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평점 외에도 다양한 표현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경우도 많은데, "상의원"같은 영화를 평가할 때 적절한 것 같다. 과소평가됐다거나 숨겨진 명작이라거나 화면으로는 볼 수 없는 의리가 있다거나 하는 류의 평가는 아니다. 단지 내 시간을 뺐었으니 돈을 받고 봐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한 위자료가 필요하다느니 하는 괴변이 튀어나오는 영화들보다는 훨씬 좋다는 뜻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9천원 가량의 입장권을 구입하고 보려 한다면 재밌는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보다 한국영화계 발전을 위해 금전적 손해를 보전해주겠다는 약간은 갸륵한 마음가짐으로 보는 게 좋다고 본다. 혹시 앞의 글들이 비꼬는 것들로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전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영화배우 한석규의 뛰어난 연기도 좋고, 울퉁불퉁하면서도 귀여운 캐릭터로 자리잡은 마동석의 어설픈 코믹연기도 좋다. 유연석은 드라마 하나로 인기를 모은 배우가 아니라 나름 연기내공을 갖췄다고 보여지기까지 한다. 정말 그 고리타분했던 조선시대 옷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이쁜데다 다양한 느낌을 가져 영화 속에서 가장 돋보인다.

이런 영화의 좋은 재료들은 만들어진 영화가 아무리 완성도 떨어지고, 맥빠지게 전개되더라도 그냥 사라져 버려지기에는 분명 너무 아까운 것들이다. 그러니 영화배우 한석규가 아직 티켓파워가 있고, 마동석은 아직 호감가고, 유연석은 더 기대해 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영화제작자들에게 보여질 수 있도록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하겠다고 한다면 착한 사람들을 보듯 바라봐 주겠다.

대신 극장에서 영화 보고 욕할거 같으면 그냥 나중에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70퍼센트 할인할 때 구입해서 모니터로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적정가격대라고 보여진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영화 속 한복은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돈이 아깝지 않을만큼 볼 만하고, 등장하는 배우들은 과소평가됐다 싶을 정도로 호감가는 이미지의 조합과 연기력을 보여준다. 아쉬운 건 여기저기서 우왕좌왕하는 내러티브와 관객을 어떤 수준에서 보는지 알 수 없는 대사들이다. 

** 여기서부터는 영화 내용들이 나옵니다. 

영화포스터

출처 : DAUM 영화



감독은 "아마데우스"에서처럼 모짜르트를 향한 살리에리의 질투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영화배우 한석규씨가 연기를 잘해서인지 아니면 각본을 쓴 사람이 작업에 허덕이다 마무리 못 지은 건지 그도 아니면 제작사 이런 요소 넣어라 저런 요소 넣어라 간섭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토리가 잘 전개되다가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너무 자주 맥이 빠진다는 점이다. 특히 어침장 조돌석(한석규 분)이 그렇다. 

자유로운 천재 이공진(고수 분)과의 관계가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하는데, 가면갈수록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오락가락하기에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강하다. 게다가 본래 주장했던 모티브를 드러내는 장면에서는 한석규의 연기력이 아까울 정도로 뻔한 대사들이 괴롭다. 서로를 탓하며 틀에 박힌 질투라느니 법도를 무시한 난잡함이라느니 하는데, 너무 직설적인데다 그동안의 복잡미묘한 심리적 변화들은 들어있지 않아 클리셰같아져 버렸다.

굳이 아마데우스와 비교하자면, 살리에리가 모짜르트에 대한 질투를 얘기할 할 때, 신에게서 받은 재능을 엉뚱한 데 낭비하는 모짜르트를 한심하게 보기도 하고, 왜 신은 독실한 살리에리가 아닌 철딱서니 없는 모짜르트에게 재능을 주었는지에 대한 원망을 드러내기도 하고, 더 깊은 뜻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심리적인 자기위안 등등의 다양한 심리적 변화를 대사에서도 분명히 드러냈다. 

조돌석 역시 이공진을 바라봤을 때 단순히 뛰어난 재능에 대한 질투 외에도 뛰어난 재능을 통한 신분 상승이 왜 중요한지 혹은 그 능력이 임금을 위해 어떻게 잘 쓰일 수 있을지 아니면 의복이 법도를 지켜야 하는 까닭에 대한 깊이있는 가치관의 부딪힘같은 것들이 드러내는 것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곰곰이 생각했을 때 웃겼던 건 역시 오프닝이었다. 오프닝은 현대에 그 옛날 조선시대 어침장이었던 조돌석의 작품을 훌륭하게 평가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런데 엔딩은 조돌석이 이공진을 죽게 만든 후, 그의 작품을 상당 부분 모방했거나 아니면 이공진의 작품들보다 수준이 떨어졌던 자신의 작품세계를 유지했을 때 만들어진 한복들이 후세에 남겨진 것으로 보여진다. (영화 속에서 궁궐에 있던 이공진의 작품들은 대부분 수거되어 불태워진다. 여기서도 그냥 봐주기에는 무리한 부분이 있다. 이공진의 한복들은 문외한이 봐도 공들여지고 아름다웠다는 게 한 눈에 들어오는데, 태워지는 것들은 엑스트라급 옷들이다. "꼼수"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ㅋㅋㅋ)

그렇다면, 오늘날 옛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많이 왜곡된 것들일 수도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아름다운 한복이 영화 속에서 신분과 권력과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에 반하는 메시지가 들어있어 삐꺽거린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영화스틸컷

출처 : DAUM 영화



덧붙이기 : 여배우 박신혜와 이유비를 보는 재미도 있는데, 권력가들이나 경쟁자들에게 핍박받는 가련하지만, 당찬 궁전의 이미지로 박신혜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 다만, 구슬프게 우는 장면에서 약간은 억울한 캔디처럼 울어버리는 바람에 정감은 더 가지만, 처연한 조선시대의 중전이 울었다고 보기에는 무리한 감이 있었다. 묘한 다중인격적인 체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박신혜 울면 안돼~' 와 '중전이 저렇게 울면 쓰나'가 동시에 떠올랐다. 말로만 듣던 이유비라는 건 나중에 찾아보고 알게 됐다. 왜 찾아봐겠는가 이쁘게 나왔으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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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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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영화계에서 아주 보기 드물게 한국영화 두 편이 흥행을 주도하고 있는데, ( 어쩌면 최초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 그 중 하나인 류승완 감독의 " 베를린 " 을 관람했다.

