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혹은 도시국가가 혼란스러울 때 영웅적인 행동을 시도한 네 명의 인물과 페르시아 왕 한 명이 등장한다. 시켈리아의 디온과 로마의 브루투스는 개혁의 실패자로, 코린토스의 티몰레온과 로마의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는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영웅들로 그려진다.

브루투스의 경우에는 로마가 낳은 최고의 천재 카이사르를 암살한 주동자 중 한명이다. 카이사르가 죽으면서 외친 " 브루투스! 너 마저.. " 의 그 브루투스로 알려져 있는데, ( 다른 이라는 의견도 있다. ) 플루타르코스는 비교적 좋게 평가하고 있다.

점점 더 곳곳에서 플루타르코스의 의견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서기 105 년 이후에 시간을 들여 작성했던 기록이라 오늘날의 가치관이나 시각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지금까지 개인적으로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이 올바른 가치관이나 교훈을 남겨주는 책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단지 아주 오래 전 역사 속 인물들과 관련한 다양한 얘기들을 비교해가면서 보여주다 보니 오늘날 분석해 보고 인간의 삶과 역사를 되돌아 보는 좋은 단초가 되기에 훌륭한 책이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대개의 영웅들에 대해서는 읽은 바가 있어 플루타르코스가 덧붙인 영웅들의 비교설명에 공감이 가지 않을 때가 많다. ^^;;


플루타르코스영웅전.6
카테고리 역사/문화 > 신화
지은이 플루타르코스 (휴먼앤북스,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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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온

시켈리아는 장화 모양의 이탈리아 반도에서 장화 앞쪽 부리에 해당하는 곳에 있는 큰 섬이다. ( 오늘날 시칠리아로 불리는 것으로 알고 있고, " 시실리 " 라는 명칭도 같은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은 잘 모르겠다. ㅋㅋㅋ ) 로마가 이곳을 점령하기 전에 시켈리아에서 태어난 디온은 이곳을 다스렸던 포악한 참주들에 대항하여 군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참주들을 대강 처리하고 났더니 디온의 엄격한 리더쉽을 싫어했던 시민들을 선동한 몇몇 간신배들에게 암살당한다.

시켈리아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쉬라쿠사이는 시오노 나나미의 " 로마인 이야기 " 에서 " 시라쿠사 " 로 표기되며, 1 스타디온이라는 거리는 약 180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워낙 자주 나오는 거리표시라 기록해 둔다. ^^;;

디온편은 어리석은 군중 혹은 국민들의 모습이 어떠한지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오줌똥 못가리고 그냥 답답하고, 갑갑하다.



브루투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3월 15일에 암살한 주동자이자,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연인의 아들인 브루투스는 몽상가 청년의 전형을 보여준다. 다른 책에서는 어둡고 갑갑하고 꽉 막혔다는 식으로 묘사됐는데, 플라타르코스의 표현들을 보면 순수했고 고지식한 것으로 보여진다. 브루투스가 가진 가치관은 적들조차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씌여있다.

디온처럼 암살당하지는 않았지만,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옥타비우스와 카이사르의 부하였던 안토니우스와의 싸움에서 져 스스로 자살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시대에는 " 크세노스 " 라는 표현이 있는데, 제법 재밌는 말이라 기록해 둔다. 고대에는 치안이 불안해서 먼 길을 떠난 이들이 자기 집으로 찾아오게 되는 경우 따뜻하게 맞이하고 보살펴 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 나중에 로마가 강성해져 팍스 로마나 ( 로마에 의한 평화 ) 가 펼쳐지면 좀 나아지긴 했다고 한다. 로마 가도를 따라가면 웬만한 도둑이나 강도들이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 ) 이렇게 낯선 땅에서 한번 집에 머물리 친구 관계를 맺게 되면 이런 친구를 " 크세노스 " 라고 불렀다고 한다.



