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시간여행을 다룬 재미있는 SF영화 한 편을 건졌다. 로버트 A. 하인리히가 1958년경에(혹은 1959년) 쓴 단편소설 "All you zombies"를 각색해 영화로 만든 "타임 패러독스"(Predestination)다. 호감가는 남자배우 이단 호크가 등장하고, 낯설지만 훌륭한 연기력을 보여준 사라 스눅이라는 여자 배우도 매력적이다. 


내러티브는 복잡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시간여행"을 다룬 SF영화에서 자주 보여준 설정들이고, 등장인물들이 많지 않아 이쪽 장르에 익숙한 영화관객들이라면 직관적으로 결말을 알 수 있을 정도다. SF장르에 거의 필수적인 특수효과 또한 요즘 나오는 다른 SF영화들에 비해 소박한 편이지만, 꽤 흥미진진하고 흡입력있게 전개되어 감독들 - "타임 패러독스"는 호주 출신의 스피어리그 형제(마이클 스피어리그, 피터 스피어리그) 2명이 만들었다. - 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도 괜찮을 것 같다. 


※ 타임 패러독스(Time Paradox) : 


시간여행을 하면 역사가 바뀌므로 시간여행은 애초에 할 수 없다는 시간 역설에 대한 가설. 

만일 당신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할아버지를 죽인다면 당신은 태어날 수 없다

따라서 당신은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서 당신의 할아버지를 죽일 수 없다

- 출처 : DAUM 영화


http://movie.daum.net/moviedetail/moviedetailStory.do?movieId=80073&t__nil_story=tabName




** 이하 영화 내용이 나옵니다. 심지어 마지막 반전에 대한 얘기도 나옵니다. 



영화 포스터출처 : DAUM 영화


대규모 범죄들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범죄예방본부(Temporal Bureau)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 시점으로 시간여행요원(A time-traveling agent)을 보내 범죄자를 체포하거나 제거하는 미스테리한 조직이다.(그래서 요원들을 "템퍼럴 에이전트"이라 부른다.)

- 출처 :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임의대로 요약한 내용입니다.


영화는 상당히 복잡해 보여서 도대체 3개의 반전이 무엇인지조차 헷갈린다. 아마 미혼모 "제인"을 임신시킨 것이 "존"으로 성전환 수술을 한 "제인"인 것과 "존"이 템퍼럴 요원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이단 호크의 얼굴을 가진 "존"이라는 것 그리고 베테랑 템퍼럴 요원인 "존"이 그토록 잡고 싶어하던 범인인 "피즐 바머"가 바로 "존" 자신이라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복잡한 설명은"시간여행"이라는 설정때문에 가능한데, 이 복잡성때문에 영화 속에서 허술해 보이는 부분을 짚으려는 관객들이 많아, 이 복잡한 패턴이 가진 일관성을 간과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일관성은 미래의 주인공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채워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엔딩에서 주인공이 왜 "피즐 바머"가 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는 스스로 "피즐 바머"가 되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마침내 찾아낸 "피즐 바머"를 죽이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타임 패러독스"는 "인터스텔라"처럼 과학분야나 우주항공에 관한 관심을 고조시키면서도 그 안에 메시지를 담고 있는 아주 괜찮은 SF 장르 영화다. "시간여행"이라는 재미있는 SF소재를 풀어내면서 그 안에 인간의 영원한 난제 중 하나인 반복되는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영화다. 


영화의 엔딩은 베테랑 요원 앞에 나타난 "피즐 바머"를 죽인 뒤, 머리카락을 쥐어짜며 고뇌하다 "피즐 바머"가 될 이단 호크의 얼굴을 비춘다. 누구나 이단 호크가 "피즐 바머"가 될 것을 인지하지만, 화면으로는 단지 얼굴 속 고뇌하는 각오 뿐이다. 이는 그가 만일 다른 선택을 한다면 이 시간의 수레바퀴는 바뀔 수 있을 것도 암시한다.(선택의 의미를 주지 않으려 했다면 실제 "피즐 바머"의 행동도 곁들였을 것 같다. 그래야 보다 확실해지기 때문이다.)


