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오프닝은 배불뚝이 크리스챤 슬레이터(어빙 로젠필드 역)가 호텔 방에서 머리에 가발을 공들여 쓰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 뒤 같은 호텔 안에 있는 FBI의 도청작업실로 이동한다.

곧이어 에이미 아담스(시드니 프로서 역)가 들어오고 둘은 잠시 눈빛을 교환한다. 이때 두 사람의 눈빛은 감정의 골이 깊은 적대감인지 뭔가를 꾸며놓고 초조해하는 유대감인지 단번에 파악하기 어렵다. 

다시 브래들리 쿠퍼(리치 다마소 역)가 들어와 크리스챤 슬레이터에게 불만을 터뜨리고, 둘은 티격태격하기 시작한다. 브래들리가 크리스챤의 가발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둘의 다툼은 극에 달하고, 에이미가 중간에서 마무리해준다. 사태가 진정된 후, 셋은 나란히 용의자가 있는 방으로 이동한다. 

이 오프닝은 어빙 로젠필드가 얼마나 소박한 사기꾼인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배불뚝이인데다 탈모가 심하게 진행된 중년이지만, 공들여 가발을 쓰는 것으로 만족하고 준비를 마친다. 이에 반해 FBI요원 리치 다마소는 욕구불만에 차 있고, 일을 어그러뜨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며, 로젠필드와 가장 대립되는 캐릭터가 될 것임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가장 중요한 맥락인 어빙과 시드니의 관계는 눈빛만으로 많은 것을 짐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의 진행으로 모르고 보는 상황이라 둘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확신하기 어려운데다 연이어 등장한 다마소의 진상짓때문에 적당히 오해하기 쉽게 만든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은 영화 속 캐릭터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하는데, 그의 스타일이라는 걸 보여주는 오프닝이다. 어빙의 뒷모습을 뒤따르는 건 영화의 스토리가 어빙의 입장에서 진행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주인공 세 명은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을 야기한다. 

하지만, 시작부터 옥의 티를 남발하는 재미도 준다. 실수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영화의 완성도나 유머수준으로 볼 때 의도적인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

"Some of this actually happend"  (어느 정도는 실화임)

"APRIL 28, 1978
PLAZA HOTEL, NEW YORK" (1978년 4월 28일 뉴욕, 플라자 호텔)

이라고 화면에 띄워주고는 5분 뒤에 CCTV 카메라 위쪽에 찍힌 날짜는  "04-07-78 05:12:43"이다. 1978년 4월 26일로 나온다. ^^;; 

그 뒤의 장면에서도 리치 다마소가 서투르게 일처리를 하는 바람에 어빙 로젠필드가 뒷감당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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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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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즐기는 방식에 대해서는 영화를 만든 감독조차도 왈가왈부하지 않는 요즘의 분위기 때문에 어떤 영화들은 본래 의도가 비교적 분명해 보임에도 동떨어진 해석이 주류를 이뤄 저평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바웃타임" 역시 그런 영화들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아주 추천할 만한 영화다. 로맨틱 코미디영화로 치면 지루한 편이지만, 드라마영화로 보자면 꽤 유쾌하고 밝은 인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워킹타이틀과 리처드 커티스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 영화를 자주 만들어왔다. "어바웃타임" 역시 영국적인 배경에 미국의 발랄하고 매력적인 여배우를 등장시키는 익숙한 설정을 담고 있다. 특이한 점이라면 "시간여행"이라는 SF적인 요소가 들어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어바웃타임" 역시 업그레이드된 로맨틱 코미디가 아닐까 하고 예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어바웃타임"은 로맨스를 많이 담고 있는 인생성찰에 관한 드라마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기려 하기보다는 차분하게 영화가 들려주는 메시지를 경청하려는 자세를 권하는 바이다. 영화 포스트에 나오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아름다운 미소보다는 "About Time"이라는 제목이 더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걸 염두에 뒀으면 한다. ^^;;

