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서쪽을 완전히 제패한 뒤 카이사르는 마침내 폼페이우스와 그를 따르는 원로원 의원들을 처리하기 위해 그리스로 떠난다. 3권은 카이사르가 내전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고, 이집트에서 벌어진 알렉산드리아 전쟁 직전까지 기록되었다.

" 내전기 " 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여전히 시오노 나나미의 " 로마인 이야기 " 에 대한 평가는 낮아지고 있다. 볼품없는 작품이라는 뜻이 아니라 명작계열보다 수작계열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게 맞겠다. ^^;;


전쟁을 준비하는 폼페이우스
에피루스 회담
카일리우스의 반란
안토니우스의 시련
마케도니아의 부정들
다라키움 공방전
카이사르의 작전, 실패하다
카이사르, 테살리아로 가다
품페이우스의 추격
최대의 결전, 파르살루스 대전투
폼페이우스의 최후
알렉산드리아, 그리고 클레오파트라

카이사르의내전기
카테고리 시/에세이 > 인물/자전적에세이
지은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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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 사이의 전쟁이면서도 당시에는 사실상의 세계대전이었던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은 일진일퇴 끝에 카이사르의 승리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동안은 카이사르가 병력수는 작지만 고참병을 주로 거느리고 있었던 반면, 폼페이우스가 카이사르의 두 배에 가까운 병력에 전쟁경험이 부족한 신참들 위주여서 이게 승리의 주요 열쇠였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 못지 않게 중요했던 점을 발견했다. 바로 연습이다. ^^;;

파르살루스 회전 ( 평야 같은 곳에서 군사들끼리 포진해 싸우는 것 ) 을 앞두고 카이사르의 병력은 책의 설명에 따르면 로마 중무장 보병 6개 군단 2만 7천 명과 기병 2천기인데, " 내전기 " 에 따르면 보병이 2만 2천에 기병이 1천기였다. 아마 현지에서 충원한 경무장 보병과 기병들 때문에 수치가 다른 것 같다.

여기서 짚고 싶은 게 바로 이 경무장 보병들과 주요 고참병들을 파르살루스 회전 직전까지 여러 차례 카이사르 자신이 예측한 전투의 진행형태에 맞게 훈련시켰다는 점이다. 적의 기병들을 막기 위해 정예 중의 정예들인 고참병들만 따로 모아 4번째 대열로 별도의 부대를 만든 후, 그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도록 로마 중무장 보병들 사이에 경무장 보병들을 끼워 넣고, 전투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호흡을 맞췄던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나 플루타르크는 이런 점을 별로 드러내지 않았는데, " 내전기 " 를 보니 카이사르와 함께 갈리아에서 전쟁을 치루면서 경험을 쌓았던 2 개 군단이 폼페이우스에게는 고스란히 남아있었기에 단순히 고참병들의 수치때문에 전쟁수행능력이 더 뛰어나서 카이사르가 이겼다고 하기에는 전투결과가 너무 압도적이어서 2퍼센트 부족한 설명으로 보여진다.

카이사르의 핵심 군단들은 9, 10, 11, 12 군단(?) 정도였고, 1개 군단의 정원인 6천명에 훨씬 못 미치는 3천 6백여명(?) 이하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9 군단은 파르살루스 회전 직전의 전투였던 다라키움 공방전 ( 고지나 진지를 두고 벌인 전투? ) 에서 심각한 병력 감소가 있었기에 2만 2천의 중무장 보병 중 전투경험이 풍부한 고참병의 비율은 높긴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말한 것처럼 높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아마 8 대 2 정도로 묘사한 것으로 기억되는데, " 내전기 " 에 따르면 6 대 4 정도로 보여진다. 4 정도의 신참비율도 분명 전쟁경험을 갖고 있긴 하지만 많은 정도는 아니고, 그 정도의 전쟁경험은 폼페이우스 측의 로마 중무장 보병들도 가지고 있었다.

카이사르가 압도적으로 폼페이우스 진영을 패퇴시킬 수 있었던 건 현실에 맞는 기발한 발상, 고참병을 활용한 전쟁수행 능력 그리고 부족한 요소를 메꾸는 훈련의 결과였다고 본다. 전투가 벌어지면 너무 역동적인데다 예측하지 못한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기에 경험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다.

