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위쪽, 이탈리아와 불가리아 사이에 " 보스니아 " 라는 곳이 있다. 그 보스니아에서 오른쪽 아랫동네에 " 고라즈데 " 라는 마을이 있다. 이 만화의 주무대인 이곳은 한때 UN 에 의해 " 안전지대 ( Safe Area ) " 로 선포됐던 곳이라고 한다. 그 " 안전지대 " 라고 불리던 시절에 그곳에서는 인종청소가 자행됐다고 한다. 버젓이.. 

뜨문뜨문 보게된 영화광고나 다큐멘타리를 통해 보스니아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만행이 저질러졌다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화면을 통해 제대로 보면 속이 뒤틀릴 듯 해서 일단 미뤄뒀는데, 만화로 볼 기회가 생기니 일단 펼치게 됐다. 

" 팔레스타인 " 쪽 얘기도 갑갑했는데, " 보스니아 " 쪽도 만만치 않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서로 싸우는 이들이 한때는 한 마을에서 이웃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너무 복잡하다. ㅡㅡ;; 

어느날부턴가 하나둘씩 세르비아계 사람들이 사라지더니 갑자기 총을 들고 나타났단다. 어릴 적에 막내 아들과 함께 와서 저녁식사를 하곤 했던 동네 청년이 군복을 입고 자신들에게 총질을 하는 모습을 봤다는 어떤 나이지긋한 분의 얘기가 기억난다. 

UN과 미국, NATO 등이 상황파악을 못하고 있는 동안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갔다고 한다. 딱히 그들이 필요로 하는 자원이나 실리가 없이 명분만 있는 곳에서는 별다른 기대를 할 수 없는 조직들로 보여진다. 그나마 테이턴 합의안으로 이끌어내 이미 황폐해진 지역을 안정화시킨 건 인정해야겠지만서도.. 

언제나 그렇듯 경제적인 문제가 실제적인 원인이고, 비인간적인 인종주의는 핑계에 불과하며, 제어하지 못하는 정치적인 상황은 그곳에 기름을 부어 전쟁이라는 대참사를 일으킨다. ( 시대적 배경, 민족구성, 사회적 배경에 대해 별다른 사전지식이 없는 관계로 이 정도로 이해되는데, 지은이는 양심의 기록자로써 당시 상황을 분석하기 보다 그런 처참한 시간 속에서 살아남았던 이들의 기억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만화 속 조 사코의 모습에서 많은 감정이입이 생기곤 한다. 

고라즈데_책표지

출처 : DAUM 책



http://en.wikipedia.org/wiki/Joe_Sacco 

이 책에서는 " 코믹 저널리즘 ( Comic Journalism ) 의 선구자 " 라는 소개가 있는데, 아무래도 콩글리쉬가 아닌가 싶다. 

http://en.wikipedia.org/wiki/Comics_journalism 
위키피이다에서 찾은 " 코믹스 저널리즘 "

http://www.kcomics.net/Codic/search_view.asp?scidx=1016  
디지털 만화 규장각 이라는 우리나라 사이트에서 찾은 " 코믹 저널리즘 " 

어쨌거나 간단하게 말하면 만화로 표현한 저널리즘 정도 되는데, 이게 좀 생각해 볼 만 하다. 

저널리즘에는 기본적으로 양심을 향한 호소가 들어있다. ( 그밖에도 많은 것이 들어있지만 ) 그 호소의 방법으로 기사, 사진 등이 주를 이뤘는데, 코믹스 저널리즘은 그 절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기사보다는 재밌고, 사진보다는 다양한 표현력을 갖출 수 있다고 보여진다.

