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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류승완 (마음산책,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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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 영화감독
출생 1973년 12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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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진행형같은 느낌의 류승완 감독이 쓴 책이 있다길래 낼름 집어봤다.
별로 두꺼워 보이지도 않고 사진도 몇몇 있어 쉽게 넘어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크게 프롤로그, 1부 영화 보는 류승완, 2부 영화 찍는 류승완으로 나눌 수 있는데, 류승완 감독이 새롭게 쓴 글보다 기존에 있던 공개 혹은 비공개글들이 더 많다. 속으론 류승완 감독이 뭔가 관객들에게 나 이런 사람이야~라고 외칠 듯한 흐름을 기대했던 부분이 있어 아쉬감이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글이나 인터뷰들이 못 보던 것들이라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었다. 부분적으로는 짜증나는 곳도 있었다.

프롤로그가 책의 흐름을 잘 암시하고 있다.
산만하다. --;;

특히 1부 " 영화 보는 류승완 " 은 산만한데다 지루하기까지 했다. 류승완 감독이 결코 글을 잘 쓰는 감독은 아닌 듯 싶다. 그렇다고 수준 이하라는 건 절대 아니다. 단지 자신의 스타일이나 대사빨을 책에서는 영화에서만큼 잘 드러내지는 못했다.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와 그에 관한 얘기들, 그리고 살아가는 얘기가 불쑥불쑥 배열되어 있다. 가지런하기라도 했더라면...

2부 " 영화 찍는 류승완 " 은 묘한 선물같았다. 1부에서 워낙 지쳐서 2부는 의무감에 읽기 시작했고, 계속해서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끝날건지 감흥도 없이 막연히 읽고 있는데, 문득 앞 얘기와 뒷 얘기가 반복적인 부분들이 발견되었다. 다시 목차 등을 살펴보니 2부는 류승완 감독의 작품과 인터뷰를 역순으로 배치하고 질문은 순서대로 늘어놓은 것이었다. 이것을 눈치챈 후에는 갑자기 책의 재미가 가파르게 상승했다.

책 속에서 이창동 감독님의 " 오아시스 " 와 " 박하사탕 " 이 종종 언급되는데, 박하사탕의 틀거리를 보는 듯 했다. 시간을 거꾸로 가면서 마지막에 가서야 류승완 감독의 시작을 알린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를 만나게 된다. 91 가지 질문 중에 크게 돋보이는 건 없었지만, 인터뷰들을 자세히 느끼면서 읽고 있으면 류승완 감독이 어떻게 변해왔는지가 느껴진다. 영화 " 박하사탕 " 처럼 뒷부분으로 갈수록 류승완 감독이 얼마나 진솔하게 시작해 왔고, 어떻게 지쳐가고 있으며,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 인터뷰에서도 순수하게 최선을 다했던 모습을 책의 뒷부분에 가서야 발견할 수 있다. 지금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제는 쉽게 속내를 알 수 없도록 적당히 세월을 먼지 속에 자신을 반쯤 묻어두면서도 여전히 눈빛은 반짝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 영화 찍는 류승완 " 이었다.

류승완_죽거나혹은나쁘거나

출처 : 네이버영화. 류승완의 본색. 353쪽. 내가 생각하는 류승완의 이미지


나에게도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가 시작이었다. 그 후 " 다찌마와 리 " (인터넷판), " 아라한 장풍대작전 " ( 원래 제목이 " 아라한 " 이고, " 장풍대작전 " 은 부제였단다. ) , " 짝패 "  그리고 " 부당거래 " 까지 봤다. 첫 단편이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에 삽입된 " 패싸움 " 인줄 알았는데, 이 책을 통해 " 변질헤드 " 라는 단편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 ( 이것때문에 다음까페에 있다는 류승완 까페에 가입하는데, 애를 먹었다. ^^;;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은 " 변질헤드 " 다!! )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 에서 필을 받을 후에 " 다찌마와 리 " 를 보면서 제대로 된 장편 상업영화를 우리에게 보여주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싶었다. 왠지 충무로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영화 시스템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고 추측했었고, " 아라한 장풍대작전 " 까지도 그런 생각이었다. 흥행면에서 비교적 성공했다고는 하지만, 내 예상에는 이것보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 것 같았다.

