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님이 " 구르믈 서버난 달처럼 " 이라는 영화를 들고 나왔을 때, 이 만화를 알게 됐다. 그런데, 영화가 별로 흥행에 성공하지 못해 관심이 시들해질 무렵, 블로그나 만화비평 자료들을 통해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을 알게 된 후 찾아읽게 됐다. " 박흥용 " 이란 만화가도 처음 보게 됐는데, " 내 파란 세이버 " 도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원래는 10년도 더된 작품인 것으로 보이는데, 얼마 전에 3권짜리로 재출간된 듯 싶다. 

 http://cartoon.media.daum.net/info/total/465 

검색결과에 오류가 있어 확신할 수 없었다.



스토리는 전형적인 자아성찰, 인생달관인데, 꼼꼼한 사전조사, 울림이 깊은 컷, 싯구같은 텍스트들 그리고 민족정서가 담뿍 묻어나는 연출에서 그래픽 노블이라고 불릴만 했다. 

만화시사회 바로가기 ( 몇 컷 정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 
http://cartoon.media.daum.net/preview/viewer/768 


만화스토리는 주인공 견자가 장님검객 황정학을 따라다니며 검술과 인생을 배우고, 세상사를 이해하면서 자아를 완성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배경에 신분제도, 당파싸움, 현실개혁, 임진왜란 등의 역사적 사실을 깔아 묵직한 무게를 담아낸다. 실제 당시에 살았던 칼잡이를 모델로 한 작품으로 알고 있다. 


구르믈버서난달처럼세트
카테고리 만화 > 드라마
지은이 박흥용 (바다그림판, 200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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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사뭇 다른 것으로 들었다. 황정학이 병으로 죽는 대신, 현실개혁 반란군의 수장인 이몽학과 대결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어떤 식으로 바뀌었든 보수적인 냄새가 난다.

보지 않았아도 대강 짐작으로 황정학이 이겼거나 아니면 이몽학의 반란이 좌절됐을 것 같다. 만화에서는 이몽학이 견자를 끝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한탄하는데, 둘 다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구름을 벗어난 달이 되고자 견자는 고뇌가 가득한 길을 떠나 마침내 마음의 자유를 얻지만, 스스로의 자유 뿐이다. 여인네를 얻고 행복을 찾는 게 뭐 그리 답답한 것인가 싶겠지만, 현재의 시점에서는 외면하고 조금 비겁해 보이는 편이다. 

그림체, 만화적 완성도와 재미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만, 주제의식이 좀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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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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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두꺼운 만화책은 태어나서 처음 본다. 19 가지 우리나라 단편 소설을 800여쪽이 넘는 분량에 모아뒀다. 

언제나 소수의 명작들로만 출판되는 우리나라 리얼리티 만화의 수작이다. 오세영님의 전작인 " 부자의 그림일기 " 보다 만화의 내용, 그림체, 책의 완성도에서 훨씬 좋아진 모습이다. 몇 작품은 " 부자의 그림일기" 와 겹치긴 하는데, 별로 아쉽진 않다. 

전작과 달리, 이 책에는 작가의 글 ( 오세영 ), 원작소설에 대한 작품 해설 ( 고용우, 김동곤 ), 평론 ( 박인하 ) 그리고 본문속 말풀이가 등이 들어있어 훨씬 친절하고 다채롭게 구성되어 있다.

작품 해설은 매 작품마다 작가에 대해 소개하고, 그 작품의 주제를 설명해주고 있고, 평론은 오세영 작가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들어있다. 글로된 원작 소설을 만화로 최대한 되살리는 노력 ( 이를 " 번안 " 이라고 표현한다고 이 책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 의 진수는 역시 말풍선에 있다. 순우리말과 당시에 사용했던 단어들을 그대로 넣었기에 낯선 단어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본문 속 말풀이는 이에 대한 설명이다. 박인하님의 평론에 의하면 말풍선 외에도 원작 소설에서 묘사했던 내용을 그대로 컷에 옮겨 넣는 정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요새 사용해도 어감이 좋은 우리말들이 눈에 띈다. 

한국_단편_소설과_만남_표지

출처 : DAUM 책

그림체도 훨씬 발전된 모습인데, 출판물의 결과에 따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네 어르신들의 터진 손바닥, 흙내 묻어나는 얼굴, 꾀죄죄한 옷차림, 구수한 입모양과 해맑은 미소는 이제 우리나라 만화에서 정말 희귀해져 버린 터라 더 와닿는 면이 있다. 

" 동백꽃 ", " 요람기 ", 메밀꽃 필 무렵 "  같이 교과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익숙한 작품들과 월북 작가의 작품이라는 이유로 감춰졌던 여러 명작들을 만날 수 있다. 

19편 모두 소중한 작품들이지만, 그 중 몇몇은 평소 알고 있던 스타일이 아니어서 기억에 남는다. 

" 토성랑 " 이란 작품은 만화의 배경이 된 지역 이름이다. 서울 외곽에 지게꾼이나 걸인들이 움막을 짓고 모여 사는 곳이었다고 하는데, 그 분위기가 전통의 농촌풍경이나 다리 밑 거지들의 터전보다 훨씬 원시적인 모습을 띄어 충격적이었다. 젖가슴을 드러난 아낙이나 정신나간 할머니 등등이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나라 민족이 처했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농우 " 에서는 돈에 쪼들려 억압받던 농민이 억울한 일을 당해 매를 맞아야 하는 상황에서 민중이 힘을 모아 이를 뒤엎는 줄거리인데, 꿋꿋하던 주인공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에서 짠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고집센 가부장의 울분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 쇠찌르레기 " 는 어떻게 그릴 수 있게 됐는지는 몰라도 북한 조류학자를 주인공으로 분단의 아픔을 그리고 있는데, 북한 주민의 시선에서 얘기가 전개된다. 요즘 북한의 실상을 보면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북한의 생활상이긴 한데, 정치적인 냄새가 거의 없기는 하다. 

