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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시르와 왈츠를 " 이라는 이스라엘 애니메이션을 만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평소 애니메이션 원작을 만화로 각색하는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그간 봐온 만화들은 대부분 원작 애니메이션의 인기에 편승했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 바시르와 왈츠를 " 의 경우에는 원작 애니메이션이 낯설어서인지 좀 어려웠는데, 만화를 통해 천천히 다시 보니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 왜 제목이 " 바시르와 왈츠를 " 인지도 알게 됐다. 애니메이션은 어디로 본건지.. ㅡㅡ;; )


바시르와왈츠를대량학살된팔레스타인인들을위하여
카테고리 만화 > 그래픽노블
지은이 아리 폴먼 (다른,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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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년만에 처음으로...
레바논 전쟁의 끔찍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 16쪽


이 만화는 1982년 9월 16일 팔랑헤당 민병대라는 레바논 기독교 무장단체가 난민촌의 팔레스타일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 오늘날까지 정확한 희생자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3천명으로 추측하고 있고, 이스라엘 측은 800 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이 사건의 원인은 팔랑헤당 민병대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 바시르 제마엘 " 이라는 친이스라엘 지도자라는 인물이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갑작스레 폭탄 테러로 살해된 것이 발단이었다. 팔레스타인 무장 세력을 난민촌으로부터 색출한다는 명분으로 난민촌에 들어간 팔랑헤당 기독교 민병대는 사흘동안 학살을 자행했고, 그 절반 이상이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이었다고 한다.


" 이스라엘군이 학살 공범 "

분명한 것은 그 학살사건의 배후에 이스라엘군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민병대원들은 피의 복수를 바랐다. 이스라엘 국방부장관 아리엘 샤론은 ' 푸른 신호등 ' 을 켜주었다.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촌으로 들어가 학살극을 벌이는 동안, 이스라엘 군대는 아리엘 샤론의 명령에 따라 ( 영화 끝부분에서 보듯이 ) 난민촌 외곽을 탱크로 둘러싸고는 밤새도록 조염탄을 쏘아 올려 기독교 만병대로 하여금 마음껏 학살을 저지르도록 도왔다.

영화 [ 바시르와 왈츠를 ] 의 주인공 ' 나 ' 는 팔레스타인 난민촌 외곽을 포위한 부대의 일원이었음을 기억하지 못해 답답해한다. 그래서 친구인 정신과의사를 만났고 그의 충고에 따라 지난날 전우들을 찾아다니며 기억의 파편을 짜 맞춰 나간다. 베이루트 시가를 순찰하다가 적군의 기습사격을 받자, 바시르의 대형 초상화가 내결린 길거리에서 춤추듯 기관총 반동에 몸을 뒤틀며 마구잡이로 사격을 해댔던 전우도 만난다. ( 영화의 제목도 그 장면에서 따왔다 )

- 127쪽. 작품해설 중에서. 김재명/성공회대 겸임교수, 국제분쟁 전문기자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이 당시의 기억을 잊고 지냈고, 회피하고자 한다. 실제 그 사건에 대해 뚜렷한 주관을 가졌거나 책임을 밝힌 인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 감독인 아리 폴먼은 20년도 훨씬 넘은 사건을 다시 들춰내며 살펴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너무 접근하지도 않으면서 그렇다고 거리를 두지 않고 기억의 초상을 통해 당시 상황을 담담하게 비추고 있다. 데이비드 폴론스키라는 예술감독의 미적감각은 이 비극적인 상황을 극단적으로 대비시키며 애니메이션 후반의 반전에 더욱 감정을 실을 수 있게 한다.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극적효과는 빛을 발한다. 


무엇을 해야 하죠? 당신은 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죠?
쏴.
네?
나도 몰라. 그냥 쏴.
기도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그럼, 총을 쏘면서 기도해.

- 37쪽

 
주인공이나 친구들은 아무런 목적의식도 없이 전쟁에 동참했고, 전쟁을 하는 중에도 전쟁이 끝난 후에도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만화나 애니에서도 정신과 의사가 중요한 설정 중에 하나로 등장하는데, 인간심리의 방어기제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현실로부터 떨어져나가는 능력을 발휘하고, 등장인물 대부분이 그런 모습을 보이고 있다. 책임회피같은 모습인지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만화 속 대사들에서 전쟁상황에서 정신적인 균형이 사라진 인간들의 비참한 모습이 곧잘 드러난다.



나는 그때 참모본부에 전화를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난민촌에서 자행되고 있는 만행들을 보고했어요.
상관은 " 우리도 알고 있어. 명령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지. " 라고 했어요.
그 순간 나는 이스라엘 군대는 이미 이 사실들을 알고 있었고, 이 일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 107쪽

그는 막 잠에서 깨어난 목소리였지요.
팔랑헤당 민병대들이 기독교도의 이름으로 학살을 자행하고 있다는 말을 샤론에게 전하면서 이것을 멈추어야만 한다고 말했어요.
샤론은 내게 직접 목격했느냐고 물었어요. 나는 소문만이 아니라 학살을 목격한 사람이 아주 많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그가 " 내가 관심을 갖도록 말해 주어 고마워. " 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어요. 뭔가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샤론은 " 내게 애기해 줘서 고마워. 새해 복 많이 받아. " 라고 말한 게 다예요. 그러고 나서 그는 잠자리에 들었겠지요.
- 111쪽


작품해설에서는 이 애니메이션을 5.18 광주민주화 항쟁과 비교한다. 만화치고는 정치적 색깔이 너무 강하긴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는 먼나라 힘든 스토리 정도였으나, 만화를 통해 앞뒤 사정과 작품해설을 보면서 대사와 그림들을 다시 천천히 감상하고 있자니 요즘 우리나라 상황이 피부에 와 닿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레바논, 무슬림, 무장단체는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먼나라 얘기다. 그곳 사람들은 목숨걸고 하루를 사는 경우도 많고, 서로에 대한 적대감과 복잡한 정치상황으로 인해 이미 선악을 구별하기 힘든 상황이 됐다. 아리 폴먼 감독은 고발적인 애니메이션을 만들었으면서도 읽는 이들에게는 많이 부족한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아마 당사자들 중에 한명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도무지 뒤죽박죽이면서 서로에 대한 적개심으로 불타는 그곳의 상황이 지금은 얼마나 변했을지..

언뜻 무감감해 보이는 대사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입안이 씁쓸해진다. 애니메이션만큼은 아니지만, 만화 역시 충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덧붙이기 : 개인의 느낌보다 발췌가 많았는데,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대사만을 통해서도 이 만화가 보여주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WRITTEN BY
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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