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완전히 사라진 줄 알았던 기지촌에 관한 영화였다. 오래 전에 흑백사진들과 기사 혹은 관련 홍보물을 통해서만 접했던 곳을 스크린 화면을 통해 보니 아주 이질적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낯선 동네가 여태 있었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거미의_땅_이미지

출처 : DAUM

 
미군부대 근처에서 유흥을 제공하고 댓가를 받아 삶을 꾸려가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 기지촌이라고 알고 있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군인들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거나 군부대에서 나온 물품들을 몰래 거래했던 곳이다.

"거미의 땅"은 그곳을 기억하기 위해 찍혀졌고, 3명의 여인들을 등장시켰다. 
'바비엄마' 박묘연 할머니, 박인순 할머니 그리고 흑인혼혈 안성자 할머니가 그들이다. 

할머니들의 사연이 각각 한 챕터처럼 구성되어 있는데, 다큐멘터리임에도 의도된 설정들이 있어 뒤로 갈수록 극적인 효과를 자아낸다. 150분의 긴 상영시간이 부담스럽지만, 관람하면서 할머니들의 기억을 곱씹을 수 있는 점도 좋다. 감독이 보여주는 기지촌의 이미지들을 바라보다가 들려오는 할머니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있다. 




** 이하 영화 내용이 나오니 참고 바랍니다. ^^;;




처음 등장하는 '바비엄마' 할머니에 등장하는 공간은 주로 골목이었는데 왠지 막혀있거나 갇혀있는 느낌이 들게 했다. 감독들(김동령, 박경태)과의 대화 시간에도 "거미의 땅"은 기지촌 공간들을 찍기 위해 만들었다는 얘기가 나왔는데, 이런 부분이 의도적이었는지 물어보려다 허리가 아파서 참았다. 상영시간까지는 버틸 수 있었으나, 그 이후에도 장시간 못 일어날 줄은 몰랐다. ㅡㅡ;; 

그에 반해 두번째 등장하는 박인순 할머니의 경우에는 어둠 속에서 희미한 조명 하나가 화면의 이쪽 저쪽에 희미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마치 어둠 속에 묻혀졌어야 할 공간들이 힘없이 버티고 서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밝은 대낮에 갇힌 듯한 골목길들과 미미한 빛조차 차가울 듯한 밤의 모습으로 기지촌의 모습을 대변하려는 듯 보인다. 이는 다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안성자 할머니의 환상 속 공간과 대비를 이룬다고 보여진다. 

할머니들의 목소리로 듣게 되는 사연들은 여운을 갖게 하지만, 신파적이지 않아 좋다. 피해여성인냥 포장되지 않고 과장되지도 않고 어려웠던 시절에 내팽겨쳐진 공간에서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두운 저녁 산동네 같은 곳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헬리콥터 소리가 나고, 각 가정마다 마루에 불이들어와 작은 불빛들을 이룬 장면이었다.

헬리콥터(?)는 조금 후 산 뒤쪽에서 소리를 내며 하늘로 올라가는데, 당시의 기지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었나 싶다. 

아이들은 소리만 들릴 뿐 보이지 않았고, 산등성이를 가득 채운 집들과 불빛들은 자기들만의 사연을 나누는 듯 보였다. 미군은 삭막한 소리를 내며 떠나가 버리지만 저녁의 모습은 고요하기만 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안성자 할머니의 장면에서 얼굴없는 어머니의 모습은 이미 어디선가 사용한 설정같은 데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아 적어만 둔다. ^^;; 하지만, 그 흑백사진 속에 어머니 모습에서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며 들려주는 나레이션은 지금도 효과적인 표현이라고 판단된다. 




기지촌은 우리나라 사회가 잊고 싶어하는 기억 중 하나일 것이다.

대통령이 방문하여 외화벌이에 기여하고 있으니 애국자라는 식의 황당한 발언을 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로 편입되지 못한 많은 혼혈 한국인들을 양산해 낸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기지촌에 관한 기억들을 보존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여러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사람들을 몰지각한 이유로 외면하고 배척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지는 세상이 되서는 안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살아온 세월과 환경이 다르고, 너무 이질적이어서 쉬울리 없겠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접해 간다면 적어도 남이 만들어 둔 색안경을 끼고 보게 될 일은 적어지지 않을까 싶다. 바로 'Tour of Duty'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