저널리즘 기사에는 기자의 신념이나 가치관이 들어있을 수도 있지만, 감상이 들어간다면 좀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만화의 형태를 띄고 있다면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게다가 만화는 기본적으로 스토리를 갖추고 있어 전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데 수월하다. ( 물론 만화도 그 장르에 따라 스토리가 없이 설명만을 이루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스토리를 갖추고 있다. ) 

저널리즘 사진은 아주 강렬하지만, 실제 모습 속에서 카메라로 담아내는 것이라 인물과 배경 등이 원하는 대로 배치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사진 기자는 엄청난 기다림 속에서 감이 왔을 때 미친 듯이 찍어내서 훌륭한 작품 하나를 건져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만화의 형태를 띄게 되면 이보다는 유연하다.

대강 기억해 뒀다가 그들의 생활상을 한군데 모은 후, 인물이나 사건이 보여주는 메인테마를 어느 정도 담아 사실적인 부분과 메시지의 부분을 같이 그려낼 수 있다. 물론 사진보다는 덜 강렬하지만, 스토리를 통해 담아낸 내용들이 머리 속에 쌓이게 되면 어느 정도의 표현력만 있어도 임펙트가 생겨난다. 

게다가 저널리즘 사진에서 담기 어려운 부분들 - 피해자이면서도 별로 동정받기 어려운 사건이나 인물들 - 에 대해서는 우회적으로 비교적 쉽게 표현할 수 있다. 이는 분명 객관적인 시선임을 암시할 수 있어 좋다. 

코믹 저널리즘이라는 표현이나 르포 문학 ( 기록 문학 ) 으로서의 만화라를 표현이 혼동스럽긴 한데, " 고라즈데 " 는 이 두 부분을 모두 담아낸 작품이 아닌가 싶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




제법 시작이 괜찮은 만화를 발견했다. 그림체도 무난하고 야구공을 쥐고 있길래 집었는데, 야구장르의 틀을 뒤집어 쓴 범죄 스릴러물이다. ( 지금까지는.. ) 왠지 요즘 우리나라 야구계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고교 1학년 때, 고시엔 야구시합에서 선배를 때리고 야구부를 등지게 된 주인공.
2년간의 방황 끝에 학교로 돌아가기로 마음 먹었을 때, 느닷없이 예전 고시엔 야구시합에서 맞았던 선배에게서 편지가 도착한다. 
2년전 야구시합에서 있었던 모든 일에 뭔가 배후가 있었다는 의문의 편지를 받은 주인공은 곧 그 선배가 자살했다는 연락도 받게 된다. 재능있고 열정이 넘치는 투수였던 주인공은 그 흑막을 향해 고집스레 나아가기 시작하는데.. 


블랙아웃1권_표지

출처 : 학산문화사


제목인 " 블랙 아웃 ( Black Out ) " 은 정신을 잃다 내지는 TV 화면이 까맣게 어두워지는 것을 말한다. 주인공이 TV 를 보듯 분명히 알고 있던 사실이 실제로는 뭔가 다른 배후가 있다는 걸 알게 되는 순간, 주인공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사건에 접근해 가야만 하는 걸 암시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결말에 따라 정신을 잃을 수도 있겠다.

2권까지는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과 사건에 배후가 있다는 확신이 있는 지점까지 왔다. 일본 스릴러물에 흔히 등장하는 갑갑한 체제, 권위의식과 흑막의 분위기가 충분히 배어있고, 인물들의 등장모습과 관계가 드러나게 하는 기교가 제법이다. 대사가 다소 작위적인 추리소설 느낌이라 아쉽다. 


블랙아웃2권_표지

출처 : 학산문화사



이제 2권이 나왔으니 언제 결말이 날지 알 수 없지만, 한 15 권 ~ 20 권 사이에 끝내야하지 않을까 싶다. 한 스릴러 설정이 무한히 진행되는 건 자멸이고, 형사물처럼 새로운 스릴러 요소를 계속 추가할 수 있는 것도 아닌지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마무리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 쿠니미츠의 정치 ", " 시바토라 " 를 그린 아사키 마사시가 그림을 담당했고, 스토리 작가가 따로 있다는데, 한번도 접해보질 못해서 별다른 느낌은 없다. 