그의 고뇌는 간단하다. 그가 "피즐 바머"가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폭탄에 희생되지만, 그는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가 "피즐 바머"가 되지 않으면 뉴욕 시민들은 엄청난 대참사를 피할 수 있지만, "제인", "존", "템퍼럴 요원"이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결국, 한 개인이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희생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이 영화의 진정한 패러독스는 시간의 패러독스보다 그 시간의 패러독스가 영원히 반복되도록 만드는 인간의 이기적인 역설에 있다. 


영화의 광고문구는 “우리는 이 일을 위해 태어났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은 끝내 실패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피즐 바머"의 만행을 막는 것이 인생의 최고 목표라고 생각했던 주인공은 결국 존재하고자 하는 인간 본연의 속성으로 인해 "피즐 바머"를 탄생시키는 패러독스를 반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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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최고 레벨의 셰프(수석요리사, 주방장)가 살아가다 겪게 되는 좌절과 극복을 유쾌하고 훈훈하게 그리고 있다. 감독은 영화 주인공도 겸하고 있는데, 아이언맨 1편과 2편을 감독한 존 파브로다. 아이언맨 2편에서 함께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스칼렛 요한슨이 초반에 영화의 풍취를 더한다. "셰프"는 요리에 열정을 쏟는 주인공이 요리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 아버지로써의 자각도 이끌어낸다는 전형적인 힐링영화다. 


마케팅적인 "힐링"에 빠지지 않으면서 산뜻한 화면과 맛깔스런 요리들이 조화를 이루고, 신나는 음악과 소시민 의리남(?)들의 수다가 마치맞게 어우러진다. 요리 하나만 믿고 살아온 성인남성이 사회에서 겪게 되는 흔한 불운을 스스로의 노력과 고집으로 헤쳐나가고, 그 과정에서 희생됐던 아들과의 관계,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는 메시지도 아주 좋다. 


** 포스터의 안내를 무시하지 말 것!!




하지만, 중반이후의 푸드트럭 여행장면은 마이애미, 뉴올리언즈, 트위터 광고영상이 아닐까 의심될만큼 평범하다. 미국의 차도를 따라 풍경도 즐기고, 마을의 정취도 느끼게 해주는 장면들이 이상할 건 없지만, 셰프가 휴식을 정서적으로 휴식을 취한다거나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서 무엇을 깨닫게 되는 상황이 아닌 아들의 트위터 사용으로 인해 서서히 인기를 끈다는 내용에 불과하기에 과도한 분량이 할당된 게 아닌가 싶다. 미국의 다양한 사람을 보여준다고 하면 좋겠지만, 왠지 마이애미 쪽 사람들 혹은 히스패닉계 사람 다수와 뉴올리언즈 사람이 조금 나오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래서 번역된 제목인 "아메리칸 셰프"보다 원래 제목은 그냥 "셰프"가 낫지 않을까 싶다. 


물론 샌드위치는 정말 4달러에서 7달러 낸다면 사 먹고 싶을만큼 맛있어 보이긴 했다. 또한 1984년 브라이언 드 팔마와 알 파치노의 "스카페이스"의 주택 총격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마이애미 거리도 이쁘게 새로 색칠한 듯 아주 잠깐 등장해 줘서 좋긴 했다. 아직 저런 건물로 생활하는 모양이다. 말끔한 거리에 똑같이 생긴 목조건물 같은 집들이 화사한 파란색으로 나란히 보이는 장면이다. 


개인적으로야 프렌즈 시즌 3에서 처음 봤던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 겸 배우인 존 파브로와 웨스트 윙에서 변호사 역으로 나왔던 올리버 플랫,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스칼렛 요한슨, 존 레귀자모를 봐서 좋긴 했지만, 요리나 힐링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아니면 어필하기 힘들어 보인다. 셰프의 아내 역으로 나온 소피아 베르가라는 이쁘긴 하지만, 말투나 행동에서 좀 취향이 아니었다. 


