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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Memento)는 십수년이 훌쩍 지나고 다시 봐도 역시 재밌고, 복잡했다. 영상미가 뛰어났거나 영화음악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디지털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치니 확실히 원본보다 감각적인 느낌이 들기는 했다. 덕분에 오래 전에는 몇 번을 봐도 알듯 모를듯 했던 영화가 비교적 명료해졌다. 레너드 쉘비(가이 피어스 분)의 비극은 기억하지 못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왜곡하는 데 있었다. 


메멘토(Memento)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영화 "메멘토"는 라틴어 문장 "메멘토-모리"(Memento-Mori)에서 따왔다고 한다. 로마 공화정 시절에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에서 장군들이 너무 기고만장해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노예 한 명을 동원해 이 문장을 상기시키도록 했다고 한다. 뜻은 "remember that you will die"(너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이며, "memento" 가 "remember"를, "mori"가 "to die"를 뜻한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의 제목은 로마시절과는 별개로 19세기에 유행했던 "메멘토 모리" 사진찍기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19세기에는 사랑하는 지인이나 연인이 죽으면 시체와 함께 사진을 찍어 간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웃지 않는 사진들 정도로 검색해 보면 관련 내용을 찾아낼 수 있다. 영화 "메멘토"의 설정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고 보여 지는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동생 조나단 놀란의 단편 소설 "Memento Mori"에서 영화 제목을 따왔다고 한다.

어쨌거나 메멘토(Memento)는 "기억하라" 정도로 해석되고, 중의적인 의미로 이해된다. 주인공인 "레너드 쉘비"의 단기 기억 상실증(? short term memory loss)과 연관지을 수도 있지만, 관객들에게는 절묘한 편집에 대비해 두뇌를 풀가동하라는 짖꿋은 암시가 될 수도 있겠다. ^^;;


편집과 이야기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자신이 본 스토리가 뭔지 정리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한 편집으로 악명(?)높은 "메멘토"는 알고 보면 분명한 패턴이 있었다. 주인공 레너드 쉘비가 지미 그랜츠(래리 홀든 분)를 죽이는 클라이맥스 장면을 중심으로 2 개의 스토리 라인을 진행시킨다. 흑백 화면은 클라이맥스 이전의 시간들이 순차적으로 나오고, 컬러 화면은 클라이맥스 이후의 씬(scene)들이 역순으로 배치된다. 흑백과 컬러 장면들이 번갈아 전개되다가 클라이맥스 장면(scene)에서는 흑백이 컬러로 전환되며 두 스토리라인이 합쳐진다. 

"Remember Sammy Jankis."가 등장하는 스토리라인은 흑백화면에서 레너드가 회상하고, 괴한들에게 목욕탕에서 아내가 살해당하는 회상을 하는 스토리라인은 컬러화면이다. 이렇게 되면 모두 영화 속에 3개의 스토리가 존재하는데, 영화 초반 살인이 벌어지는 외딴 건물로 가는 도중 거대하고 둥근 가스탑(?)같은 것들 3개가 옆으로 펼쳐지는 장면과 억지로 갖다 붙여볼 수 있겠다. ^^;; 

레너드가 살인범 괴한을 쫓는 것은 완전히 오해에 의한 것이고, 새미 젠킨스(Jankis, 스티븐 토볼로스키)에 관한 기억은 레너드의 왜곡된 기억이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사실은 레너드가 단기기억상실증으로 인해 아내에게 인슐린 주사를 과도하게 주입해 죽였다는 것과 레너드가 그것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차 안에서 레너드가 흩어진 총알 중 단지 3 개만 줏어 올리는 것 역시 "여기 세 발의 총알을 준비했다. 진짜를 찾아봐라"라며 장전하는 것을 아닐까 싶기도 하다. ^^;; (분명한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손 안의 총알 3 개를 보여줄 때 차문을 열 때부터 연이어진 화면은 아니었던 것 같다. 언제나 그렇듯 아니면 말고다. ^^;;)


기억해야 할 것들은

기억을 왜곡시킨 연쇄살인마의 공포스러움일지, 단기기억상실증으로 인해 본의아니게 아내를 살해한 뒤 본능적으로 다른 곳에서 그 원인과 책임을 찾아헤매는 남편의 애잔함일지 아니면 기억에 지배당하는 듯 하면서도 자의식으로 해석하려는 인간의 부조리를 그린 것인지는 관객들이 알아서 생각할 문제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영화 관객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것들이 있다. 영화는 성장해갈수록 더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는데, 관객들은 더 많이 볼수록 한 가지 답만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면서도 스스로 내심 결정한 내용만 고집하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꺼내놓는 관객도 있다. 너무 완벽한 모범답안을 내놓는 전문가도 있다. 하지만, 관객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기억을 가지거나 다른 사람이 되어간다. 하나의 영화가 매번 똑같이 보여질 수 있을까? 해석이 달라지면 과거의 것들을 부정해야할까? 명작은 다양하게 곱씹는 맛이 나고 그 각각의 맛이 다 독특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 


특별부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메멘토"는 각본가이자 동생인 조나단 놀란의 "메멘토 모리"라는 단편 소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영화내용과 단편소설의 내용은 상당히 다르다고 하는데, 소설에서는 괴한의 습격으로 인해 아내를 잃게 되고,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다행이 원본소설과 음성파일을 구할 수 있으니 직접 확인해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 ( 이 둘이 같은 내용인지는 제일 앞의 두 문장만 비교해 봤으니 틀린 내용인지도 모르겠다. ^^;;) 


음성파일
https://soundcloud.com/mappingtheterritory/memento-mori-by-jonathan-nolan


원본소설
http://www.impulsenine.com/homepage/pages/shortstories/memento_mori.htm


기타 

아마도 플롯상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바로 레너드 쉘비가 지미 그랜츠를 죽이고 그의 옷가지 등과 차를 가지는 부분인데, 영화에서 명시적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다만, 여러 해석이 가능한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I can't remember to forget you."라는 대사와 연관지어 설명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즉, 자신이 복수를 다했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그 증거로 챙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 



WRITTEN BY
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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