이런 부족분을 카이사르는 훈련을 통해 메꿔 경무장 보병들이 등을 돌리고 달아나거나 우왕좌왕하지 않고 제 몫을 다하도록 만들었기에 두 배에 가까운 병력차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카이사르의 고참병들이 폼페이우스의 기병들을 막아도 보병대열이 뚫리거나 밀리면 전투의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적은 수에 고참까지 빠져 나간 자리를 이질적인 경무장 보병들로 채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에 반해 폼페이우스 진영은 부족분인 경험을 메꿀 생각보다 압도적인 병력수의 차이만 믿고 논공행상부터 하다가 자멸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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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서 폼페이우스를 놓쳐 버리는 바람에 전쟁지역에 늘어나 버렸기에 카이사르는 다시 갈리아 지역으로 돌아가 폼페이우스의 잔당인 로마군단들을 상대한다. 그곳에서 8년간 전쟁을 수행했음에도 여전히 뜻하지 않게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8년간 전쟁을 수행한 우수한 병사들과 과감한 전략 덕분에 극복한다.

1권 87장, 3권 112장에 비해 44장으로 턱없이 짧은 데, " 내전기 " 를 쓴 때를 알지 못해 왜 이렇게 짧은지 추측하기도 어렵다. 설마 아끼던 쿠리오가 죽어서 그랬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2권에서는 로마군의 병장기들에 대한 삽화들도 볼거리다.



카이사르의내전기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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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실리아 공성전
히스파니아 최종 장악
마실리아, 백기를 들다
쿠리오의 아프리카 전투
쿠리오의 죽음, 패배의 시작

" 쿠리오 " 는 이 당시 " 안토니우스 " 와 함께 카이사르의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안토니우스보다 더 신뢰받고 있는 인물이었다는 게 여러 자료에 남아있는데, 안타깝게도 전투에서 패하자, 카이사르의 군대를 모두 잃고 그에게 돌아갈 수 없다며 30대 초반의 나이였음에도 자살했다고 한다. 아주 유능한 편은 아니었지만, 참 열정적이면서도 충성스런 청년(?)이었다.

그래서인지 2권에서는 쿠리오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로마병사들에게 한 연설이 나오는데, 로마인들의 수사학이 어떤 것인지 잘 알려준다. 오래 전에 우리나라에서 한때 웅변학원이 잠시 퍼진 적이 있었는데, 참 비교된다. ㅡㅡ;;

꽤나 장문의 연설을 쿠리오가 써 놓고 읽은 것인지 아니면 정말 느끼면서 나오는 대로 받아 적은 것인지 아니면 카이사르가 대강 전해듣고 멋지게 각색한 것인지 궁금하다. 왜냐하면, 쿠리오는 그 연설을 한 뒤 얼마 뒤에 죽었고, 카이사르는 멀리 떨어져 있다가 " 내전기 " 를 쓴 것이라 어떻게 이런 긴 내용이 적힐 수 있었나 싶다. ^^;; 어쨌거나 내전기에서는 이 연설문들이 참 읽을만 한데, 수사학이라는 게 말만 잘하는 게 아니라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말하는 법에 관한 학문인 듯 싶다. 우리나라 웅변은 대개 소리만 질렀던 것으로 기억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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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쪽 번역작들은 천병희님의 솜씨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데, 아쉽게도 카이사르의 " 내전기 " 는 아직 번역하지 않으신 듯 보였다. 대신 2005년에 김한영이란 분이 번역하고 사이 출판사에서 나온 " 내전기 " 를 골랐는데, 기대이상의 품질이라 즐겁게 읽고 있다. ^^;;

" Caesar : The Civil War " ( Harvard University Press ) 라는 영어출판물(?)을 원전으로 삼았다는데, 다행이 그곳의 서문, 지도, 삽화같은 것들도 고스란히 옮겨온 듯 보인다. 병장기들도 어느 정도 볼거리를 제공해 좋았다. " 내전기 " 는 모두 3권으로 되어 있는데, 사이 출판사에서 한 권으로 묶어 번역했다.

시오노 나나미의 " 로마인 이야기 " 에 상당히 매료되어 있었는데, 플루타르코스 영웅전과 갈리아 원정기, 그리고 내전기까지 거쳐 오면서 상당히 거품이 빠진 상태다. 전문가에 비해 상당히 적은 사료(?)들을 읽은 수준이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책에서 말한 내용들이 혁신적인 가설이라기 보다 소설가의 로마사 감상기같은 것에 가깝다고 생각되기 시작했다.