저녁을 먹고 관람했음에도 추운 겨울에 극장을 나오니 양념이 잘 된 고기가 잘근잘근 씹히는 샌드위치 하나 먹고 싶어 두리번거리게 되긴 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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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옹의 저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처음에 5부작으로 기획했던 것을 인기가 솟구치자 7부작으로 확장했는데, 5부에서는 기존에 벌려놓은 것들을 꾸준하게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떡밥들을 두루두루 뿌려두고 계신다. 사실 읽다 보면 어떤 떡밥이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적어도 뿌려질 때만큼은 흥미진진하다. 




5부 2권에서 눈에 띄는 점은 전혀 화자가 될 것 같지 않았던 멜리산드레(Melisandre)가 한 챕터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혹시 누군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1부 시작부분에서 왕이었던 로버트 바라테온의 동생인 스타니스 바라테온을 옆에서 조종하는 붉은 여사제다. 빛의 군주인 를로르를 섬기고, 지금까지는 가장 흉악하고 요상한 마법들을 구사하는 존재다. 


초자연적인 존재로써는 북부를 향해 가고 있는 스타크 가문의 어린 아들 브랜도 있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자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멜리산드레와 다르다. 그러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마법과 주문과 전설 속 존재들, 그리고 드레곤에 대한 설명을 해주면서 평범한 독자들의 허기를 채워줘도 좋으련만 끝내 다른 화자들처럼 자신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면서 고민하고 노력한다. 


또한, 로버트 때부터 문제가 됐던 부채문제를 라니스터가 다 떠안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이언 뱅크가 월쪽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좀 뜬금없어 보이는 이 은행은 전쟁통이든 전쟁이 끝나든 자신들이 받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포기하지 못하는 집단이라는 걸 자신있게 내비친다. 온통 전쟁이라 사실상 권력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상황이라 뭔가 굉장한 비밀병기를 가지고 있지 않은 이상은 정말 엇박자적인 존재다. 월의 존 스노우에게 대량의 채무를 빌려준다. 도대체 어떻게 받겠다는 건지 알 수 없는데, 과정은 순탄해 보였다. 왠지 킹스랜딩의 스파이더나 리틀 핑거 쪽과 연결된 것이 아닌가 싶다. 마법적인 요소보다는 아무래도 자본가와 귀족적인 인맥이 그들의 힘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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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평점 외에도 다양한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은데, "상의원"같은 영화를 평가할 때 적절한 것 같다. 과소평가됐다거나 숨겨진 명작이라거나 화면으로는 볼 수 없는 의리가 있다거나 하는 류의 평가는 아니다. 단지 내 시간을 뺐었으니 돈을 받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한 위자료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괴변이 튀어나오는 영화들보다는 훨씬 좋다는 뜻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9천원 가량의 입장권을 구입하고 보려 한다면 재밌는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보다 한국영화계 발전을 위해 금전적 손해를 보전해주겠다는 약간은 갸륵한 마음가짐으로 보는 게 좋다고 본다. 혹시 앞의 글들이 비꼬는 것들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영화배우 한석규의 뛰어난 연기도 좋고, 울퉁불퉁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로 자리잡은 마동석의 어설픈 코믹연기도 좋다. 유연석은 드라마 하나로 인기를 모은 배우가 아니라 나름 연기내공을 갖췄다고 보여지기까지 한다. 정말 그 고리타분했던 조선시대 옷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이쁜데다 다양한 느낌을 가져 영화 속에서 가장 돋보인다.

이런 영화의 좋은 재료들은 만들어진 영화가 아무리 완성도 떨어지고, 맥빠지게 전개되더라도 그냥 사라져 버려지기에는 분명 너무 아까운 것들이다. 그러니 영화배우 한석규가 아직 티켓파워가 있고, 마동석은 아직 호감가고, 유연석은 더 기대해 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영화제작자들에게 보여질 수 있도록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겠다고 한다면 착한 사람들을 보듯 바라봐 주겠다.

대신 극장에서 영화 보고 욕할거 같으면 그냥 나중에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70퍼센트 할인할 때 구입해서 모니터로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적정가격대라고 보여진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영화 속 한복은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돈이 아깝지 않을만큼 볼 만하고, 등장하는 배우들은 과소평가됐다 싶을 정도로 호감가는 이미지의 조합과 연기력을 보여준다. 아쉬운 건 여기저기서 우왕좌왕하는 내러티브와 관객을 어떤 수준에서 보는지 알 수 없는 대사들이다. 

