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홈페이지를 하나 갖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간단하게 홈페이지를 만들고, 게시판 소스를 옮겨 붙여보고, 여러 이미지들로 이리저리 꾸며보기도 했지만 유치해서 스스로도 못 봐줄 정도인데다 몇 번의 수정과 리뉴얼을 하다 보니 지루하기도 해서 좀 쉽고 재밌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과 함께 접었다.

처음 욕심에는 개인의 일기이면서 자료도 정리해 두고, 재밌는 얘기거리를 남겨뒀다 돌아볼 수 있었으면 했지만, 당시에는 거의 혼자 도맡아 모든 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괜한 무리다 싶었다. 그냥 기술의 발전을 기대해 보마 하며 오랜 시간을 보냈다. ( 기억으로는 모자이크, 넷스케이프 네비게이터라는 브라우저가 등장했던 시절이었다. )



오랜 후에 컴퓨터 관련 회사에 다니면서 잡무에 시달리다 커뮤니티 사이트의 관리와 홍보 일을 맡게 됐는데, 관련 자료를 찾다가 테터툴즈와 티스토리라는 블로그 사이트들을 발견했다. 눈이 번쩍 뜨이는 순간이었다. 역시 기술은 발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블로그명함_앞면_2011.07.13

블로그명함. 처음에는 설치형과 가입형 2가지를 모두 경험했다.

 


웹2.0 서비스들과 함께 블로그를 익히기 시작했는데, 정말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닥치는 대로 사용해 봤다. 업무를 핑계로 참 여기저기 머리도 디밀어 보고.. ( 그놈의 아이스 브레이크 - 당시 오프라인 모임에서 서로 서먹함을 없애고자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인데, 얼음처럼 썰렁한 분위기를 깨보자는 의미였다. - 는 언제나 정신을 얼려놨다. ) 블로그에 삽입할 수 있다는 웹서비스라면 한번씩은 다 넣었다가 블로그가 엉망진창이 되기도 했다. ( 윙박스, 형광펜, 구글광고 등등 )

몇 개월을 보내고 나니 남은 건 몇 장의 티셔츠와 사은품인 메모지들 뿐이었고, 왠지 모르게 허탈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재밌긴 했는데,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이..


이 때 발견한 책이 바로 " 블로그 세상을 바꾸다 " 라는 책이다. 이 책은 요즘 많이 나오는 블로그 관련 서적들과는 많이 다르다. 블로그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보다 중요한 어떤 자세로 블로그를 해야 하는가에 관한 책이다. ( 최근 불미스런 일이 벌어진 어떤 " 파워 블로거 " 분은 이 책을 먼저 읽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 블로그를 시작하는 분들께는 꼭 추천하고픈 책인데, 아직 읽지 못한 채로 절판된 " 웹강령 95 " 라는 책도 같이 추천하고 싶다.


블로그세상을바꾸다나와회사를변화시키는블로그마케팅노하우
카테고리 경제/경영 > 마케팅/세일즈 > 마케팅이론 > 인터넷마케팅
지은이 로버트 스코블 (체온365, 2006년)
상세보기


블로그가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었는지에 대한 얘기와 성공적인 사례들, 자세들에 대해 아주 강력하게 피력하고 있다. ( 이 책에 나온 블로그의 영향력이 우리나라에서는 벌어지지 못할 줄 알았는데, 이번 어떤 " 파워 블로거 " 분의 억대 수익 사건을 통해 매우 실감했다. ) 이 책을 읽고난 후에는 어찌나 블로그를 하는 게 부담스러웠던지 잠수아닌 잠수를 타기도 했다. 고민하다가 자판을 두드리지 못한 것이다.

** 참고로 옛글을 찾아봤더니 희안한 글이 하나 발견됏다. 아마 이 책을 읽던 중에 작성한 글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회사에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작성했을지도 모른다. 부디 웃지는 말아주길 바란다. 이 어색한 진지함이 뭔지는 모르겠다. 당시에 주변 사람들을 꼬신 기억은 난다. 물론 영향력은 제로였다. --;; ( 명색이 포스팅 제목은 " 블로그를 하는 이유 " 다. )

http://www.mmd2.co.kr/12


그 와중에도 재미삼아 블로그 명함이란 것을 만들었다. 어떤 디자이너 블로그에 의뢰해서 내가 디자인의 대략적인 초안을 적어주니 아주 마음에 들게 만들어줬다. 크게 사용할 일이 없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언젠가 블로거들끼리 직장명함보다 블로그 명함을 주고 받는 게 자연스러워질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는데, 언젠가 문화도 변화하길 기다릴 뿐이다. ( 아니나 다를까 명함은 아직도 케이스 그대로 대부분 쌓여있다. --;; )


블로그명함_뒷면_2011.07.13

명함보다 그냥 메모지로 쓰라고 뒷면은 아예 비워뒀다. 좋게 보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지만, 사실 별 볼일 없다는 의미.. ㅋㅋㅋ



그후 개인적인 사정으로 몇년간 블로그를 쉬었다. 설치형 블로그도 도저히 같이 꾸려갈 수 없었고, 구입했던 도메인도 유지하지 못했다. 개인적인 일들이 정리된 후 보니 아직 티스토리의 블로그가 남아있었는데, 손쉽게 다시 손이 갔다. 사실 어색함, 재미같은 것도 다 잊어버렸기 때문인데, 그래도 손쉽게 다시 손이 간 건 역시 뭔가 내가 원하던 것이 아직 블로그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도메인도 다시 2개를 맡아뒀다. 언젠가 설치형을 다시 사용하게 될 수도 있을테니..





나이를 많이 먹어도 대부분의 남자는 어린애라는 말이 있는데, 내 경우에도 그렇다. 전혀 상반된 생각들이 나열돼 있고, 내가 누군지 아직도 궁금하고, 널널한 모습이 싫지 않다. 홈페이지를 갖고 싶었던 이유와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도 아마 머리속에 흩어진 생각들이나 살아가면서 기억하고 싶었던 모습들이 블로그에 그대로 담겨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너무 솔직해지지는 말자는 기본 생각이 있지만, 가끔 블로그에 쏟아져 나온 것도 있다. 돌아보며 웃을 일도 이미 생겼는데,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나면 더 많아질 것 같다.

쏟아내다 보니 어느 덧 생각이 정리된 것 같다.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는 재미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소통을 위해서이기도 하다. 주변 사람들과의 소통이 아니라 나와 내 블로그의 소통이다. 이게 먼저 자연스러워져야 주변 사람들,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도 원만해지지 않을까 싶다. 내가 원하고, 기록하고, 표현하고 싶은 말들을 자연스럽게 적을 수 있을 때가 올 수 있으면 좋겠다. 중2병, 허세 소리 듣는 게 무서워 못 적는 게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근다는 기우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적어놓은 게 무서워질 때도 있다. ^^;; 

점점 블로그가 친구처럼 생각되고 있다. 드디어 환상계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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