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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는 만화 자체도 괜찮지만, 만화를 그린 사람 혹은 시대 배경이 만화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1934년 12월부터 1937년 12월까지 157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 아버지와 아들 " 은 무정부적이고, 무당파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스타일인데, 이게 당시에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역시 나치의 파시즘이 절정에 달했던 때의 국가의 압력에도 가능한한 우회적으로 인간의 자유, 소중한 가치들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나치는 모든 미디어를 장악해서 국가의 홍보수단으로 이용하던 때였습니다. 

저자인 에리히 오저 ( 혹은 e. o. 플라우엔 ) 란 분은 독일에서 태어나 나치가 정권을 잡았을 때, 독일 정치를 비판하다가 결국 투옥되어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아버지와아들
카테고리 만화 > 교양만화
지은이 에리히 오저 (새만화책,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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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슬픈 배경과는 달리 만화에서는 따뜻함이 오롯이 묻어납니다. 대머리 아버지와 순수한 아들 둘이 생활하고 모험을 즐기며 원없이 화목함을 즐기고 있습니다.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했기에 다소 낯선 얘기들이 나오기도 하지만, 대사는 전혀없고, 가끔 텍스트만 등장하는 " 아버지와 아들 " 은 그 컷들만으로도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합니다. 

일상적인 생활에서 발견하는 재미들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읽다가 저녁식사에 늦고 있는 아들을 부르러 갔던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놓고는 오히려 그 책을 붙잡고 있는 에피소드라던가, 치과의자에 앉아 의사에게 발악하는 아들에게 모범을 보여주려던 아버지가 아들과 똑같이 반응하는 에피소드, 유리창을 깨고 혼나면서 나가버린 아들을 찾아 헤매다 집에 돌아와 보니 유리창 한 개를 더 깨버리고 있는 아들을 보며 꼭 안아주는 에피소드는 이젠 너무 평범해서 TV 나 드라마에 거의 나오지 않던 훈훈한 모습들입니다. 아이들 이발소에 의자 대신 목마 같은 것을 놓은 에피소드는 아이디어가 좋더군요. 어디선가 본듯도 하지만, 이 책이 1930년대니 아마 이게 그것들보다 먼저일 듯 싶습니다. 

허를 찌르는 에피소드들도 몇몇 있었는데, " 일년후 " 라는 에피소드에서는 나무에 아이의 키를 재기 위해 못을 박아 두고, 일년 후에 다시 재보려 하니 나무가 더 자라서 아이가 키가 줄어버린 듯 한 엉뚱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런 게 만화가의 상상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강도가 총을 들고 위협을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노는 데 정신이 팔려 신경쓰지 못하자 그냥 가버리는 도둑도 나오고, 아버지와 아들이 경찰에게 같이 혼나기도 하고, 아버지 혹은 어른들의 허위의식을 비꼬면서도 절로 웃으며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데리고 온 개가 바다에 던져버린 막대기를 잘 물어오자, 구경하던 이가 자기도 우산을 바다에 던져 보자 모른 척하고 가버리는 짖꿋은 부자이기도 합니다. ㅋㅋㅋ

" 방학 첫날 " 은 아들이 자고 있을 때 침대와 함께 들판에 옮겨두는데, 왠지 찡해지더군요. 아이가 일어나 보니 말 두마리, 새와 소와 닭과 토끼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고, 아침 해가 떠오르는 상황인데, 이런 게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아버지가 풀숲에 숨어 그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는 게 언뜻 몰카같아 보이지만, 사실 자기 자식이 그런 아침을 맞이해서 기뻐하는 모습으로도 보여집니다. 

그밖에도 항상 " 안돼 " 라고 소리치던 아버지가 스스로 엉덩이를 때리며 반성하는 등의 어른으로서의 자기 반성도 자주 나옵니다. 

이런 아기자기한 에피소드들이 갑작스레 부자가 되고, 무인도에 갖히는 등의 변화를 겪게 되는 건 바로 만화 외부 사정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후반부 얘기들이 얼마 진행되지 않아 파격적인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밑도 끝도 없이 "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안녕~ 다시 봅시다! 아버지와 아들 " 이라는 메모가 등장하고, 아버지와 아들은 어딘가로 향한 길 위로 걷다가 달을 향해 서서히 떠오르더니  " 6주가 흐르고 나서.. " 라는 문구가 등장한 후, 달은 아버지의 얼굴이 되어 있고 그 옆에 별 하나가 반짝입니다. 그냥 퍽하고 TV가 꺼지는 느낌이랄까요?

지금보다 훨씬 어렵고 험난한 시대의 만화이지만, 아이들이나 철부지 아빠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저도 조카를 보느라 애 좀 먹었는데, 이 책을 보니 새삼 좀 더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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