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툴바









1 42 04 06 088 198 - 에드몽 보두앵

숫자는 사회보장번호를 뜻하는데, 서양인이 그린 수묵화느낌의 그림체가 인상적이다. 한 소년이 최초로 도둑질을 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노동과 돈에 관한 작은 우화다. 이런 스토리는 이제 좀 흔해져서 크게 새롭지는 않다.  


백만장자의 꿈 - 토마스 오트

두꺼운 종이를 긁어내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방법으로 작업한 그림체인데, 스토리에 느낌에 걸맞게 검은색으로 아주 다크한 분위기를 낸다. 스토리가 짜임새 있는데, 돈을 쫓아 벌어지는 비극들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계속된다. 짧게짧게.. 


포기 - 페데리코 델 바리오

천사와 악마가 부자를 사이에 두고 경쟁을 벌이는데, 후반부에 풍자가 코믹하다. 만화가가 만화 속의 천사와 악마를 창조한 신의 역할로 나오는데, 만화 연재가 끝나면 돈을 받게 되니 만화 스토리가 어떻게 되든 신경 안쓴다는 식으로 얘기하다가 출판사쪽 캐릭터가 만화 연재를 무기한으로 늘이겠다는 통보를 해오자 괴로워하는 모습이 익살스럽다. 이 부분을 제외하면 별로 재미가 없다. 


다나에 - 프뮈르 

설정이 재밌는데, 정신머리 없는 부자가 사람들에게 실제로 황금비를 뿌리고자 금덩이를 모아 기구에 태워 하늘로 올려보냈다가 벌어진 비극에 관한 얘기다. 하늘에서 떨어진 금덩어리 비를 맞아 건물이 부서지고, 사람들이 죽어가서 뒷감당을 위해 모인 정치가, 은행가, 법조인들의 태도가 압권이다. 부자의 자기반성 역시 공허롭다. 제법 풍자적이긴 한데, 어쩌란 소린지는 모르겠다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불량중년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쥐 ", " 페르세폴리스 " 는 르포문학 ( 기록문학 ) 의 만화이고, " 팔레스타인 " 은 코믹 저널리즘 ( Comic Journalism ) 의 만화다. 
전자는 역사적인 사건의 실제 당사자들이 표현한 만화이고, 후자는 제 3 자가 해당 지역 혹은 사건을 바라본 시각을 담고 있다. 전자는 그래서인지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반면, " 팔레스타인 " 은 상대적으로 만화적인 재미가 스며있으면서도 객관적인 평가도 덧붙여져 있어 메시지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312쪽 발췌 - 팔레스타인 역사와 분쟁 - 최진영


만화의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알게 되는 그곳 사정과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읽다 보니 이런 부분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도드라지게 그린 게 아닌가 싶다. 

안경을 쓴 주인공 ( 조 사코 ) 은 항상 제 3 자의 입장을 일깨우는 멘트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허술한 듯 허탈한 유머를 구사해 긴장을 적절한 때에 풀어준다. 팔레스타인의 당시 상황이 워낙 심각해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름 꽤 웃긴다. 

이란,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의 중동(?) 지방에 대한 얘기는 접하기 힘들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만화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살펴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중심에 놓고 꾸미지도 비하하지도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곳에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폭압적인 정권이 있었다. 

" 영광의 탈출 ( 1960, Exodus ) " 라는 이스라엘 건국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다. 어릴 때는 명작처럼 보였지만,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스라엘 건국은 영국이 처음 손을 댔고, 미국과 소련이 마무리지어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사태를 야기했다. 시오니즘은 이런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의 땅에 정착하려는 의지를 뜻한다. 인티파다는 " 각성, 봉기 " 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해 벌이는 민중적인 봉기를 뜻한다고 한다. 몇 차례 대규모로 진행됐고, 잠정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듯 보인다.  

목차보기


진지한 만화책들 중에 정말 저널리즘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있어 좋다. " 오리엔탈리즘 " 을 주창한 에드워드 사이드가 조 사코에게 보내는 메시지나, 팔레스타인 상황을 1945년부터 2002년까지 시간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후주는 만화가 보여준 심각성을 더욱 자세하게 알려준다.

최근 조 사코는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  을 발표했다. 아직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불량중년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영화, 애니, 만화, 미드 같은 것들을 꽤나 보아온 터라 가끔 영화를 보러 가는 사람과 많이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영화를 볼 때 몇 가지 고려해 보는 것들이 있다. 꼭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급적 영화를 보고 시간낭비, 돈낭비하는 후회막급한 일을 저질러 정신적인 공황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기 위해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습관화된 것들이다.