티몰레온

시켈리아의 디온이 죽은 뒤 여전히 혼란스러울 때, 그리스 권역의 코린토스로부터 불려온 영웅이다. 시켈리아의 주요도시들이 대부분 그리스 계열 개척자들에 의해 세워졌고, 지속적인 교류가 있었기에 요청한 것이다. 다행이 티몰레온은 디온과 달리 참주나 간신배들에게 놀아나지 않고, 차근차근 유연하게 대처해 가며 시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해방시켜 나간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추측으로는 한니발을 무찌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아들로 보인다. 계속된 추측으로 보자면 한니발에 의해 지속된 2차 포에니 전쟁 (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의 전쟁 ) 이 십년 넘게 지속된 후, 로마는 이겼음에도 많은 부분에서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때를 틈타 마케도니아의 페르세우스 왕이 설쳐댔는데,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이를 제압한 모양이다. 전략적으로 뛰어났던 것 같지는 않고, 풍부한 전쟁경험이 있는 부하들을 데리고 성실하고 고결하게 임무를 수행한 후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로마로 귀환했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그리스 영웅과 로마 영웅을 비교했다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서 뜬금없이 페르시아 왕이 한명 등장했다. 64년을 통치하고 94세에 죽었다는데, 오래 살아서 영웅으로 취급한 게 아닐까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영웅적인 행동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고, 콩가루 왕조의 모든 면을 골고루 보여주다가 정신나간 폭군 스타일의 아들이 주변 왕자들을 하나씩 죽여나가는 상황에 절망하여 힘없이 늙어 죽기 때문이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아게실라오스와 같은 시대에 살았고, 막대한 자금력으로 헬라스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때는 " 퀴로스 " 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이 종종 등장하는데, 페르시아어로 " 태양 " 을 뜻한다고 한다.


덧붙이기 : 이 당시에는 이름 비슷한 인물이 정말 드럽게 많은데, 책을 만들 때 이런 부분에 신경을 좀 써서 내용을 보충했어야 되지 않나 싶다. 그리스, 로마와 관련한 다른 책을 읽었기에 더 헷갈리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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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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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1 장 수학의 기원을 읽고 2장 그리스 수학의 번영이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계속 읽을지를 조금 고민했다. 
'이거 계속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때문에 그냥 편하게 읽다가 머리에 쥐가 나면 바로 덮자 싶은 마음으로 읽었는데, 의외로 쪽수가 다 넘어갔다. 물론 중간중간 머리가 아파오긴 했지만. ^^;; 특히 "이등변삼각형의 두 밑각은 서로 같다" 라는 명제를 증명할 때는 한 서너번을 다시 읽었다. ㅡㅡ;; 


기하학(幾何學) :
[수학] 공간의 성질과 공간 안의 물체에 대한 성질을 연구하는 수학의 한 분야.
수학의 가장 오래된 분야 가운데 하나로,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토지 측량을 위한 도형의 연구에서 유래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에우클레이데스에 의해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체계화되었다.
- 출처 : DAUM 사전. 



기하(幾何) :
(1) 잘 모르는 수효나 분량, 정도 따위를 물을 때 쓰는 말.

(2) [수학] 도형 및 그것이 차지하는 공간의 성질에 대하여 연구하는 분야. 원어  기하학 (幾何學)


기하급수(幾何級數) :
[수학] 서로 이웃하는 항의 비(比)가 일정한 급수. 각 항이 그 앞의 항에 일정한 수를 곱한 것으로 이루어진다.

기하급수적 (幾何級數的) : 

[명사] I. 어떤 사물이 항상 이전 수량의 몇 배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관형사] II. 어떤 사물이 항상 이전 수량의 몇 배로 증가하는 경향이 있는. 

- 출처 : DAUM 사전. 



geometry : 

[Noun] I. the pure mathematics of points and lines and curves and surfaces
- 출처 : DAUM 사전 



평소 기하학이니, 방정식이니 하는 수학의 분야들을 전혀 구분하지 못했는데,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감이 오기 시작했다. 기하학 ( 지오메트리 ) 는 결국, 점, 선, 면과 기존의 명제들을 기반으로 뭔가를 측량하고 계산해 내는 학문으로 보인다. 단어의 정의가 너무 딱딱하고 어려워 머리 속에 잘 남지 않는 게 수학의 흠이다. ㅋㅋㅋ
 


고대 이집트인과 바빌로니아인, 인도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그들의 수학은 '어떠한가'만 얘기할 뿐,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어떤 사물이든 그것의근원을 파헤치고 증거를 찾으려고 했다. 이런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에 힘입어 그들은 수학 증명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룩했고 세계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수학의 역사. 제2장 그리스 수학의 번영. 28쪽 발췌. 