뭐 깊이 논의하고 싶지는 않지만,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를 버리고 그리스 쪽으로 떠난 폼페이우스의 행동이 그의 주요 패착 중 하나라고 지적한 부분에 대해 이제는 별로 공감가지 않는다. 적어도 " 내전기 " 에 따르면 로마와 그 주변의 군사력이 될 수 있는 민중들은 친카이사르 세력이었던 것으로 암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런 곳에서 농성전을 치루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좀 더 강한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료(?)를 읽어야 하는데.. 귀찮다.. ㅋㅋㅋ

카이사르의내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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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사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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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로마 안에서의 음모
카이사르의 반격
코르피니움 정복
폼페이우스, 로마를 탈출하다
로마, 무혈입성하다
마실리아의 전운
일레르다, 카이사르를 고립시키다
브루투스의 해전 승전보
카이사르의 승리, 히스파니아 전투

" 주사위는 던져졌다 " 라고 말하는 에피소드는 " 내전기 " 에 나오는 것이 아님에도 마치 여기서 나오는 것처럼 광고해 놓은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제발 이러지 말자. 좋은 책에 이런 식으로 낚시질하면 오히려 역효과라고 판단된다. " 주사위는 던져졌다 " 라는 카피(?)는 아마 카이사르를 다루는 책이라면 다 써먹을 얘기인데, 정작 " 내전기 " 책내용에서는 그 부분을 훌쩍 뛰어넘어버려 아예 등장조차 하지 않으니 속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이 에피소드는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카이사르편이나 그밖의 몇몇 고전에서 소개되고 있고, 정작 카이사르가 쓴 " 내전기 " 에서는 언급되지 않고 있다.

카이사르가 " 내전기 " 를 쓸 때가 언제였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 내전기 " 를 쓸 때의 마음이나 정신은 몹시 긴장되어 있고, 복잡했을 것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다. " 갈리아 원정기 " 에 비해 실수한 부분도 많고, 뭔가 감춰진 듯한 느낌을 주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쟁을 치루면서 그 전쟁의 핵심인물이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는지 보여주는 귀중한 사료이면서 전쟁문학에서도 다룰 만큼 담백하게 잘 씌여진 책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카이사르의 연설문 전체를 볼 수 있는 점이 좋았고, ( 시오노 나나미나 플루타르크는 요약해서 설명해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 전쟁과 정치를 동시에 수행했던 사람의 역량과 멋진 전술을 구사했던 명장들의 마인드를 비교해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카이사르는 한참 이전 세대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와 비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전쟁과 정치를 동시에 치뤄내는 리더였던 카이사르는 로마인들과 로마 병사들이 만들어낸 영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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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원정기 중에서 유일하게 카이사르가 쓰지 않은 부분이다. 갈리아 전쟁의 상황을 살펴보는 재미 외에도 당시를 살았던 카이사르와 다른 이의 문장을 비교해 볼 수 있어 좋다. 히르티우스는 카이사르의 측근 중 한 명으로 해방노예 쯤으로 기익된다.


히르티우스의 머리말

같은 카이사르의 측근 중 한 명인 발부스에게 카이사르의 뜻에 따라 저서의 나머지 부분을 쓰게 됐다는 얘기를 전한다.



비투리게스족, 카르누테스족, 벨로바키족의 반란 ( 기원전 52 ~ 51년 )

갈리아 전쟁 내내 갈리족들이 그랬듯이, 로마군의 병력이 많지 않은 것을 빌미삼아 사람들을 충동질하는 인물들이 아직 몇몇 남아 있어 이들을 마무리짓고 있다. 채찍과 당근을 병행하지만, 대개의 제국주의가 그러하듯 마지막은 엄하고 확실하게 다뤄두려고 한다.



마지막 교전 : 욱셀로두눔의 함락 ( 기원전 51년 )

공성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성 안의 방어태세와 병력에 따라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수 있는 것 같다. 방어가 허술한 부분이 있다면 적이 모르게 그 부분을 가장 짧은 시간에 점령한 후 파고 들어가는 것이 기본으로 보인다. 대개 적이 성 안으로 숨었다면 아군의 전력이 강한 것이고, 침투경로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도 점령한 것이나 다름없다. 다음으로 방어가 견고하다면 성 안의 물자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먹을 것이든, 물이든 혹은 질병이든 성 안의 군사와 일반인들을 동요시킬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확인한 후 농성전에 대비해야 한다. 카이사르는 이곳에서 물의 공급을 차단해 승리한다.