엄청난 기대보다는 느긋한 기다림

그지같은 영화에 오고가는 차시간, 영화보는 시간과 간식비용까지 흘려버리고 나면 인생이 참 퍽퍽한 느낌이다. 최악의 경우, 주변 사람들 것까지 덤으로 시궁창에 쳐박은 때라면  세상에 증오(?)라는 것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곤 한다.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거의 트라우마 수준이다. ^^;; 다행이 그런 사태는 오래 전 사건들로 정리됐지만 언제 다시 체험하게 될 지 알 수 없는 일이라 천천히 영화 고르는 습관을 길들여 왔다.

쓰잘데기없이 부풀어 버린 기대감으로 영화를 보고 쌍코피를 흘리느니 실패확률이 적은 영화를 자주 보는 것을 선호한다. 이런 식으로 영화를 자주 보게 되면 영화를 즐기는 방법도 늘어나고, 비교적 더 많은 그 영화의 장점을 발견하게 된다. 좋은 영화는 언제나 기다려준다. 조바심 낼 필요가 없다. 지뢰만 밟지 않으면 된다. 


개인적인 취향과 접근 방법

필요한 정보는 최대한 접하지만, 믿는 편은 아니다. 알바성 댓글, 허영투성이의 광고 카피는 광고카피로만 봐준다.
느닷없는 영화가 등장해 엄청난 흥행을 했다고 하는 경우 일단 주의한다. 이런 영화는 언제나 기다려줘야 한다.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은 아니고, imdb, 구글을 통해 출처를 천천히 찾아보거나 신뢰할 만한 영화잡지, 영화기자 혹은 영화 블로그에 정보가 올라왔는지 살펴본다. 취향에 맞는지, 감상포인트는 무엇인지 그밖에 영화 외적으로 살펴봐야 할 요소들이 있는지 점검해 본다. 

제일 중요한 요소는 역시 감독이다. 실제 영화는 감독과의 대화라고 보는 견해가 많다. 영화를 판단할 때, 그 감독의 전작들을 알고 있으면 고르기 쉬워진다. 화면빨, 스타일이 대개 비슷하다. 가끔 확 발전하거나 퇴보하는 경우가 있는데, 퇴보했을 때 조차도 좋아하던 흔적들은 묻어난다. 물론 실망이지만서도.. 

영화잡지, 기사, 블로그를 살펴볼 때는 감상포인트를 찾기 위해서다. 가끔 좋은 영화인데 감을 잡지 못했거나 감상포인트를 몰라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가 있다. 의상, 음악, 시대적 상황을 인식해야 알 수 있는 내용들이 나오는데 전혀 준비가 안된 경우 다시 봐야 하나 싶은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

편견이긴 하지만 " 웰메이드 " 란 말에 현혹되곤 한다. " 초흥행작 ", " 블럭버스터 " 란 단어는 안중에도 없다. 하지만, " 저평가 ", " 매니악 ", " 웰메이드 " 란 단어가 들어간 영화치고 화면이 허술한 경우는 별로 보질 못했다. 물론 아둔한 마케팅 방법으로 인해 " 웰메이드 " 란 단어가 고생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에는 트레일러만 봐도 대강 감이 온다. 

공포 장르, 여성 영화나 기타 엽기적인 것들을 빼고는 대부분 보는 편이라 굳이 취향에 어려움은 없다. 간혹 홍콩 영화가 지겨워질 때도 있고, 예술영화가 답답해져서 외면하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봐두곤 한다. 편식은 좋지 않다. 

개인적으로 취향 못지 않게 영화를 제대로 즐길 준비가 되어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몸도 피곤하고, 머리도 복잡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경우에는 일단 화면이 화려하고 액션이 박진감 넘치는지를 살펴보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활기찬데, 뭔가 허하다면 감상포인트가 확실한 영화들을 기억해 뒀다가 찾아보는 편이다. 