토지를 측량하는 기술이 기하학의 발전을 가져오다. 

이집트의 나일 강이 정기적으로 범람하자 토지의 경계가 사라지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그래서 강무링 빠질 때마다 사람들은 토지의 넓이를 새로 측정했는데, 이 과정에서 '기하학' 지식이 생겨났다.
역사학의 아버지 헤로도토스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소유한 토지 일부가 강물에 휩쓸려 가면 국왕은 그곳에 사람을 보내 조사를 실시한다. 그리고 측량을 거쳐 유실된 면적을 정확히 계산해낸다. ...(중략) 나는 이집트인들이 이런 과정을 통해 기하학을 이해하게 되었고 후대에 이를 그리스에게 전해주었다고 생각한다. 
 영어 'geometry'는 라틴어 'geometria'에서 유래했다. 'geo'는 '토지'를 뜻하고, 'metria'는 '측량'을 의미한다. 이집트의 토지 측량인은 '줄을 당기는 사람'이라고 불리는데, 이집트 벽화에 당시 사람들이 줄을 당겨 토지를 측량하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 수학의 역사. 제2장 그리스 수학의 번영. 30쪽 발췌.  



제2장 그리스 수학의 번영 편에서는 내 어린 시절 주요 원흉이었던 피타고라스가 등장한다. 그놈의 삼각형 그려놓고 별 짓을 다했던 시험시간의 악몽만 남아있다. 

그리스 철학과 자연과학의 창시자인 탈레스 ( Thales, 기원전 624년(?) ~ 546년 ) 로부터 시작된 기하학의 명제들이 피타고라스 (Pythagoras, 기원전 582년(?) ~ 497년 ) 에 의해 자연계의 수학법칙을 탐구함으로써 체계적으로 자리잡고 크게 발전됐다고 한다. ( 그거 발전시키기 전에 태어난 연도나 좀 제대로 기록하시지.. ㅡㅡ;; )

그 다음으로 "기하학원론(element)"라는 책으로 집대성을 하는 바람에 빼도박도 못하게 한 유클리드와 수학분야에서 유쾌한 에피소드를 많이 제공한 아르키메데스가 등장한다. 그리스 수학의 전성기는 이때였는가보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그리스에서 유명한 수학자가 한번도 안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 

컴퓨터 관련 용어에서도 element 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오늘날의 영단어는 비슷비슷한 단어들이 많아 혼동스러운데 이 챕터를 읽다보니 엘리먼트 혹은 엘레멘트라고 씌여지는 단어의 뉘앙스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 어떤 책에는 " 구성요소 " 라고 번역해 놓고 component 와 structural element 를 같이 사용는 걸 본 적이 있다. 왠지 혼란스러웠다.

" 나에게 서 있을 공간을 달라. 그러면 지구를 움직여 보이겠다! " 라고 말했던 사람이 아르키메데스다.(지렛대의 원리) " 유레카 ( 알았다! ) " 라고 소리친 사람도 아르케메데스다. 기원전 214년 시라쿠사에서 로마군과 맞서 기계장치(?)로 바다를 지켰고, 성이 함락되자 " 비켜라, 내 그림을 망치지 말지어다!"라고 외친 후, 로마병사의 칼에 맞아 죽었던 사람이 아르키메데스다. 목청이 좋았던 모양이다. ^^;; 일단 흥분하면 소리부터 지르고 보는 스타일이었을지도.. ^^;; 

이 아르키메데스가 남긴 저서를 2000 년 이후에 각종 첨단 기술을 사용해 복원해 내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아직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 두고 자연의 신비를 즐기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 모양이다. ㅋㅋㅋ


