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재님은 " 악동이 " 와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를 통해 알게 됐는데, 두 작품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으나 스치듯 조금씩 봤지만 워낙 특이한 그림체와 묘한 호소력이 느껴져 기억에 남았다. 이제야 이희재님의 작품 한편을 제대로 감상해 볼 수 있었다. 

모두 일곱편의 단편인데, 그림체는 비현실적으로 주름져 있음에도 전해오는 느낌은 서민들이 견뎌냈던 세월이 리얼하게 다가온다. 좋은 만화가들이 그렇듯 묘하게 사람들의 얼굴 표정이 살아있는 듯 느껴지고, 여백이 많아도 꽉찬 울림이 있다. 



간판스타
카테고리 만화 > 기타만화
지은이 이희재 (글숲그림나무, 2001년)
상세보기


간판스타

우리나라 산업화 시절에 흔히 접할 수 있던 서글픈 스토리다. 서울로 올라간 어여쁜 딸이 땅살돈을 모아 귀향해 동네에서 한껏 부러움을 사지만, 정작 서울에서는 고급 술집의 노래부르는 " 간판스타 " 였다는 얘기. 그나마 아버지에게 뭔가 남길 재산이라도 마련한 게 다행인 경우. 비슷한 얘기들의 대부분은 실제로 돈도 모으지 못하고 파탄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동네의 모든 사람들이 여주인공을 높이 보지만, 유일하게 어릴 적 사귀던 청년만은 진실을 알고 있고 끝끝내 침묵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청년은 사실을 알고도 청혼하려 여주인공의 아버지를 만났지만, 물정 모르는 아버지는 거만하게 청년을 후려친다. 젊은 청춘 남녀는 그렇게 헤어지고 살아간다. 




새벽길

정말 눈물나는 얘기다. 황당한 건 수십년 전 얘기가 요즘도 벌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주인공이 새벽에 청소하시는 아저씨에 관한 슬픈 사연을 듣게 되고, 그 아저씨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이야기다. 스토리는 신파적인데, 만화 속 표현은 너무 리얼하다. 

첫째 딸을 잃고 서울로 상경해 온갖 일자리를 전전하며 다시 아들 둘을 낳고 살던 청소부 아저씨가 어느 날 새벽에 일손이 부족한 바람에 자진해서 나온 아내와 일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두 아들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부부의 일상은 파탄에 이르고 아저씨는 아내를 비난하던 중 아내 역시 상심해 끼니를 끊고 살다가 끝내 귀가 어두워진다. 다시 정신을 추스린 아저씨는 돈을 마련해 보청기를 마련해 주고 생활하는데, 어느 새벽에 아주머니가 아저씨에게 고향에 돌아가자며 애끓는 소리를 하고 아저씨는 이에 반대하며 서글퍼하다가 끝내 서로 부둥켜 안는데, 이 광경을 남자 주인공이 우연히 엿보게 된다. 이 클라이막스에서 정말 가슴에 바윗덩이 하나가 들어앉는 듯한 뭉클함이 느껴진다. 알고보니 아주머니는 다시 애기를 가지셨다. 




민들레

고집센 목수와 아들의 화해를 그리고 있다. 이 단편의 도입부에 있는 부자의 목판화(?)가 인상적이다. 눈을 감고 쏟아지는 비를 버텨내는 듯한 아버지의 표정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버지를 지켜보는 모습이 이 단편의 주제를 대변하고 있다. 절름발이에 주책만 떨고 다니던 아버지가 실제 결정적인 순간에 험한 개와 맞닥뜨려 아이를 구하는 모습을 보게 된 아들은 마침내 아버지를 받아들인다. 



김종팔 씨 가정 소사

" 끝지 " 라는 막내딸이 효도하는 얘기. 아들인줄 알고 낳았던 셋째가 딸인 바람에 어머니의 미움을 사지만, 결국 큰 힘이 되는 건 막내딸이었으며, 아버지는 그런 가정 소사를 관조하듯 바라본다. 




성질 수난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청년이 겪었던 고생담. 



운수 좋은 날

지게꾼이 갑자기 일이 잘되던 날, 집에 돌아와 보니 아내가 죽어있었다던 " 운수좋은 날 " 인줄 알았으나, 택시기사가 합승 많이 받아가며 흐뭇해 하다가 피박 쓰는 스토리다.

오래 전 택시업계에서는 새벽 첫손님으로 여자를 태우면 재수없다는 속설이 있었나 보다. 초반에 그런 설정을 깔아뒀는데, 엔딩 부분에서 새벽이 되어 손님을 받으러 돌아다니다가 실수로 사람을 칠 뻔 했으나 다행이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자 손님은 날랜 자기라서 사고가 나지 않았다며 운수 좋은 날이라고 한마디 해준다. 




승부

제일 재밌던 단편이다. 지금 써 먹어도 괜찮은 설정이지 않은가 싶은데, 허영만 가득찬 소설가 지망생이 신문배달오는 소년을 소재로 공모전에 지원한다. 탁월한 소재를 골랐다며 소년과 많은 얘기를 나눈 후, 훌륭한 글을 썼다고 자만해 하던 주인공에게 당선소식은 들려오지 않는다. 신문배달 소년에게 화풀이를 하려고 기다리던 중 다른 사람으로 교체된 것을 보고 이유를 물으니 먼저 신문배달 소년이 무슨 공모전에 당선되어 일을 그만 뒀다고 한다. 신문을 찾아보니 먼저번 그 신문배달 소년은 청년 백수를 주인공을 소재로 글을 써 공모전에 당선되어 신문에 실려 있었다. 



다 좋았지만, 특히 " 새벽길 " 과 " 승부 " 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이 만화는 " 만화평론가 선정 해방 이후 좋은 우리 만화 " 1위에 올랐다고 했는데,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 가나 아트 " 라는 곳에서 1997년에 평론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내용에 불과한 듯 보인다. " 가나 아트 " 얼마나 공신력있는 기관이나 단체인지는 모르겠으나, 콘텐츠 진흥원 혹은 만화 규장각 같은 곳에서 실시했어야 제법 인정받을 만한 기록이 아닌가 싶다. 괜시리 허영끼가 느껴진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22&aid=0002339383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