 



영화는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ㅋㅋㅋ

좋은 영화를 찾기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그 기준들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고,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이 변하기에 영화도 변하게 된다. 빛을 더하는 경우도 있고, 퇴색되는 경우도 있지만,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때에 만나게 되면 좋은 추억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 보는 사람은 되도록이면 준비도 하고 있어야 하고, 되도록이면 받아들이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으며, 깨어있는 눈빛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이 즐기지 못한 부분들까지 찾아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자신만의 명작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온통 비판하는 영화에서도 맘에 드는 이유를 수없이 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과정에서 그 사람의 많은 부분을 엿보게 된다. 감독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와는 별 상관없이 감독에게 들려줄 독특한 얘기들일 것이다. 영화에는 등장인물들의 대화와 함께 감독과 관객의 대화가 같이 들어있다. 

누구와 대화할 지를 고르는 것 못지 않게 얘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만 확인한다면 절반은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불량중년

댓글을 달아 주세요




" 페르세폴리스 " 도시 이름으로 참 근사하게 들린다. 뭔가 있어 보이고, 한때 잘 나갔을 것 같은 고대 도시 이름 같다. 검색해 보니 실제로도 그런 모양이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do?docid=b23p2128a

그런데, 1980년대에 이란에서 10 대 시절을 보낸 여성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 만화의 제목이 왜 " 페르세폴리스 " 일까?

지은이인 마르잔 사트라피는 외부에 알려진 " 이란 " 의 모습과 다른 실제적인 " 이란 " 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 이란 " ( Iran)  은 " 아이리아나 바에조 Ayryana Vaejo " 에서 유래한 것으로, 아리안족의 시원(始原) "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1권 머릿말에 있는 저자의 말 이외에는 별다른 설명이 없어 만화를 이해하는 데 애를 먹었다. 사실 페르시아와 아랍이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이란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은 이슬람 혁명이란 것과 이라크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었다는 단촐한 기억외에는 아는 게 없어 만화에서 전개되는 스토리가 정말 별나라 얘기처럼 보일 때가 많았다.

전체적으로는 " 이란 " 이라는 나라, " 이슬람 " 이라는 종교, " 여성 " 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얘기인데,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섬세하다. 만화 그림체는 그렇지 않지만서도.. ^^;;

1권_표지

출처 : DAUM 책


1권은 지은이가 유럽의 오스트리로 떠날 때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직 10 대 초반의 어린이 시점에서 바라본 " 이란 " 의 당시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다. 국왕 통치에 대한 반대혁명, 종교적 억압, 고질적인 사회계급 차별 등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혁명을 통해 나라가 이렇게 망가질 수도 있구나 싶은 건 처음이었다. 꽤나 유서깊고 찬란한 문명을 지녔던 페르시아 지역(?)의 한 나라가 석유라는 자원과 서방세계의 정치술수에 말려 오랫동안 정신차리지 못하는 모습이 투박한 흑백만화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1권은 어른 세계에 영향을 받은 아이들의 모습이 짠하다. 혁명을 위해 감옥에 갔다온 아버지, 아저씨, 친척을 영웅화하면서 서로 비교하는 것이나 아이들 간에 다툼은 씁쓸하다 못해 애처롭기까지 하다.

주인공의 가정환경은 그 우울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축복받은 장소로 비쳐진다.

2권_표지

출처 : DAUM 책



2권은 오스트리아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돌아온 주인공이 " 여성 " 으로써 성찰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 페미니스트 " 가 아니라 그런지 좀 황당하고, 갸웃대는 부분이 많긴 하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모든 것을 그려낸 것에 박수를 쳐주고 싶긴 하다.

1권에 비해 성숙한 때라 그런지 정말 다양한 상황에 대한 여러 감상들이 올올이 들어있다. 고향을 떠난 외국인, 연인을 찾기 위한 애타는 처녀, 삶의 퍽퍽함에 못 이겨 자살까지 생각하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 이란 " 인들도 보통 사람임을 깨닫게 해준다. 여전히 억압적인 고국에 돌아와 다시 예전의 삶 속에 들어가지만, 이미 많은 것을 깨달아 버린 주인공은 스스로 결정하기 시작한다.