"어바웃타임"은 사람이 살아가는 인생과 시간에 관한 영화다. 단지 주인공에게 과거의 실수나 마음에 들지 않은 선택을 바꿀 수 있는 시간여행능력을 줌으로써 영화가 유쾌하게 전개될 수 있도록 했다. 이 능력은 코미디를 더 웃기게 만들 수도 있고, 영화 "나비효과"처럼 아주 비비꼬아 버릴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주인공과 시간여행 능력이 있는 캐릭터들은 아주 소극적으로 그 능력을 사용하고 있다. 이 점을 간과하지 않았으면 한다. 주인공과 레이첼 맥아담스가 맺어지기까지 벌어지는 영국식(?) 코미디에 정신이 팔리지 않았으면 한다. 중반이 넘어서면서 아주 지루해질 수 있다. 둘의 연애가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내일의 로또번호를 알아내서 오늘 사두면 벼락부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간여행능력을 단지 아버지가 돈에 눈이 먼 부자들이 불행하다는 충고때문에 방치하고 있는 듯한 주인공의 모습에서 영화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주인공 팀이 시간여행능력을 사용하는 시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인생에 있어서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들이 의외로 가치있고 빛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게 느껴질 것이다. 인생의 순간순간을 이미 경험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다가오는 순간을 즐기려는 자세만 있다면 삶이 얼마나 행복질 수 있을 것인지 상상해 보라고 한다. 

영화는 어설픈 점이 많다. 시간여행이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왜 미미한지도 알려주지 않고, 시간여행의 결과는 대개 주인공에게 좋은 쪽으로만 결론지어진다. 그럼에도 영화는 훈훈한 웰메이드 영화의 표본을 보여준다. 단순히 가족이 최고다라든가 좋은 게 좋은 거다가 아닌 "시간"이라는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인생의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요즘 훈훈한 영화들은 대개 추억팔이의 느낌을 떨쳐내기 힘들어 이 영화가 돋보이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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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문득 친구가 내뱉은 우연한 한 마디가 "변호인"의 느낌을  그렇게 잘 대변해 줄 수 없었다. 어떤 느낌으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나 역시 후끈 달아올라버린 상황이었기에 "덥다"라는 말이 절로 입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얘기에 아주 나중에 입소문이나 매체를 통해 확인한 후에 보려고 생각했었지만, 크리스마스에 마땅히 볼만한 영화가 없다며 표까지 예매한 친구 덕에 훈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영화를 보고나면 후끈 달아오르기도 한다. 영화가 끝나갈 무렵, 치기어리고 섣부른 이들이 갑자기 박수나 치지 않을까하는 어리석은 걱정을 하기도 했다. ^^;;

의미있는 역사적 사실도 잘 뽑아냈고, 희미해진 우리나라 전통의 정서들도 다시 일깨우는 연출도 좋았다. 배우들의 연기는 다들 기대치 이상이었지만, 송강호만은 딱 기대치만큼이었다. (송강호는 평소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게 흠이다. 관상에서나 여기서도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았다. ^^;;)

워낙 완성도가 높아 어떤 감독인지 찾아보니 양우석이란 사람의 장편영화 데뷔작이었다. 첫 데뷔작을 이런 수준으로 만들었다면 앞으로도 기대해 봐도 될 것 같다. 

명작이라고 하기에 조금 아쉬운 건 역시 이 영화로 인해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거나 이전의 비슷한 영화들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만 이전에 이런 영화들이 가지고 있던 장점들을 가장 제대로 구현해 냈을 뿐이다. 그 중에서도 배우들이 큰 몫을 차지했다고 본다. 김영애님의 관록있는 연기는 정말 오랜만인데다 곽도원이라는 배우의 장점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영화였다. 

영화를 만든 감독이 고 노무현 전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메시지도 들어있다고 밝힌 후, 엔딩부분에서 그 분의 대통령 재직시절의 잘잘못을 언급했다면 아마도 새로운 정치영화나 그 비슷한 혁신으로 명작계열에서 논의될 수 있었을 수도 있다고 본다. ^^;; 우리나라에서 대중성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정치인 관련 영화를 아직 본 적이 없다. 이미 나왔었을 수도 있겠지만 아직 접하지 못했다. ^^;; 

감독의 관련 인터뷰를 보니 "살아가는 치열함"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좀 동떨어진 느낌인 것도 아쉽다.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큰 의미들이 담겨있는 게 아닌가 싶다. 

국민학교 시절 - 지금은 초등학교로 바뀌었지만 - 저녁 무렵에 어떤 음악이 나오면 국기를 향해 서서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던 기억이 조금 있다. (영화에서는 아주 희극적으로 멋지게 등장한다!) 커서는 그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뭔가 엄청난 동질감내지는 무게감을 느끼곤 했었다.

