형 아론이 대변인 역할을 하게 된다. 

야훼가 내린 열 가지 재앙 대신 자연재해와 하층민 내부의 반항군들이 게릴라식 테러로 인해 사회가 불안해진 것처럼 서술한 뒤, 마침내 람세스는 히브리인들에게 모두 이집트를 떠날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잘 기억나지 않는 어떤 이유로 뒤쫓다가 흐르는 모래사막을 만나 추적을 멈추게 되었다고 하며, 이 흘러다니는 모래사막을 잘 아는 히브리의 반항군들은 모래가 갈라져 길이 생기는 곳으로 잘 이동해 무사히 빠져나갔고, 이 지역을 잘 모르는 이집트군은 위험부담이 커서 그냥 되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양 쪽의 설명에 크게 공감하는 편은 아니다. 왜냐하면 역사란 최대한 객관적으로 기록되려고 해도 어렵고 중대한 유산임에도 종교들은 자신들의 진리를 근거로 역사나 기록 등에 간섭했던 경우가 많았고, 대개 왜곡이나 훼손이라는 불명예로 치부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의 역사나 미디어들 중 진실로 객관적인 것은 없다고 보는 편이다. 하지만, 하나의 사건이나 기록들 혹은 흐름들에 대한 서로 상반됐거나 동떨어진 의견이나 해석들을 충분히 들어보면 그나마 진실의 언저리쯤에 묻어있는 해석정도는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미 성경 속 모세를 지지하거나 옹호하는 의견들이 지배적인 상황이라 여기서는 람세스를 옹호하는 쪽을 보면서 공감갔던 개인적인 의문들을 적어둔다.)

성경 속 기록에 따르면 히브리인들이 이집트에 정착하기 시작한 건 이집트가 히브리인들을 노예사냥한 것이 아니라 야곱의 후예들 중 요셉이란 인물이 이집트의 고위관리가 된 이후부터라고 기억한다. (예수의 양부인 요셉이 아니다.) 이후 오랜 세월이 지나 억압을 받았다고 하는데, 기억으로는 계층적 차별이었고, 이집트 사회의 하층민들이었지만 기득권층의 곳곳에서도 머슴이나 하녀로 일하는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지도를 보면 이집트와 이스라엘은 거리상으로 (걸어서라도) 몇 십년을 헤맬만큼 동떨어진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히브리인들을 사막으로 이끌고 갔고, 많은 히브리인들이 사막에서 죽어갔다. 이 부분때문에 모세가 이집트인들의 계략에 의해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축출하는 역할을 맡은 스파이였을 것이라는 황당한 주장도 있었다.

모세가 처음 돌아왔을 때부터 히브리인들은 그를 반겨하지 않았고, 이는 사막으로 나가자마자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리고 곧 우상숭배를 일삼았다는 증거와 함께 모세가 히브리인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맞물리는데, 어쨌거나 결과는 사실상 처음의 의도와는 많이 달라진 게 사실이다.

핍박받는 동족인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에서 구해 가나안으로 데려다 준다고 했지만, 이 때 나온 사람들의 대부분은 사막에서 죽게 된다. 물론 동족이라는 개념에서 보면 분명 구출해 준 건 사실이다. 그의 후손들이 이스라엘에 정착해 오늘까지 살아가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부분은 오랫동안 영화적인 해석을 허락하지 않을 것 같다. ^^;;

소설 "람세스"에서는 이집트 역사 속에서 람세스가 상당히 훌륭한 측에 속하는 왕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도 "모세"에 대한 반론의 한 축으로 삼고 있다. 이집트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지만, 지은이가 고고학자이니 나름 믿어볼 만한 부분이 아닐가 싶다. 역사적 고증이 잘못된 소설은 아무리 사실이라도 제대로 출간될리 만무하고, 설사 출간됐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비판에 시달려 책의 판매와 함께 각종 기록이 남아있어야 한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보면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이 가지는 한계는 모세를 현실로 이끌어냈지만, 영화 속 캐릭터인 "람세스"를 그냥 병풍으로 내버려둔 것에 있지 아닐까 싶다. 람세스는 이집트의 정서상 살아있는 신이었지만, 역사적 인물로는 그 괴리감 강한 신의 대리인 자리에서 나름 성실했던 왕이기도 했지만, 이 둘을 융합해 묘사하지는 못했다. 람세스가 크리스띠앙 자크의 소설 속 "람세스"처럼 묘사됐다면 영화 속 홍해 장면은 더욱 훌륭하고 드라마틱한 장면이 됐을 것이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