** 여기서부터는 영화 내용들이 나옵니다. 

영화포스터

출처 : DAUM 영화



감독은 "아마데우스"에서처럼 모짜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질투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영화배우 한석규씨가 연기를 잘해서인지 아니면 각본을 쓴 사람이 작업에 허덕이다 마무리 못 지은 건지 그도 아니면 제작사 이런 요소 넣어라 저런 요소 넣어라 간섭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토리가 잘 전개되다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너무 자주 맥이 빠진다는 점이다. 특히 어침장 조돌석(한석규 분)이 그렇다. 

자유로운 천재 이공진(고수 분)과의 관계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데, 가면갈수록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오락가락하기에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본래 주장했던 모티브를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한석규의 연기력이 아까울 정도로 뻔한 대사들이 괴롭다. 서로를 탓하며 틀에 박힌 질투라느니 법도를 무시한 난잡함이라느니 하는데, 너무 직설적인데다 그동안의 복잡미묘한 심리적 변화들은 들어있지 않아 클리셰같아져 버렸다.

굳이 아마데우스와 비교하자면,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에 대한 질투를 얘기할 할 때, 신에게서 받은 재능을 엉뚱한 데 낭비하는 모짜르트를 한심하게 보기도 하고, 왜 신은 독실한 살리에리가 아닌 철딱서니 없는 모짜르트에게 재능을 주었는지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더 깊은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적인 자기위안 등등의 다양한 심리적 변화를 대사에서도 분명히 드러냈다. 

조돌석 역시 이공진을 바라봤을 때 단순히 뛰어난 재능에 대한 질투 외에도 뛰어난 재능을 통한 신분 상승이 왜 중요한지 혹은 그 능력이 임금을 위해 어떻게 잘 쓰일 수 있을지 아니면 의복이 법도를 지켜야 하는 까닭에 대한 깊이있는 가치관의 부딪힘같은 것들이 드러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곰곰이 생각했을 때 웃겼던 건 역시 오프닝이었다. 오프닝은 현대에 그 옛날 조선시대 어침장이었던 조돌석의 작품을 훌륭하게 평가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엔딩은 조돌석이 이공진을 죽게 만든 후, 그의 작품을 상당 부분 모방했거나 아니면 이공진의 작품들보다 수준이 떨어졌던 자신의 작품세계를 유지했을 때 만들어진 한복들이 후세에 남겨진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 속에서 궁궐에 있던 이공진의 작품들은 대부분 수거되어 불태워진다. 여기서도 그냥 봐주기에는 무리한 부분이 있다. 이공진의 한복들은 문외한이 봐도 공들여지고 아름다웠다는 게 한 눈에 들어오는데, 태워지는 것들은 엑스트라급 옷들이다. "꼼수"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ㅋㅋㅋ)

그렇다면, 오늘날 옛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많이 왜곡된 것들일 수도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한복이 영화 속에서 신분과 권력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에 반하는 메시지가 들어있어 삐꺽거린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스틸컷

출처 : DAUM 영화



덧붙이기 : 여배우 박신혜와 이유비를 보는 재미도 있는데, 권력가들이나 경쟁자들에게 핍박받는 가련하지만, 당찬 궁전의 이미지로 박신혜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구슬프게 우는 장면에서 약간은 억울한 캔디처럼 울어버리는 바람에 정감은 더 가지만, 처연한 조선시대의 중전이 울었다고 보기에는 무리한 감이 있었다. 묘한 다중인격적인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신혜 울면 안돼~' 와 '중전이 저렇게 울면 쓰나'가 동시에 떠올랐다. 말로만 듣던 이유비라는 건 나중에 찾아보고 알게 됐다. 왜 찾아봐겠는가 이쁘게 나왔으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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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진 스노우"라는 번안된 영화 제목과 거울에 비쳐지는 어머니와 딸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를 봤을 때는 백설공주(Snow White) 동화를 현대식으로 변형한 소녀의 성장담이 아닐까 짐작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는 몰라도, 엄마가 거울 속의 딸을 보면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하며 묻는 영화는 아니었다. 만일 그랬다면 관객들은 몹시 혼란스러웠을 거다. 에바 그린하고 쉐일린 우드 중에 누가 더 예쁜지 판단해야 하는 문제는 솔로몬왕에게 물어봐야 할 수준이다. (영화 속에서는 엄마와 딸로 나오지만, 두 배우의 실제 나이차이는 12살 밖에 나지 않는다.) 보기좋게 틀리긴 했지만, 덕분에 겸손한 마음으로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 