카이사르 이전 세대로 로마와 이탈리아를 10년간 유린했던 한니발이 공성전에 약했다는 의견이 있는데, 비교해 볼 만 한다. 한니발은 역사적으로도 유명한 명장이다.



내란의 먹구름이 드리우다.

로마의 귀족들이 카이사르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동전선을 구축했다는 정보까지 파악되자 카이사를 별 수 없이 로마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내전을 피하기 위해 여러 의견을 로마 원로원에 제안하지만, 끝내 거절당하자 루비콘 강을 건너게 된다.



조만간 " 내전기 " 를 읽어봐야겠다. 거침없던 카이사르조차도 " 내전기 " 에서는 그 속내를 전부 드러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는데, 문장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혹은 읽는이가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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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 원정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베르킹게트릭스와 맞붙은 알레시아 공방전이다. 8만여명의 다수임에도 구석에 몰려 있던 베르킹게토릭스는 전 갈리아지역에 기병대를 보내 약 24만명의 대군을 포위하고 있던 로마군의 후방에서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로마군은 후방에 병력이 집결되는 동안 베르킹게토릭스를 압박하면서 높은 방어시설들을 구축해 길게 늘어뜨려놨다. 비교적 고지대에 보루까지 갖추긴 했으나, 숫적으로는 압도적으로 열세인데다 양쪽에서 공격을 받게 됐으나, 끝내 버텨냄으로써 오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략가 혹은 무장으로써의 능력이 출중함에도 명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모습들 때문이기도 한데, 다른 천재적인 전략가들이라면 평야로 유인해 회전을 벌여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주거나 조직적인 모습으로 엄청난 피해를 적에게 안겨줄테지만, 카이사르의 경우에는 부하들의 전투력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이 종종 보였다. 이는 기존의 명장들과 달리 정치적인 요소 혹은 계략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고, 적들이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거나 갈리아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인해 어수선하게 전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자신의 승리를 너무 드러내지 않지만, 실수도 굳이 감추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7권은 이 알레시아 공방전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디로 진행됐으며,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보여준다.




서막 ( 기원전 52년 )

카이사르가 로마의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 부산한 틈을 타 갈리족은 슬금슬금 반란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베르킹게토릭스가 갈리족의 리더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해마다 당하고도 또 일어나는 갈리족의 자유정신(?)은 인정해 줄 만 하다. ^^;;




아바리쿰의 포위와 함락 ( 기원전 52년 )

베르킹게토릭스는 로마와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자고 했는데, 말 안듣던 갈리족으로 인해 아바리쿰에 갇혀 게기다가 도망친다. 이 일로 베르킹게토릭스는 리더로 확실히 자리매김한다.




게르고비아에서 로마군이 패하다 ( 기원전 52년 )

카이사르는 지휘관으로써 전세를 냉철하게 판단한 뒤, 겁만 주고 후퇴할 것을 지시했으나, 도망가는 적들을 보고 로마군이 미친듯이 싸우는 바람에 도리어 패퇴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부하들을 더욱더 장악할 수 있게 됐다.




베르킹게토릭스가 야전(野戰)에서 패하다 ( 기원전 52년 )

한번 로마군을 물리쳤어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던 갈리족이 카이사르의 부관인 라비에누스와 붙었다가 깨진다. 다시 말하지만, 전쟁터에서는 카이사르 못지 않았던 부장이자 동년배인 라비에누스다. 갈리아 전쟁에서 유일하게 카이사르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는 인물이었다. 아쉬운 건 나중에 벌어진 로마의 내전에서 카이사르를 떠나 폼페이우스의 편에 가담한다는 점이다. ㅡㅡ;;



알레시아의 포위와 함락 ( 기원전 52년 )

상식적으로는 정말 무식한 작전이 아닌가 싶지만, 어쨌거나 갈리족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항복한다. 나름 지형적으로 높고 튼튼한 방어진을 구축했다고는 하지만, 숫적으로는 엄청난 열세인데다 앞뒤 양쪽에서 공격을 받게되는 형세였다. 게다가 갈리족이 무작정 공격한 것이 아니라 방어진 중 가장 약한 쪽에 집중하기 위해 전담팀을 따로 짠 후에 그곳을 돕지 못하도록 전체적인 공격을 진행했음에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전술적으로는 뛰어나지 못했을지 몰라도 로마군 개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장악하는 능력에서 카이사르를 따라올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후에 로마에서는 20일동안 감사제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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