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오프닝은 어떤 전투 상황이 소리로 진행되는데서 시작한다. 오프닝 크래딧이 등장하는 동안,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곧 시대적 상황이 짤막하게 자막으로 등장한다. 이런 소리들이 나중에 "퓨리"의 부대원이 어떤 수준의 고참병들인지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후, 어떤 곳인지 알 수 없는 평원에서 햇빛을 등진 한 인물이 등장하며 시작된다. 하얀 말을 탄 군인임을 알게 될 즈음에는 주변환경 역시 전투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은 전쟁터임을 알게 된다. 아직 화약연기가 가시지 않은 채 곳곳에 탱크나 전투의 잔해들이 널부러져 있다. 

군인이 한 탱크 옆을 지나는데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와 그를 습격한다. 단칼에 군인을 죽인 또다른 군인은 익숙한 솜씨로 말의 안장을 걷어내고, 말을 전장 밖으로 돌려 보낸다. 그는 워대디이고 자신의 탱크 위로 다시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잠시 서 있는다. 곧 탱크 안으로 들어간다.

이 도입부는 워대디(브래드 피트)가 노먼 앨리슨(로건 레먼, 하얀 말)을 전쟁 밖으로 살려서 돌려보낼 것이고, 자신은 전장에 남은 채 그대로 역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한다고 본다. 노먼 앨리슨을 묶고 있던 허위의식과 군인의 의무 같은 것은 무자비하게 걷어내고, 자유인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재밌는 장면으로는 노먼 앨리슨이 처음 탱크를 타고 이동하던 중 여인을 자전거를 세운 채 탱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어여쁜 아가씨를 발견하는 장면을 들 수 있겠다. 영화 속에서 "퓨리"의 부대원들은 여자와 회포를 푸는 일에 갈급해 하는 캐릭터들임에도 그 순간, 탱크 바로 옆에 서 있는 여인을 바라보는 이는 노먼 뿐이다. 다른 고참병들이 그 여인에게 집중했다면 훨씬 요란스러웠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얘기는 거의 진실에 가깝다. 이 장면에서 노먼은 아직 상황판단을 못하고 있는 신출내기라는 걸 잘 보여준다. 영화 속에서 애타게 여자를 찾던 고참병들이 신비롭게도(?) 그녀를 그냥 지나친다. 노먼은 숲 속에 있는 독일군 소년병에게도 같은 반응을 보였다가 아군에게 큰 피해를 입힌다. 

탱크는 부대원들의 상하관계가 잘 드러나도록 화면을 잡는데, 워대디(브래드 피트)는 항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도록, 바이블(샤이아 라보프)은 바로 비스듬한 곳에서 살짝 아래쪽으로 볼 때가 많다.

가장 재밌는 액션장면은 독일 티거 탱크와의 전투씬이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브래드 피트와 로건 레먼이 가정집에서 머무는 장면이다. 브래드 피트의 내적 갈등이 잘 드러난다. 전쟁이 끝나고 신참병처럼 살고 싶은 바램과 지긋지즉하면서도 떨쳐낼 수 없는 고참병들 사이를 봉합하지만, 실제로 그 갈등을 억지로 씹어삼키는 건 워대디다.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곳은 엔딩 부분인데, 훨씬 더 품격있고 감정이입이 되도록 찍었어야 되지 않나 싶다. 영화 내내 유지해 왔던 리얼리티 때문인지, 아니면 액션이 부족했다고 느꼈던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막판에 탱크에서 바람빠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ㅡㅡ;;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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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밴드 오브 브라더스"(HBO 미니시리즈) 이후, 전쟁영화들은 웬만한 리얼리티를 구현해내지 않으면 안되는 부담감을 갖게 됐다. 이 무언의 압박들은 전쟁터의 현장감을 관객들에게 만족스러운 수준으로 제공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그리고 있다는 비슷비슷한 주제로 오해받아 평가절하되기도 한다. 

이런 불운한 영화 목록에 추가될 영화 중 하나가 "퓨리"다. 준수한 리얼리티를 구현했고, - 비록 제2차 세계대전에 사용됐던 전차(탱크)들이 다시 싸울 준비를 하는데에는 이틀이나 걸리지만, 영화에서는 몇 시간만에 완료시켜 버리는 것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 - 액션영화로써의 박진감도 있지만, 기존의 전쟁영화들과 차별화된 작품으로 간주하기에는 약간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목표를 가지고 소수의 인원이 임무를 수행하는 설정은 많은 전쟁영화나 액션영화에서 흔하게 나오는 패턴이다. "퓨리"는 이런 설정을 깊이있게 변주해내려 노력했다. 영화가 이런 설정을 필요로 했던 건 감독의 주제의식과 관련있다고 보는데, 감독은 미국에게 위대한 승리의 전쟁으로 알려진 제 2 차 세계대전에서 실제로는 미군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정신적으로 나약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퓨리_한장면

출처 : DAUM 영화




비록 전쟁터에 있어도 나만 착하면 된다는 허위의식에 가득찬 신병과 군인으로써 숭고한 목표를 가지고 임무를 다한다기 보다는 그동안 살아남았으니 앞으로도 살아남겠다는 본능만 가득찬 고참병들, 그리고 두려움을 억누른 채 책임감으로 무장한 전투의 베테랑 리더는 관객들에게 감독이 일깨워주고 싶었던 미군의 제 2 차 세계대전 속으로 안내한다. 

미군의 주력이었던 탱크는 독일의 그것에 비해 아주 열악했고, 군인들을 악에 받쳐 살아남기 위해 적을 죽였다. 살의에 불타지 않는 동료는 인정받지 못했고, 전쟁의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서 부녀자들을 겁탈하는 것은 별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분노에 타들어간 전쟁영웅들과 막 적개심이 타오르기 시작한 신병이 탱크 안에서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탱크는 그들의 분노를 분출해 주기에도, 담아내기에도 부족했다. 단지 이곳저곳으로 실어나르며 작은 안식들을 제공하다 마침내 구원의 현장에서 멈춰서 버린다. 함께 탱크를 탔던 팀원들은 책임을 다하려는 인간으로써, 군인으로써 지긋지긋한 복수의 사슬들을 끊어내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독일군과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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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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