** 이하 영화 내용이 나옵니다. 

영화 포스터

출처 : DAUM 영화



버진 스노우(Virgin Snow)란 한번도 밟지 않은 하얀 눈들을 가리키는 단어라고 한다. 영화를 본 뒤에는 원래 영어 제목인 "White Bird in Blizzard"(눈폭풍 속의 하얀 새)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철모르는 수컷들은 여자 처녀를 떠올리기 쉬운 "버진 스노우"로 바뀌었다.

아마도 캣 코너(Kat Connor, 여자 주인공)가 과거를 회상하면서 남자와 첫경험을 한 뒤 엄마와 같은 성이 되었다는 장면에서 따온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신은 서지 않는다. 미혼 남자로써는 공감하기 어려운 얘기지만, 대사에서 풍겨오는 뉘앙스는 약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흥미로운 대사였다. 

영화는 딸이 여자가 되던 날, 엄마가 사라지면서 영화 속 드라마와 미스테리가 동시에 진행된다. 감독이 가장 대중적으로 만들었다는 데, 이전 작품들을 보지 못해 얼마나 대중화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엔딩까지 버티기만 한다면 적어도 노력했다는 걸 인정해 줄 만하다. 인내의 열매가 달지는 못해도 새콤한 정도는 된다.

다른 영화들 속에서도 뻔하게 봤던 설정과 스토리적인 트릭들임에도 교묘한 내러티브 덕분에 관객들이 눈치채기 어렵다. 평소 감독의 작품들을 봐왔던 열혈영화팬들이나 스릴러 장르에 특화된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가 스릴러를 내세우고 있지 않으니 그냥 가볍게 즐긴다는 생각으로 메인 드라마를 따라가면 좋을 것 같다. 

이런 부분을 제외하면 소녀의 성장기 속에서 엄마의 부재가 가져오는 불안감을 표현하는 비교적 선명한 영화다. 이해할 수 없는 엄마, 이미 대화가 끊어진 엄마의 존재가 사라진 것을 여자로 성장하려는 딸은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실제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것이 결코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이 아니었음을 인정하게 되면서 훌쩍 커버렸다는 걸 자각한다는 식의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엄마의 성을 가지게 된 소녀는 비로소 엄마를 그리워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장면

출처 : DAUM 영화



불안감과 괴기스러운 기억들은 감독이 좋아한다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트윈 픽스" TV시리즈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냥 연극적인 연출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왠지 화면 속 배우들의 위치나 의도적인 배경들(굳이 말하자면 미쟝센들이라고나 할까)이 꽤 공들여 만들어졌고 높은 완성도를 가졌다고 보여진다. 

관람자가 성인 남성이라 그런지 - 여자들이 보기에 편협한 시선일 수 있겠지만 - 영화는 성장기 속 소녀가 엄청난 가능성을 지닌 신비로운 어린 여성이라기보다 철부지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순수하면서도 외롭고 치기어린 청소년임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인다.

영화 속 캣 코너는 자신의 주변에서 벌어나는 일상 속 알 수 없는 일들에 대해 쿨하고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받아들였다고 인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눈폭풍같은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는 하얀 벌판에서 그 의미나 진실을 외면한 채 스스로의 따스함만으로 눈 속에서 묻히는 하얀 새같은 존재였다는 걸 묘사한다. 그런 소녀를 일깨우는 건 스스로도 알 지 못하는 내면에서 가끔씩 보여주는 꿈들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사주팔자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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