대강의 결론은 스포츠 도박이나 스포츠 활성화를 위한 권력자들의 횡포쯤 되지 않을까 싶은데, 일본 고시엔의 한창 때 인기는 그러고도 남을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덧붙이기 : 야구만화가 아닌 야구라는 스포츠의 탈을 뒤짚어 쓴 스릴러 추리소설이니 이제 표지에 야구공은 그만 좀 그렸으면 싶다. 정말 주인공이 야구할건가? 느낌에는 마지막에 야구복 입고 공한번 던지면서 끝날 분위기인데? ㅋㅋㅋ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




" 쥐 ", " 페르세폴리스 " 는 르포문학 ( 기록문학 ) 의 만화이고, " 팔레스타인 " 은 코믹 저널리즘 ( Comic Journalism ) 의 만화다. 
전자는 역사적인 사건의 실제 당사자들이 표현한 만화이고, 후자는 제 3 자가 해당 지역 혹은 사건을 바라본 시각을 담고 있다. 전자는 그래서인지 상징성이 두드러지는 반면, " 팔레스타인 " 은 상대적으로 만화적인 재미가 스며있으면서도 객관적인 평가도 덧붙여져 있어 메시지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다. 


만화의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알게 되는 그곳 사정과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읽다 보니 이런 부분 때문에 등장인물들의 얼굴을 도드라지게 그린 게 아닌가 싶다. 

안경을 쓴 주인공 ( 조 사코 ) 은 항상 제 3 자의 입장을 일깨우는 멘트로 객관성을 유지하면서도 허술한 듯 허탈한 유머를 구사해 긴장을 적절한 때에 풀어준다. 팔레스타인의 당시 상황이 워낙 심각해 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나름 꽤 웃긴다. 

이란,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의 중동(?) 지방에 대한 얘기는 접하기 힘들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만화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살펴보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중심에 놓고 꾸미지도 비하하지도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곳에도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있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폭압적인 정권이 있었다. 

" 영광의 탈출 ( 1960, Exodus ) " 라는 이스라엘 건국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있다. 어릴 때는 명작처럼 보였지만,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스라엘 건국은 영국이 처음 손을 댔고, 미국과 소련이 마무리지어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사태를 야기했다. 시오니즘은 이런 이스라엘 민족이 자신의 땅에 정착하려는 의지를 뜻한다. 인티파다는 " 각성, 봉기 " 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해 벌이는 민중적인 봉기를 뜻한다고 한다. 몇 차례 대규모로 진행됐고, 잠정적으로 계속되고 있는 듯 보인다.  


진지한 만화책들 중에 정말 저널리즘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있어 좋다. " 오리엔탈리즘 " 을 주창한 에드워드 사이드가 조 사코에게 보내는 메시지나, 팔레스타인 상황을 1945년부터 2002년까지 시간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후주는 만화가 보여준 심각성을 더욱 자세하게 알려준다.

최근 조 사코는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  을 발표했다. 아직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




블라덱 슈피겔만은 1906년 10월 11일에 태어나서 1982년 8월 18일에 심장마비로 죽었다. 
아냐 슈피겔만은 1912년 3월 15일에 태어나서 1968년 5월 21일에 자살했다. 
블라덱의 아들인 리슈 슈피겔만은 태어난지 몇 해 되지 않아 죽었다. 
블라엑의 아들인 아트 슈피겔만은 유태인 아버지가 겪었던 피의 역사를 " 쥐 ( MAUS ) " 라는 만화로 옮겼다. 
그들의 이야기는 두 권의 만화책으로 끝났지만, 그 여운이 언제 사라질지는 알 수 없다.  


책표지

출처 : DAUM 책




1권에서는 누구나 알고 있는 나치 시절의 유태인 학살에 관한 또다른 좋은 작품 정도로 비춰줬는데, 2권에서는 왜 걸작인지 납득할 만 했다.