정말 존경스러운 건 주인공의 부모님들과 할머니다. 주인공의 철없는 방황,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정치상황, 어느 곳에나 있는 철부지 어른들 사이에서 주인공에게 더할 나위 없는 울타리가 되어 준다. 이분들이 사실상 진정한 현자들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 이란 " 이 좀 답답한 종교국가 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게 없으니 크게 왜곡될 건 없었지만, 이 만화를 통해 알게 된 " 이란 " 은 별로 호감이 가질 않는다. 지금은 이때보다 많이 변하긴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왜냐하면 그곳에도 보통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을 가진 사람들이 산다는 걸 이 만화를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속성상 쉽게 변하기 힘들다. 큰 위기가 닥치지 않는 한은..
아랍 혹은 이슬람의 테러리스트들이 서양에 대해 벌이는 일련의 활동이 파괴적이긴 해도 어느 정도 이유가 있긴 할 것이라 짐작하며 지냈지만, 이 만화를 통해 아주 조금 더 가까이 보게 된 " 이란 " 의 모습은 처연하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불량중년

댓글을 달아 주세요





블라덱 슈피겔만은 1906년 10월 11일에 태어나서 1982년 8월 18일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아냐 슈피겔만은 1912년 3월 15일에 태어나서 1968년 5월 21일에 자살했다. 
블라덱의 아들인 리슈 슈피겔만은 태어난지 몇 해 되지 않아 죽었다. 
블라엑의 아들인 아트 슈피겔만은 유태인 아버지가 겪었던 피의 역사를 " 쥐 ( MAUS ) " 라는 만화로 옮겼다. 
그들의 이야기는 두 권의 만화책으로 끝났지만, 그 여운이 언제 사라질지는 알 수 없다.  


책표지

출처 : DAUM 책




1권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나치 시절의 유태인 학살에 관한 또다른 좋은 작품 정도로 비춰줬는데, 2권에서는 왜 걸작인지 납득할 만 했다.


속표지에는 블라덱의 첫번째 아들 리슈의 사진이 그대로 등장한다.
작품 중간에는 블라덱의 수용소 시절 사진이 삽입되어 있다.
유태인인 블라덱은 흑인이 자신들의 차를 얻어타게 되자 히스테릭하면서도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강하게 드러낸다.
블라덱은 " 쥐 2 " 가 완성되어가던 중에 사망했다. 아트 슈피겔만은 당시의 느낌도 만화에 그대로 넣어놓았다. 아트 슈피겔만은 분명 뛰어난 작가다.
그림체 역시 일부로 이런 스타일로 그려넣었다는 걸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됐다. " 쥐 " 의 그림은 화려한 효과보다 만화가 전개되는 공간의 감각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런 스타일로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을 얼마나 제대로 소화한건지 스스로 의심스럽긴 하지만, 듣고 보니 정말 공감된다. ( 아트 슈피겔만은 자신의 작품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


MAUS II 여기서 나의 고난은 시작됐다. 

하나, 마우슈비츠 ( MAUSCHWITZ ) 

둘, 아우슈비츠 ( 시간은 흐른다, AUSCHWITZ ( TIME FLIES) )  

셋, ... 여기서 나의 고난은 시작됐다... ( ... AND HERE MY TROUBLES BEGAN ... ) 

넷, 구원되다  ( SAVED )

다섯, 다시 아냐에게 ( The SECOND HONEYMOON ) 

작품해설 - 조엘 개릭  

** 작품해설은 " 쥐 " 가 완간되기 전에 씌여졌지만 내용이 좋아 삽입되어 있다고 한다.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쥐2여기서나의고난은시작됐다
카테고리 만화 > 그래픽노블
지은이 아트 슈피겔만 (아름드리, 2007년)
상세보기


요즘 유태인들에 관한 이미지 혹은 소식이 아주 부정적이었는데, " 바시르와 왈츠를 " 이나 " 쥐 " 를 보게 되면서 그들에게도 자기반성의 역량이 충분히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우리나라는 아직은 모르겠다. ) " 쥐 " 는 정말 자기 얘기를 이렇게 객관적으로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냉정한 시선을 취하는데 그 바람에 역설적으로 더 깊은 울림이 느껴졌다. 생지옥에서 살아나온 유태인 아버지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한계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왜곡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태인 학살 만행의 산증인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문제로, 가족 간의 문제로 들여오면서도 양쪽 다 흐트러짐없이 서술하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준다. 

7천 여장의 스케치, 시퀀스 설정, 그림과 말의 배분이 300 여장에 농축되어있다. 1권에서 말한 영화적 편집 기법의 도입이란 것 같긴 한데,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덧붙이기 : 1권에 있던 " 지옥혹성의 죄수 " 편은 실제 어머니의 자살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된 아트 슈피겔만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마약 등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었고, ( 한달정도? ) 정신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웠기에 " 쥐 " 라는 만화를 통해 많은 부분을 해소하려고 했단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동일 조건 변경 허락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불량중년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