" 짝패 " 를 보면서 왠지 여기까지가 류승완 감독의 저력이 아닐까 싶었다. 평소 들었던 류승완 감독에 대한 귀동냥으로는 딱 류승완 감독 스타일 그 자체였고,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재밌게 즐겼으면 " 죽거나~ " 이후 내려갔던 롤러코스터의 흐름이 정점에 오른 듯 했다. 물론 일개 관람자의 짧은 소견이었을 뿐이다. " 부당거래 " 에서부터는 그간의 류승완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뭔가가 엿보이고 있었다. 이제는 류승완에 대해 뭔가를 기대한다거나 측정하려는 무대뽀 영화소시민의 양아치적인 재미를 버려야 할 때인 것 같다. ( 괜시리 아는 척 하면서 감독에 대해 이래저래 잣대를 들이대는 재미는 3류 영화팬에게는 아직 버리지 못하는 계륵이다. )

그는 자신의 길이 정해졌다고 한다. 그 길을 디딜 첫걸음 속에 어떤 것들이 묻어있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알게 됐고 그걸로 족하다. 오랫동안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튼튼한 두 다리를 갖기를 원한다는 류승완 감독. 언젠가는 또 길가에 영화를 툭 떨어뜨려 놓으리라 본다. 줏어 보는 건 내 자유지만, 그 유혹을 떨쳐내기는 힘들어 보인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먹었던 인터뷰를 기록해 둔다. 좀 길다. 다른 짧고 간결하고 좋은 얘기도 있지만, 이 단락은 나중에라도 가끔 다시 읽어보고 싶다.

황(황경신 기자) :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이 있다면?
류(류승완 감독) : 저희 아버지가 저희 어머니 병간호할 때. 중1 때 어머니가 병원 계시다가 잠깐 퇴원하셨는데, 집안 다 망가지고 그 많던 재산 다 날리고 정말 깡촌으로 이사 갔어요. 그런데 아버지랑 어머니가 어깨동무하고 걸어가시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도 어머니 병간호 하실 때 병 얻으신 건데,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 소화제로만 버티신 거예요. 그게 암이었는데... 사람을 얼마나 좋아하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나.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러셨어요. 어머니가 몸을 펴고 주무시질 못했는데, 소원이 있다면 아버지를 꼭 껴안고 자고 싶다고. 아버지가 저녁마다 어머니 발 씻겨주고... 불행한 순간에, 아무리 최악의 상황이 겹치더라도 내가 정말 살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 때문에 사람이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거든요. 고통스럽다가도 눈을 떴을 때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친다거나...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에서 보인 것들이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저희 할머니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할머니가 멀미를 하셔서 차도 잘 못 타시고 저희 키우려고 집에만 계셨거든요. 어제 할머니의 작은 방에 누워 있는데 아파트 창문에 창살이 있잖아요. 밖의 빛을 받아서 그림자가 생기는데 그걸 보니까 감옥 같더라구요. 할머니가 이 방에 누워서 저걸 봤겠구나... 그런 걸 보면 뭐라고 형언할 수 없이 뭉클뭉클하고 엄마들 마디 두꺼워진 손이나, 젊은 놈들에게 욕 먹으면서까지 현장에서 일하는 아저씨들이나... 그런 게 감동적이에요.
- 류승완의 본색. 364쪽.

p.s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이후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인터뷰를 했다. 뛰어난 인터뷰어도 많이 만났고, 뛰어난 기록도 많이 있지만 <PAPER> 황경신 기자와의 이 인터뷰는 정말 잊을 수 없다. 사람에 대한 관심, 현장의 기록, 기록된 순간 역사가 되는 글에 대한 책임.
기회가 된다면 정말 편하게 다시 한 번 만나 이때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혹은 바뀌지 않았는지,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한 번쯤 그녀의 생각을 듣고 싶다. 사람과 사람으로 만난 추억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 류승완의 본색. 367쪽. 류승완 감독의 코멘트.

뜬금없지만 좋은 가정, 훌륭한 부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풍족한 생활을 주기 보다 풍족한 기억을 남겨주는 게 더 훌륭한 게 아닌가 싶다. 부족함 없이 해주기 위해 돈과 이벤트에 부모가 집중하게 되면 자식은 무엇을 먼저 떠올릴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가난이 자랑은 아니고.. 단지 부모의 마음이 어디 있는지를 자식이 좀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소중한 것이다. 일단 결혼은 못 했지만, 결혼한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다. ㅋㅋㅋ ( 이눔의 생각의 오지랖이란.. ^^;; )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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