속표지에는 블라덱의 첫번째 아들 리슈의 사진이 그대로 등장한다.
작품 중간에는 블라덱의 수용소 시절 사진이 삽입되어 있다.
유태인인 블라덱은 흑인이 자신들의 차를 얻어타게 되자 히스테릭하면서도 인종차별적인 태도를 강하게 드러낸다.
블라덱은 " 쥐 2 " 가 완성되어가던 중에 사망했다. 아트 슈피겔만은 당시의 느낌도 만화에 그대로 넣어놓았다. 아트 슈피겔만은 분명 뛰어난 작가다.
그림체 역시 일부로 이런 스타일로 그려넣었다는 걸 다른 책을 통해 알게 됐다. " 쥐 " 의 그림은 화려한 효과보다 만화가 전개되는 공간의 감각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이런 스타일로 그렸다고 한다. 이 작품을 얼마나 제대로 소화한건지 스스로 의심스럽긴 하지만, 듣고 보니 정말 공감된다. ( 아트 슈피겔만은 자신의 작품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한다. )


MAUS II 여기서 나의 고난은 시작됐다. 

하나, 마우슈비츠 ( MAUSCHWITZ ) 

둘, 아우슈비츠 ( 시간은 흐른다, AUSCHWITZ ( TIME FLIES) )  

셋, ... 여기서 나의 고난은 시작됐다... ( ... AND HERE MY TROUBLES BEGAN ... ) 

넷, 구원되다  ( SAVED )

다섯, 다시 아냐에게 ( The SECOND HONEYMOON ) 

작품해설 - 조엘 개릭  

** 작품해설은 " 쥐 " 가 완간되기 전에 씌여졌지만 내용이 좋아 삽입되어 있다고 한다. 다소 의아한 부분이 있기는 하다. 

쥐2여기서나의고난은시작됐다
카테고리 만화 > 그래픽노블
지은이 아트 슈피겔만 (아름드리, 2007년)
상세보기


요즘 유태인들에 관한 이미지 혹은 소식이 아주 부정적이었는데, " 바시르와 왈츠를 " 이나 " 쥐 " 를 보게 되면서 그들에게도 자기반성의 역량이 충분히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우리나라는 아직은 모르겠다. ) " 쥐 " 는 정말 자기 얘기를 이렇게 객관적으로 쓸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냉정한 시선을 취하는데 그 바람에 역설적으로 더 깊은 울림이 느껴졌다. 생지옥에서 살아나온 유태인 아버지를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아닌 한계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왜곡없이 보여주고 있다. 유태인 학살 만행의 산증인을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문제로, 가족 간의 문제로 들여오면서도 양쪽 다 흐트러짐없이 서술하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준다. 

7천 여장의 스케치, 시퀀스 설정, 그림과 말의 배분이 300 여장에 농축되어있다. 1권에서 말한 영화적 편집 기법의 도입이란 것 같긴 한데, 그 무게가 만만치 않다. 


덧붙이기 : 1권에 있던 " 지옥혹성의 죄수 " 편은 실제 어머니의 자살에 대한 죄의식에서 비롯된 아트 슈피겔만의 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마약 등으로 인해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었고, ( 한달정도? ) 정신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웠기에 " 쥐 " 라는 만화를 통해 많은 부분을 해소하려고 했단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




1992년에 퓰리쳐상을 수상한 전위만화, 르포만화 ( 기록문학 ) 다. 만화 광고로 이런 게 먹힐까 싶기도 하지만, 만화를 못 보게 할 수 없는 학부모나 만화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게 익숙한 이들에게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전위 만화 ( 前衛 漫畵 ) ; 아방가르드 코믹스avant grade comics


예술사에서 ‘전위 예술’은 20세기 초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자연주의와 고전주의에 대항하여 등장한 예술 운동이다. 오늘날에는 기성예술에 대한 반항이나 혁명 정신이 대중문화로 확산되어, 특정 유파나 운동이 아닌 첨단적인 경향을 띠고 있다. 만화에서 전위 만화는 이런 예술 운동과 성향을 같이 하는데, 아트 슈피겔만과 잡지 ‘RAW’를 중심으로 형성된 실험적인 만화를 가리킨다.

