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기사와 공주의 사랑을 그린 판타지 영화로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자랑한다. 1985 년에 만들어졌으니 벌써 20 년을 훌쩍 넘겼음에도 다시 보는 재미가 아직 남아있다. 액션 장면이나 특수효과는 거의 볼 게 없지만..

아주 오래 전에 보고 이번에 EBS 를 통해 다시 보게 됐는데, 예전과는 사뭇 다른 맛이 있었다. 예전 기억으로는 예쁜 공주가 나오는 사랑 얘기를 다룬 흥행용 영화였는데, 지금 보니 재밌는 설정, 보기보다 많이 담긴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간단한 설정과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

기독교가 유럽을 휩쓸었지만 아직 전통신앙과 마법이 공종하는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생쥐라는 별명을 가진 한 도둑소년이 주인공이다. 아퀼라라는 곳에서 탈출한 소년은 도망치던 중 늠름한 검은 말을 타고 검은 옷을 입은 멋진 기사에게 도움을 받게 되어 길안내를 맡게 된다. 이 기사는 어떤 사연을 가진 것 같은데, 워낙 무뚝뚝해서 좀체로 그 속내를 알 수 없다. 특이한 건 사냥을 할 것도 아니면서 항상 매를 데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둘의 여행이 계속되면서 기사와 매 사이의 비밀이 하나둘 밝혀지기 시작한다. 기사는 해가 사라지면 덩치 큰 검은 늑대가 되어 인간의 의식을 잃게 되고, 매는 해가 사라지면 본래의 모습인 아름다운 공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 둘은 항상 같이 다니지만 결코 만날 수 없는 사이인 것이다. ( 사실 공주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지역의 유지 정도는 됐다. )

둘은 원래 아퀼라라는 지역의 공주와 근위대장이었는데, 이 지역의 추기경이 공주를 사모하여 갖고 싶었으나, 이미 공주는 근위대장과 사랑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공주의 사랑을 얻을 수 없고, 둘이 함께 도망치려는 것을 알게 된 추기경은 어둠의 힘을 빌어 도망가던 그들에게 끔찍한 마법을 걸었던 것이다.

시간이 흘러 기사는 추기경에게 명예를 위해 복수하려고 돌아오면서 주인공인 가스통(도둑소년)을 만났던 것이다. 여러 기이한 사건을 통해 이런 전말을 알게 된 소년은 옛날에 이 둘의 비밀을 누설한 주정뱅이 신부와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저주를 풀 방법을 듣게 된다. 방법은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일식현상이 벌어지고 있을 때, 추기경 앞에서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인간의 모습으로 마주하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기사는 이 신부를 믿지 않아 저주를 푸는 대신 복수를 하려하고, 신부와 주인공, 그리고 공주는 저주를 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

예전에는 미쳐 눈치채지 못했는데, 다시 보니 마치 르네상스처럼 기독교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 자연, 원시신앙으로의 회귀를 낭만적으로 그려내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보였다. 기독교의 수장급인 추기경이 원시신앙의 마법을 빌려온다든지, 영화의 많은 장면이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고 있다든지, 기사와 공주 사이의 열정적이면서도 애절한 사랑을 환상적으로 그려내는 모습을 통해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도둑소년인 점도 중요하다. 이 소년이 험한 세상에서 이기적인 사고방식으로 생활하다 여정을 함께 하면서 어른들의 사랑을 엿보게 되고 성장하면서 결국 이타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 역시 단순한 흥행용으로 제작된 판타지가 아니라는 걸 알려준다.

비록 오래되서 어설픈 티가 많이 나고, 특수효과가 형편없기는 해도 공주가 탑에서 떨어지는 위기의 찰라에 아침해가 뜨면서 매로 변신해 살 수 있었다든가 하는 스토리 장치들은 아주 기발했다. 이런 장면 설정이 잘된 것들을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재미와 부담스럽지 않은 메시지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영화를 좋아하는 편인데, 간만에 잊혀졌던 좋은 영화를 떠올리게 돼 기쁘다. 한 10 년쯤 후에 CG 와 난해한 암시, 그리고 반전들이 판치는 영화들 속에서도 다시 한번 떠올렸으면 하는 바램에 기록해 둔다.


덧붙이기 : 젊은 시절 미셸 파이퍼는 정말 다시 봐도 예뻤다. 미모에 비해 명성이 좀 떨어지는 느낌인데,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다. 룻거 하우어는 네델란드 배우로 보인다. 원래 악당 추기경의 일등 부하로 제안을 받았는데 주인공급인 검은 기사역을 지원했단다. 추측으로는 공주인 매를 둘러싸고, 정의의 편인 검은 기사와 악당인 추기경 일당의 싸음에서 소년이 겪는 모험을 통해 커가는 성장영화로 기획되지 않았을까 싶다. 자세히 보면 도둑소년의 대사가 엄청 많고, 그 고민들과 행동의 변화를 보여주려는 데 주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