원주각 (圓周角) : 원주 위의 한 점에서 그은 두 개의 현이 이루는 각 

영어 : the angle at the circumference 


원둘레 (圓-) : 수학 circumference; the circumference of a circle.

circumference : 

【명사】1. [불][가] 외주(外周), 원주, 주위, 주변; 그 길이[거리]

2. [불] 둘레 안의 면적, 범위.


circumference : 

[Noun] I. the size of something as given by the distance around it

II. the boundary line encompassing an area or object

III. the length of the closed curve of a circle 

- 출처 : DAUM 사전. 


원주각 정말 싫었다. 둥그런데 뭔놈의 각을 만들겠다고.. ㅡㅡ;; 



그는 제자를 두 부류로 나누었다. 한 부류는 수업만 듣고 토론에는 참석하지 않는 일반 학생(아쿠스마틱스)으로, 그들에게는 심오한 지식을 전수하지 않았다. 또 다른 부류는 그리스어로 '마테마티코이'라 부르며 피타고라스 학파의 진정한 회원이었다. 이 말은 나중에 '수학'을 뜻하는 라틴어 '마테마티카(mathematica)'로 발전했다. 
- 수학의 역사. 제2장 그리스 수학의 번영. 32쪽 발췌. 


피타고라스는 역시 차별주의자다. 왜 같은 공식이 똑똑한 놈들한테는 쉽고, 나에게는 어려웠을까? ㅡㅡ;; 



유리수 ( rational number ) 와 무리수 ( irrational number ) 에 대한 설명을 이렇게 쉽게 했었으면 내 인생은 무지 달라지지 않았었을까하는 망상에 빠져보기도 했다. 

피타고라스가 주장한 '만물은 모두 수' 라는 표현에서 '수'란 정수 또는 정수로 표시할 수 있는 비율의 수, 즉 유리수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신념은 루트2(√2)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왜냐하면 루트2가 두 정수의 비, 즉 루트2 = n/m ( n, m 은 서로소인 정수 ) 이라고 한다면 2m²=n² 이므로 n²은 짝수가 된다. n² 이 짝수이면 n 도 짝수이므로 m² 도 짝수가 된다. 이렇게 되면 n 과 m 이 서로소인 정수라는 가정에 모순된다. 이런 모순은 피타고라스 학파에게 큰 도전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피타고라스의 제자 히파수스(Hippasus)가 이 '비밀'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피타고라스 추종자는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배를 타고 가던 중 그를 바다에 빠뜨려 살해했다고 한다. 중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무리수'에 이런 비극적 일화가 숨어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리수'는 '이치에 안 맞는 수'가 아니라 '비교할 수 없는 수(irrational number)'이다.

- 수학의 역사. 제2장 그리스 수학의 번영. 36쪽 발췌.


피타고라스나 그 제자들이나.. 흠.. 


알고보니 유클리드가 웬수.. 
 

유클리드는 먼저 일부 익숙한 기하학적 대상에 대해 정의를 내렸다. 어떤 기하학적 대상이든 명확한 정의가 있어야만 각기 다르게 해석되는 현상을 방지할 수 있고 또 모든 사람이 해당 전문 용어를 동일하게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하학에서 정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의가 있어야만 가장 기본적인 몇몇 명제를 '원시명제'로 사용할 수 있다. 

원시명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정확하며 모두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에 '공리(公理, axiom)' 또는 '공준(公準, postulate)'이라고도 한다. 이들 정의와 공리, 공준에서 출발하여 논리적 추론과 연역을 통해 전체 기하학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바로 이런 사고에 기초하여 유클리드는 그의 위대한 사업, <기하학 원론(Element)>의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잠 못 이루는 밤과 헤아릴 수 없는 역경을 이겨내며 드디어 편찬에 성공했다.

- 수학의 역사. 그리스 수학의 번영. 40쪽 발췌.  


그나마 이번 장까지는 수학적 명제들을 읽어도 그나마 참을 만 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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