" 맹순사 " 는 일제강점기에 순사 노릇을 하다가 해방 후 다시 순사로 들어가 보니 온갖 잡것들이 순사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기겁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경찰의 지금 모습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생각해 보게 된다. 

" 까마귀 " 는 좀 엽기적인데, 소설가 주인공이 죽음을 앞둔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런데 당시 지식인들이 어땠는지는 몰라도 여주인공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여인에게 사랑을 줘야겠다고 하는 발상이나 여주인공을 사랑하는 정혼자 ( 소설가가 아닌 ) 가 여인이 외롭지 않도록 여인이 토해낸 핏물을 반컵이나 들이켜 감동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얘기는 절로 소름이 돋는다. 

진귀하고 리얼리티가 넘치는 만화를 접했다는 즐거움과 함께 암울한 사회상 속에 살아갔던 어른들의 모습이나 현실의 외면했던 시대인들을 보는 듯 해서 갑갑한 느낌이 찾아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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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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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만화 자체도 괜찮지만, 만화를 그린 사람 혹은 시대 배경이 만화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1934년 12월부터 1937년 12월까지 157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 아버지와 아들 " 은 무정부적이고, 무당파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스타일인데, 이게 당시에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역시 나치의 파시즘이 절정에 달했던 때의 국가의 압력에도 가능한한 우회적으로 인간의 자유, 소중한 가치들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나치는 모든 미디어를 장악해서 국가의 홍보수단으로 이용하던 때였습니다. 

저자인 에리히 오저 ( 혹은 e. o. 플라우엔 ) 란 분은 독일에서 태어나 나치가 정권을 잡았을 때, 독일 정치를 비판하다가 결국 투옥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아버지와아들
카테고리 만화 > 교양만화
지은이 에리히 오저 (새만화책,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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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슬픈 배경과는 달리 만화에서는 따뜻함이 오롯이 묻어납니다. 대머리 아버지와 순수한 아들 둘이 생활하고 모험을 즐기며 원없이 화목함을 즐기고 있습니다.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했기에 다소 낯선 얘기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사는 전혀없고, 가끔 텍스트만 등장하는 " 아버지와 아들 " 은 그 컷들만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합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발견하는 재미들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읽다가 저녁식사에 늦고 있는 아들을 부르러 갔던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놓고는 오히려 그 책을 붙잡고 있는 에피소드라던가, 치과의자에 앉아 의사에게 발악하는 아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려던 아버지가 아들과 똑같이 반응하는 에피소드, 유리창을 깨고 혼나면서 나가버린 아들을 찾아 헤매다 집에 돌아와 보니 유리창 한 개를 더 깨버리고 있는 아들을 보며 꼭 안아주는 에피소드는 이젠 너무 평범해서 TV 나 드라마에 거의 나오지 않던 훈훈한 모습들입니다. 아이들 이발소에 의자 대신 목마 같은 것을 놓은 에피소드는 아이디어가 좋더군요. 어디선가 본듯도 하지만, 이 책이 1930년대니 아마 이게 그것들보다 먼저일 듯 싶습니다. 

허를 찌르는 에피소드들도 몇몇 있었는데, " 일년후 " 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나무에 아이의 키를 재기 위해 못을 박아 두고, 일년 후에 다시 재보려 하니 나무가 더 자라서 아이가 키가 줄어버린 듯 한 엉뚱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런 게 만화가의 상상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도가 총을 들고 위협을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신경쓰지 못하자 그냥 가버리는 도둑도 나오고, 아버지와 아들이 경찰에게 같이 혼나기도 하고, 아버지 혹은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비꼬면서도 절로 웃으며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데리고 온 개가 바다에 던져버린 막대기를 잘 물어오자, 구경하던 이가 자기도 우산을 바다에 던져 보자 모른 척하고 가버리는 짖꿋은 부자이기도 합니다. ㅋㅋㅋ

" 방학 첫날 " 은 아들이 자고 있을 때 침대와 함께 들판에 옮겨두는데, 왠지 찡해지더군요. 아이가 일어나 보니 말 두마리, 새와 소와 닭과 토끼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상황인데, 이런 게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풀숲에 숨어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게 언뜻 몰카같아 보이지만, 사실 자기 자식이 그런 아침을 맞이해서 기뻐하는 모습으로도 보여집니다. 

그밖에도 항상 " 안돼 " 라고 소리치던 아버지가 스스로 엉덩이를 때리며 반성하는 등의 어른으로서의 자기 반성도 자주 나옵니다. 

이런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갑작스레 부자가 되고, 무인도에 갖히는 등의 변화를 겪게 되는 건 바로 만화 외부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후반부 얘기들이 얼마 진행되지 않아 파격적인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밑도 끝도 없이 "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안녕~ 다시 봅시다! 아버지와 아들 " 이라는 메모가 등장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어딘가로 향한 길 위로 걷다가 달을 향해 서서히 떠오르더니  " 6주가 흐르고 나서.. " 라는 문구가 등장한 후, 달은 아버지의 얼굴이 되어 있고 그 옆에 별 하나가 반짝입니다. 그냥 퍽하고 TV가 꺼지는 느낌이랄까요?

지금보다 훨씬 어렵고 험난한 시대의 만화이지만, 아이들이나 철부지 아빠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저도 조카를 보느라 애 좀 먹었는데, 이 책을 보니 새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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