- 출처 : 디지털 만화규장각 용어사전 ( http://www.kcomics.net/Codic/search_view.asp?scidx=891 )  


미국의 유수 언론에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던 " 쥐 " 는 1권을 내기까지 8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단다. 해설 부분에 보면 만화를 영화에서처럼 " 편집 " 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 그린 분량이 만화로 나온 분량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다. 해설쪽에서는 이게 참 대단한 시도처럼 언급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좀 납득하기 힘들다. 그리기 전에 프리프러덕션 작업처럼 꼼꼼이 구상한 후에 그리는 것과 다 그려놓은 것들을 영화처럼 서로 자르고 옮겨붙여가며 극적 효과를 더하는 것은 만화에서는 방법적으로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둘 다 충분한 시간과 고민을 들였다면 말이다. 

전위만화의 선두주자로 " 쥐 " 에서 여러가지 시도가 있었다는데, 잘 만들어졌다는 것 외에는 찾기 힘들었다. " 지옥 혹성의 죄수 - 하나의 일화 " 같이 삽입된 만화가 오히려 사차원적이어서 강력했다고나 할까?

2차 세계대전 때 유태인 학살에 관한 내용은 이제 거의 평범한 소재나 다름없다. " 쥐 " 가 전 2권으로 마무리 됐던 1992년에는 조금 달랐었겠지만..

쥐_책표지

출처 : DAUM 책



그럼에도 " 쥐 " 를 읽게 되는 건 르포만화의 진수와 표현력 때문이다.

기록문학이라는 르포장르의 특성인 리얼리티가 살아있는데, 실제 지은이의 아버지의 전쟁경험담이니 뭐라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그럼에도 치우치거나 호소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럼에도 만화그림체를 보면 사실적인 내용을 사실적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거다. 유태인, 독일인, 미국인, 그밖의 캐릭터들을 쥐, 고양이, 개, 돼지들로 그려넣으면서도 그밖의 모든 사건과 배경은 현실적으로 깔아 상징성을 극대화했다. 참 아이러니하지만 읽다 보면 이런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정말 리얼리티하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목차
쥐 1 : ( 한 생존자의 이야기 ) 아버지에게 맺혀 있는 피의 역사

아냐에게 바친다. 
** 아냐는 아트 슈피겔만의 어머니 이름이다. 
 

하나 / 호남자 ( The SHEIK )

둘 / 신혼 ( The HONEYMOON )

셋 / 전쟁 포로 ( PRISONER of WAR )

넷 / 올가미 조여지다 ( THE NOOSE TIGHTENS )

다섯 / 쥐구멍 ( MOUSE HOLES ) 

여섯 / 쥐덫 ( MOUSE TRAP )


1권은 아트 슈피겔만의 아버지가 가스실 학살로 악명높았던 아우슈비츠에 갇히게 되는 데까지 전개된다. 아들인 아트 슈피겔만은 아버지가 어머니 아냐의 일기장을 없애버렸다는 사실에 분개하면서 마무리된다. 

150 쪽 남짓의 얇은 분량임에도 완성도나 스토리면에서 깊은 재미를 준다. 철십자 훈장 가운데 검은 가르마와 검은 콧수염을 단 고양이 얼굴과 그 밑에 있는 한쌍의 암수쥐를 그린 표지가 상징의 극치가 아닐까 싶다. 이 한쌍의 쥐 이미지에서 우리는 " 생존 " 을 떠올릴 수 있다. 

쥐I
카테고리 만화 > 그래픽노블
지은이 아트 슈피겔만 (아름드리, 2002년)
상세보기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