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진 ( http://www.leedongjin.com/ ) 이라는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전문기자가 2009년에 쓴 영화감독론에 관한 책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홍상수, 봉준호, 류승완, 유하, 임순례, 김태용 등의 6인에 대해 치밀한 사전준비와 긴 인터뷰 시간을 통해 얻어낸 통찰들이 들어있다. " 부메랑 인터뷰 " 라는 한 코너를 통해 만나왔던 이들 중 6인을 묶어냈으며, 계획으로는 시리즈처럼 계속 다음 권도 준비중이라고 한다.

영화평을 찾다보면 종종 접하게 되는 " 이동진 " 이라는 기자의 필력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영화 100 편 이상을 만들어내신 임권택 감독님을 제외하고는 인터뷰 전에 해당 감독의 작품을 모두 살펴본 뒤, 감독이 만든 영화의 대사나 관련 정보들을 엮어 자신이 풀어간 인터뷰의 방향에 맞게 배치한 후,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감독들의 내면을 탐구해 간다.

한번에 읽기에는 750 쪽이 넘는 분량이 만만치 않아 감독별로 나눠 읽고 있다. 사실 류승완 감독에 대해 알고 싶어 읽게 된 책인데, 류승완 편을 빠르게 넘길 수 있어 다른 분들의 분량도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두번째로 읽은 홍상수 감독님과의 인터뷰에서 콱 막혀버리고 말았다. 류승완 감독의 작품은 거의 다 본 것이었지만,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은 "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 이 전부였고, 영화 자체가 상업적이지 않아 즐기기가 어려웠다. 당연히 인터뷰에 나오는 얘기를 이해하기 힘들 수 밖에..

홍상수 감독님의 주요 테마는 술과 침대, 남자와 여자(연애)라고 하는데, 어느 것 하나 나와는 별 상관없는 소재들이라 와닿는 게 더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 혹시 야동이라면 모를까? ㅋㅋㅋㅋ )

게다가 영화를 보지도 못했는데, 워낙 영화기사들과 영화관련 TV 프로그램, 영화제 소식에서 하도 주요 장면을 보여주거나 설명을 자세하게 해 놔 잊혀질 때쯤 보겠다고 생각만 하며 지냈으니 홍상수 감독님의 인터뷰는 한장한장이 난해할 수 밖에..

130 여쪽에 이르는 인터뷰 결과물은 그간 봐왔던 홍상수 감독님이나 작품에 대한 요약본같았다. 영화도 어렵지만, 감독도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맞닿아 있고, 인터뷰하는 이동진 기자의 치밀함, 섬세함 ( 홍상수 영화들의 섹스씬 횟수까지 일일이 세어가서 질문할 정도이며, 인터뷰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불명확한 부분은 인터뷰 후 제대로 고쳐놓은 참고가 달려있을 정도다. ), 지독함에 감히 제대로 읽었다고 말하기가 난감하다.

이 인터뷰를 읽고 새삼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을 보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다음에 혹시라도 홍상수 감독님의 작품을 접할 기회가 생기면 한번 집중해서 볼 만한 준비는 된 것 같다. 이동진 기자의 생각과 틀을 어렴풋이 쫓아가다 보니 적어도 헤매지는 않을 것 같다라는 기분은 든다.

좀 거슬렸던 건 이동진 기자의 성실한 표현(?)들인데, 영화전문기자보다는 영화평론을 하는 글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장들 속에서 끈끈함, 집요함, 인간에 대한 성찰과 분석이 들어있어 한편으로는 너무 현학적인 글솜씨를 자랑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책의 제일 앞쪽의 한 문장을 소개한다. 아마 이 시리즈를 쓰는 이유를 단 두 문장으로 표현한 듯 한데, 읽을수록 자꾸 떠오른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영화를 위하여
여전히 끝나지 않은 길 위에서



책 뒷부분에 있는 " 성실한 형식주의자의 사생활 " 이라는 이동진 기자를 인터뷰한 <씨네21> 의 김혜리 기자의 글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둘은 선후배 사이로 보이는데, 이동진이라는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 노래방을 좋아한단다.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지만.. ㅋㅋㅋ

이동진 기자에 대한 인터뷰, 류승완 감독, 홍상수 감독 편까지 읽은 상황이다. 

읽을 때의 부담 못지 않게 인터뷰 당한 감독들의 상황이 연상되서 아마 조만간 다 읽게되지 않을까 싶다.

자신들이 몇년 혹은 십년 넘게 만들어온 영화들의 모든 대사와 과정까지 샅샅이 흟어 자신이 쓴 혹은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사용하게 된 대사들로 질문을 받게 됐을 때 영화감독들의 심정이 어떨지 궁금하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봤을 때는 별 걱정없이 인터뷰하러 온 듯 하지만 곧잘 당황하거나 새로워하는 부분들이 곧잘 발견된다. 인터뷰 받으셨던 분들도 대단한 노력이 필요했을 작업이다.

너무 긴 책은 정리해두지 않으면 감당이 되질 않아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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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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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의 섣부름, 재미, 고민을 보여주는 영화.

극장에서 개봉한 흔한 삼류 상업영화보다는 훨씬 볼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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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닝

" 관객과의 대화 " 시간에서 김병우 감독이 밝혔듯이 개인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이야기다. 등장인물A를 연기하는 배우A, 등장인물A를 창조한 작가, 작가의 대본으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간에 가상의 세계에서 실존하는 등장인물A를 중심으로 대립하는 것이 기본스토리인데, 영화 오프닝이 매우 현란하고 혼돈스러운 이유가 아마 영화속에서만 존재하는 등장인물A에 촛점을 맞추기 위한 게 아닌가 싶다.