국가가 국민을 얼마나 바보로 만들 수 있는지를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증명하는 이들이 있다. "변호인"은 그런 부분을 치열하게(!) 드러내고 있다. 당시 어머니들의 모습과 섣부른 청춘들의 모습과 나약했던 아버지들도 함께.. 아쉽게도 지금의 어른남자 대부분도 그러고 있다고 보여지고.. 쩝..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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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에 영화 "친구"에 빠졌던 사람이라면 곽경택 감독의 "친구2"를 그냥 지나치기는 어렵다. 설령 장동건이 빠지고, 유오성이 한물갔다고 짐작하고, 김우빈이 아직 영화판에서 검증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렇다. 영화 개봉후 이런저런 맥빠지는 얘기가 들려와도 마침 볼만한 영화가 없어 결국 한가한 극장 하나를 골라 고딩때부터 친구인 녀석과 같이 관람했다. 고딩때부터 친구인 녀석과 "친구2"를 본다고 별다른 감흥이 오는 일은 결코 없다. 왜 나는 여성인간과 극장에 오는 일이 없는가에 대한 고찰이 있을 뿐이다. 

그간 곽경택 감독님의 흐름을 조금은 변화시킬만큼의 재미는 있었지만, 전작인 "친구"에 비하면 아주 형편없었다. 스토리는 산만하고, 김우빈은 혼자 튀고, 정우성은 여전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이없었던 건 은기(장동건 옆에 잠복해 있던 유오성의 오른팔 조폭)의 양아치화였다. "친구"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라면 유오성과 장동건 옆에 있던 넘버2들이 얼마나 과묵하고 일처리가 확실했는지 기억할 것이다. 유오성이 은기를 처리하고 부산을 접수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설정이었다고 해도 이런 모습때문에 "친구2"는 갱스터영화의 무게감이 사라졌다. 새롭게 주인공과 맞짱 뜰거라 예상된 캐릭터가 없어서 아쉬울 건 없지만, 괜찮은 기억으로 남아있던 캐릭터를 망가뜨린 건 실수라고 보여진다. 

영화 홍보할 때, 김우빈이 죽은 장동건의 아들로 등장한다는 걸 대놓고 드러내길래 최성훈(김우빈 분)이 뭔가 복잡한 사고를 치는 게 아닌가 싶었는데, 별다른 긴장이나 반전의 요소가 되지는 못했다. 이런 건 원래 꼭꼭 숨겨뒀어야 했다. 

이준석(유오성 분)의 아버지 이철주(주진모 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시간대를 왔다갔다 하는 것도 그렇고, 최성훈의 죽은 친구 얘기까지 끼워넣는 것도 그렇고, 영화는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하다가 너무 어수선해졌다. 이철주가 3번 정도 등장하는데, 낭만주먹의 시대에서 끝장을 보는 주먹의 시대로 넘어오는 걸 아주 간단하게 요약해주고 있다. 이준석의 시대가 점점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신세대 그룹인 최성훈 쪽으로 가는 걸 암시한다고 본다. 그 반면 최성훈의 친구 얘기는 신세대 속에 들어있을 법한 구시대와의 공통분모를 짚어내려고 보이는데, 둘 다 수박 겉핥기식의 표현으로 보여진다는 게 문제다. 

그나마 엔딩에서 이준석의 한마디가 "친구2"의 주제를 잘 드러낸다고 보여진다. 부하가 "어디로 모실까요?" 물어보자 "어디 내보고 반갑게 오라는 데가 있나?"(대강 이런 말투였고, 직접 들어보면 그 느낌을 알 것이다.)라는 한 마디에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많은 것이 묻어났다. 나이들어 개인택시 하나만 운전하면서 먹고 살아도 만족하다고 생각했던 준석은 이제 부산을 장악했지만, 몸과 마음이 머물곳 없는 신세가 됐다는 걸 느낀다. 감옥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왔으나 예전의 오른팔은 자신을 없애려 하고, 그나마 정을 주고 한식구처럼 살려했던 동생(?)은 자신이 죽인 친구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좋은 시절을 함께 했던 회장님(?)마저 떠난 준석의 모습에서 저물어가는 한 세대를 추억할 수는 있었다. 

결론은 뭐.. 이제 40대의 아저씨가 되고 보니 저런 모습이 남일 같지 않다는 것다. ^^;; 어디가도 반겨주는 이가 없는 때가 오고 몸에서 냄새도 많이 난다. 흠.. ㅡㅡ;;

이렇게 영화가 끝나는데, 엔딩 크레딧에서 느닷없이 "special thanks to 장동건"이 나온다.

도대체 왜?

설마 자필로 "친구2" 성공하라는 편지를 써서 그런 것인가? 


"친구2" 만들 때 제작비를 마련하는 데 도움을 주거나, 김우빈이 장동건 아들 역을 맡을 때 연기지도를 해주거나 하는 등의 급이 아니면 굳이 엔딩크레딧에 이런 부분을 넣는 건 좀 오버다 싶은 느낌이다. 혹시라도 이런 부분에 넣고 싶었다면 스탭진들이 나온 다음에 넣어야 했던 것 아닌가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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