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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보다 재미있는 인권 이야기 " 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영화보다 재미있진 않은데,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권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9 개의 주제를 수십편의 영화로 풀어내며 인권이란 무엇이고, 인권이 어떻게 핍박받아왔는지 그리고 오늘날 인권에 대해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하는 정부, 단체 그리고 우리들에게 작은 메시지를 전하려고 노력한다. 지은이의 솔직한 체험담도 들어있어 마냥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한번 새롭게 시작해보자라는 느낌을 준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그리고 만화라면 일단 편식(?)을 삼가는 편이라 일단 잡았는데, 이틀 만에 수월하게 완독했다. 어려운 제목과 목차와는 달리 지은이가 비교적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낸다.


유선생님의 설명에 따르면, 지랄 총량의 법칙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 지랄 ' 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법칙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정해진 양을 사춘기에 다 써버리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서 그 양을 소비하기도 하는데,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사춘기 자녀가 이상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게 다 자기에게 주어진 ' 지랄 ' 을 쓰는 것이겠거니,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도 했습니다. 사춘기에 호르몬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설명도 가능하겠지만, 그것보다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표현이었습니다.
- 18쪽 발췌.


제 1 장 청소년 인권 편에서 나오는 말인데, 이 장은 미혼인 나로서는 상당히 충격이었고, 문제시되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더 흥미롭고 재밌는 시작이었다. 그 뒤로 성소수자 인권 / 여성과 폭력 / 장애인 인권 / 노동자의 차별과 단결 / 종교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 검열과 표현의 자유 / 인종차별의 문제 / 제노싸이드 등 문명의 발달과 상관없이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모든 현상들을 들춰내어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인권이라는 어려운 주제의 얘기라 앞 장들은 좀 소화하기 힘들었는데, 중반을 넘어서니 술술 읽혀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에서야 지은이의 메시지가 부담없이 느껴지긴 했지만, 그래도 좀 편향적이거나 너무 이상적인 세계를 꿈꾸는 게 아닌가 싶다.


불편해도괜찮아영화보다재미있는인권이야기
카테고리 정치/사회 > 사회복지 > 사회문제 > 인권
지은이 김두식 (창비,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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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인권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거야 " 예수님 흉내를 낸 대답인데, 인권의 정신을 이보다 멋지게 요약한 문장도 없는 것 같습니다.
- 4쪽 발췌.
기독교이면서도 기독교의 한계와 그간 보여왔던 좋지 못한 세태에 대해 인정할 만큼 깨인 정신을 소유한 지은이조차 무심코 행동했다가 지적을 받았던 경험도 드러내며 인권지키기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주면서도 함께 그 불편을 감수하자고 한다. 뭐 지은이가 그렇게 살겠다는 데 말릴 생각은 없고, 딴지 걸 생각도 없다. 단지 나한테까지 싱크로 100 퍼센트를 요구하면 일단 피하고 볼 일이다. ^^;; 옳다고 생각되지만 하지 못하고 있는 일이 어디 한둘인가?

그나마 이 책은 억압적으로 이래라 저래라 하기보다 영화를 보면서 느껴보라고 은근히 암시하는 점이 좋다. 이 책 덕분에 가닥을 잡고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생겼다. 말로만 들었지만 당췌 무엇을 중심으로 영화를 봐야하는지 감이 오지 않던 영화들이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 이제는 볼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 밀양 ", " 안토니아스 라인 ", " 브래스트 오프 ", " 이 영화는 아직 등급이 없다 ", " 커포티 "  등등이 그렇다. 특히 고전명작이라고 일컬어지는 1915년작 " 국가의 탄생 ( The Birth of a Nation ) " 은 까딱 잘못봤다가는 오해만 가득할 뻔했다. 명작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한심한 작품이라는 걸 알게 됐다. 왜 명작인지 다시 찾아봐야할 필요성을 느꼈다.

책 디자인도 이쁘고, 고급 종이질에 삽화들도 괜찮다. 가격대가 만원 조금 넘는 것으로 보아 정말 제작진(?)들이 많은 희생을 감수한 게 아닐까 싶다. " 인권 " 이라는 단어에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만 아니라면 한번 봐둘만 한 책이다.


참고 : 린치의 어원
린치는 재판 등의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군중이 사적으로 사람을 처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국독립전쟁중 찰스 린치 ( Charles Lynch, 1736 ~ 96 ) 라는 사람이 영국에 여전히 충성을 바치는 사람들을 사적으로 제재하는 비정규법정을 운영한 데서 유래한 단어라고 하지요. 남북전쟁으로 흑인노예들이 법적으로 해방된 이후, 백인들은 이들에게 온갖 이유를 붙여 린치를 가함으로써 공포에 의한 백인 우월의 통치체제를 확립했습니다.
- 302쪽


추신 : 각 장이 간단히 리뷰로 정리될 만한 수준이 아니라 두고두고 생각해 볼 만한다. 나중에 다시 생각을 정리하고 싶을 정도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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