반복되는 화면, 어지러운 화면, 알 수 없는 공간은 개인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신할 수 없을 때 느끼게 되는 불안정함을 나타낸다고 본다. 하지만, 이런 도입부분이 잘 정리되지 않아서 시놉시스를 읽고 영화를 관람하는 상황에서도 이야기 속에 빠지는 게 쉽지 않았다. 화려한 색감이 관객의 눈에 빠른 긴장을 주어 집중시키는 역할도 하지만, 재빨리 이야기에 적응하지 못하면 쉽게 피곤해지는 결과를 가져오곤 한다.

설정

김병우 감독은 어떤 특정영화에 영향을 받아서 이 작품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으로 여러 영화에서 영향을 받았을 수 있음은 인정하고 있다. 최근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 - 인랜드 엠파이어, 스트레인저 댄 픽션 등등 - 이 개봉했는데, 김병우 감독은 나중에 알았다고 한다. 나 역시 시놉시스를 봤을 때는 아주 오래 전 " 명화극장 " 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본 " 그림자 사나이 " 라는 영화(?) - 알고보니 프랑스에서 1982년에 제작된 TV용 영화라고 한다 - 를 떠올렸다.

이런 소재의 영화들이 새롭다거나 비슷하다는 의견이 있는데, 참 어려운 부분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판단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지 않나 싶다.

설정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기반이 되는 개개의 부품들과 같다고 본다. 같은 부품을 어떻게 짜맞추느냐를 영화의 독창성을 가늠하는 중요한 기준이라고 본다면 <WRITTEN>은 꽤 독창적이다. 물론 내가 아직 보지 못한 영화, 연극들에서 설정 뿐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과 주제가 비슷하다면 개인의 무지를 양해해 줬으면 한다. " 더 이상 새로운 것은 없다 " 라는 어느 경구에 많이 동의하지만, 조금씩 바꿔가며 다르게 확대, 표현, 재생산하는 것도 창의력의 일종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

<WRITTEN> 은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 등장인물A 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고,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배우A 와 대립하고 극복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언뜻 매우 추상적이고 진지해 보이기만 할 것 같은 설정은 스릴러적인 요소, 잘 짜여진 구성으로 중반부터 재미를 더하기 시작한다. 작가가 창조했지만, 마무리하지 못한 각본으로 인해 등장인물A 에게 넘어온 정체성 확립의 기회는 존재하지 않는 각본의 엔딩에 집착하는 배우A, 감독에 의해 잠식당하려는 위기에 처해진다. 자신의 이야기임에도 주변인물들에 의해 강요되고, 강제로 끝마쳐지려는 억압으로부터 등장인물A는 몸부림친다. 영화 속에서만 존재하기에 현실세계로 도피할 수 없는 등장인물A 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구성이 무난하긴 하지만, 허술한 부분을 잘 감추진 못한 점도 있긴 하다. 제작여건의 어려움 때문이었으리라 보여 더욱 아쉽다.

그밖에..

영화 중반까지 연극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 부분도 의도된 부분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연극으로 해도 될만한 각본을 영화로 표현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김병우 감독은 영화에 여러가지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고민을 많이 한 것 처럼 보였다. 영화 제작기간이 이미 많이 흘러 세세한 부분까지 기억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얘기를 더 해 볼 기회가 생긴다면 묻고 싶은 것이 몇몇 있다. " 관객과의 대화 " 시간에 의외로 많은 분들이 재미있는 질문을 해서 나는 포스팅으로 정리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해서 조용히 있었다.

영화 후반 시계보는 장면에 관해 질문해 준 관객이 단연 기억에 남았다. 약간 우스개처럼 마무리 됐지만, 참 세세하게 집중해서 열심히 봤구나 싶어 웃음이 머금어졌다. 시계얘기가 나왔을 때 혹시 중요한 의미인데 내가 간과한게 아닌가 싶어 뜨끔했다. ㅎㅎ



질문 : 영화 초반 등장인물A 가 링거의 깨진 유리조각을 구두발로 밟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부분이 작가가 만들어낸 캐릭터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 시작하는 암시로 봐도 되는건지요?

질문 : 등장인물A, 작가, 배우A 등은 전문배우 같고, 다른 분들은 비전문배우 같으신데 맞는지요?

질문 : 영화 속에서 반복과 중첩의 의미를 가지는 구성이 있어 보였는데, 의도된 부분인지요?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반복은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억압적인 요소로 비춰지고, 중첩은 갇혀진다는 의미와 함께 안과 밖으로 동시에 관객에게 보여주는 의미로도 이해됩니다만.. ^^;;

질문 : 영화 후반 TV화면 조정시간에 나오는 이미지가 셋트에 그려지는 데 이야기가 종착점에 도착했다는 의미인지요? 아니면 이제부터 등장인물A가 진짜 자기얘기를 만들어가려는 준비가 됐다는 의미인지요?

질문 : 등장인물A 와 배우A 가 만나는 장소들에 지하도, 셋트장, 가상의 공간이 나오는 데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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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편영화 쇼케이스에서 배포된 자료를 전부 스캔해서 올렸습니다. 독립영화 제작현황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천만원에 이정도 영화면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쇼케이스가 끝나고 주최측에서 술자리를 제안하셨는데, 몇분이나 가셨는지 궁금합니다. 전 술을 못해서.. 흠.. --;;

아직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에게 독립영화 쇼케이스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ㅎㅎ





WRITTEN BY
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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