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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에 우연히 " 상리 인비테이셔널 " ( Sang Lee ) 4강전 당구경기를 보게 됐습니다. 전설처럼 듣기만하던 코드롱과 브롬달의 경기였습니다. 세계 3쿳션 당구계의 4대천왕이라고 불린다던(?) 이들의 맞대결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에 하던 일을 미뤄두고 잠시(?) 시청했습니다. ^^;;

경기룰은 3 쿳션으로 50 점을 먼저 치는 쪽이 이기는 것이더군요. 수원 3C 월드컵 당구에서는 15점 3 ~ 5 세트 경기였는데요. 당구를 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마추어 ( 300 이하 ) 들이 3 쿳션으로 50 개를 치려면 하세월일 겁니다. ㅎㅎ

어쨌거나 이 두명이 얼마나 잘 치는지 재밌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정말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경기 초반 브롬달이 친 샷이 두번째 목적구(?)를 스치듯 지나갔고, 심판은 노스코어 ( 무득점 ) 선언을 했는데, 자신의 차례가 된 코드롱 선수가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심판이 무슨 일인가 하고 다가가니 브롬달 선수와 코드롱 선수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더군요.

얘기인 즉, 브롬달 선수는 자신의 샷이 두번째 목적구에 맞은 것 같다고 조용히 푸념을 하며 앉았는데, 듣고 있던 코드롱 선수도 자신이 보기에도 맞았다고 동의한 것입니다. 졸지에 심판만 뻘쭘해지는 상황이 된거죠. ^^;;

정말 프로 스포츠 경기에서는 처음 본 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심판이 무득점으로 선언을 했는데, 경쟁하던 선수 둘이 득점이 맞다고 주장해서 심판도 이를 인정하게 됐다는.. ^^;;

중계화면도 그 장면을 다시 보여줬는데, 정말 화면으로는 맞았다 안맞았다는 확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딱 붙은 듯 공이 지나갔는데, 두번째 목적구는 미동도 하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심판의 잘못이라고 보기에도 어려웠는데, 세계적인 프로선수 2명은 뭔가를 봤나 봅니다. ^^;;

경기초반이라 크게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당구라는 게 사실 섬세하고 집중력을 요하는 경기라 사소한 사건에도 선수들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또한 그때는 코드롱 선수가 몇 점차로 뒤지고 있던 상황이었고, 프로이기에 결과가 중요함에도 코드롱 선수는 혼쾌히 브롬달 선수의 의견에 동의했습니다. 참 훈훈하더군요.

프로 당구선수들은 다른 인기스포츠들에 비해 수입이 적은 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상대를 배려하는 훌륭한 매너를 보여준 코드롱 선수가 새삼 기억에 남게 됐습니다. 끝까지 보질 못해서 결과는 모르겠습니다만 언뜻 소리로 듣기로는 코드롱 선수가 이긴 것 같더군요. ^^;;

당구는 우리나라에서 많은 저변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참 인기없는 스포츠이긴 합니다만 이렇게 훈훈한 매너를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이에 반해 수원 3C 월드컵 경기 결승전에서 우리나라의 김경률 선수와 야스퍼스 선수가 맞붙은 중계는 좀 아쉬웠습니다. 우리나라 관객들이 5세트 경기 중후반까지 일방적인 응원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당구경기에서는 아주 어렵게 배치된 공을 쳐냈을 때 박수를 보내거나 아쉽게 치지 못했을 때 위로의 박수를 보내는 것 외에는 아주 조용한 상황을 제공해야 합니다. 당구는 그만큼 섬세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 경기에서 우리나라 관객들은 조용한 상황을 지켜주긴 했지만, 앞서 가던 야스퍼스 선수가 중요한 상황에서 실수를 하게 되면 여지없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쳐 버렸습니다. --;;

홈경기의 잇점이라는 게 있다는 건 알지만, 이건 좀 아니다 싶더군요. 차라리 김경률 선수가 잘 치면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고, 야스퍼스 선수가 잘 치면 이에 비해 좀 덜 박수를 친다면 이해하겠습니다만 이건 뭐.. --;;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아주 후반에는 매너있게 관람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으로 봐서는 잘 몰라서 그랬을 것 같다는 점입니다. 야스퍼스 선수가 못 쳐도 비교적 조용하더군요.

우리나라도 세계적인 수준의 선수들을 몇몇 보유하고 있으니 이에 걸맞는 관람문화로 당구라는 스포츠가 좀 더 깨끗하고 볼만한 스포츠들 중에 하나로 자리잡았으면 합니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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