개인적으로는 다분히 류승완 감독을 미국의 마이클 만 감독님과 비교해 보곤 하는데, 둘 다 완성도있는 마초냄새를 풍긴다는 데 있다. 작품의 완성도보다는 스타일의 완성도에 더 가깝지만서도.. ^^;;

영화 " 베를린 " 은 그동안 성룡의 " 프로젝트A " 를 최고의 영화로 꼽던 류승완 감독이 아마 처음으로 미국 스타일의 전문가 액션(?)을 취한 영화다. 멧 데이먼의 본씨리즈와 흡사한 면이 많은데, 제작여건을 고려해 보자면 결과물은 그에 못지 않다고 본다.

본씨리즈가 첩보원의 자아찾기와 액션을 병행했다면 류승완 감독의 " 베를린 " 은 한국식 액션영화의 성취도에 중점을 둔 게 좋아보인다. 무리하게 작품성을 끌어올리느니 확실하게 액션영화의 완성에 집중하는 게 현실적인 판단이었다고 보고, 그런 선택이 오히려 류승완 감독의 장기를 살릴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류승완 감독이 이런 고민을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이긴 하지만서도. ^^;;

베를린
감독 류승완 (2012 / 한국)
출연 하정우,한석규,류승범,전지현
상세보기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스토리전개는 다음 액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과정이고, 영화의 메인테마와 메시지가 액션들의 스타일과 강도를 결정할 뿐이다. 그의 전작인 " 짝패 ", " 부당거래 " 와 간략하게 비교해 보자면, " 짝패 " 는 상당히 홍콩스타일의 고전무협 액션과 닮아 화려한 만찬식이다. 메인주제는 고향과 우정을 지키는 것이었다. " 부당거래 " 는 폭력성이 두드러지는 액션들이었는데, 현실에 찌들었던 주인공이 어처구니 없는 선택을 해 맞게 되는 종말을 그리고 있다. " 베를린 " 은 북한공작원의 생존과 삶의 의미를 그린 영화여서 그런지 액션들이 상당히 훈련된 동작들을 중심으로 효과적이면서도 처절했다.

아쉬운 몇 가지 점들은 장기를 살리면서 포기했던 스토리 때문에 이런 장르에 익숙한 관객들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부분들이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첩보조직인 모사드나 아랍 테러리스트, 러시아 조직들 사이의 이해관계나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암투가 어떤 식인지 대강이라도 알고 가는 게 필요한 분들도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류승완 감독의 영화답지않게(?) 등장한 배우들의 연기력이 상당히 좋은데, 조연으로 등장한 배우들까지도 합격점을 훨씬 넘어섰다. 개인적으로도 " 전지현 " 이라는 연예인이 최초로 " 연기 " 를 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 ( 참고로 " 엽기적인 그녀 " 를 제대로 본 적이 없고, " 도둑들 " 을 봤는데, 거기서는 딱 전지현스러운 캐릭터였다. ) 거슬리는 건 영화 후반에 연정희 ( 전지현 분 ) 가 총소리에 비명을 지르는 장면인데, 영화 내내 숙청까지 각오한 듯한 연정희가 위협적인 총소리 한방에 그런 비명을 지른다는 게 좀 어색해 보였다. 이건 연기력보다는 연출력 쪽이 아닐까 싶다. 영화 흐름상 연정희의 비명소리가 필요한 상황인 건 분명했는데, 그간 연정희의 모습은 외유내강형으로 티는 안내도 꿋꿋이 참는 캐릭터였다. 대개 이런 캐릭터는 총으로 위협해도 흠치 놀란 후에는 꾹 참는 얼굴을 보여줬다. ^^;;

한석규님은 정말 오래간만에 네임밸류에 맞게 대박을 친 영화에 출연한 게 아닐까 싶고, 류승완 감독의 동생 류승범은 연기변신에 나름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옥의 티라면 " 차일드44 " 란 소설과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보여 표절 논란이 벌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인데, 소설이나 관련 내용을 자세하게 보지 않아 뭐라고 하기도 힘들고, 관심도 없다. ^^;; 한 두페이지 가량의 관련 기사를 봤는데, 이미 감정싸움으로 번진 모양인데다 영화의 결과물이 개인적으로 아주 훌륭하다고 보기 때문에 -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이정도 수준의 액션영화를 만들 수 있습니다. -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라앉은 후에나 확인해 볼 예정이다. 소설도 한번 읽어보긴 해야할 것 같다. ^^;;

덧붙이기 : 우리나라 영화관객들은 여전히 스토리에 집중하고 있다. 이유는 여러가지일테지만, 아쉬울 때가 많다. 평소 책을 좀 다양하게 읽고, 영화나 드라마들을 편식하지 않고 봤으면 싶다. 영화에서 스토리는 중요하지만, 스토리가 전부는 아닐진데..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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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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