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화역사상 최고의 반전이라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던 " 혹성탈출 " ( Planet of the Apes. 1968 ) 의 프리퀄인 ( 원작영화나 소설의 시간을 기준으로 그 이전 이야기를 다룬다는 것을 의미 ) "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 " (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2011. 이하 " 진화의 시작 " ) 은 시도는 괜찮았지만, 1편에 비해 파괴력은 떨어졌습니다. 

어린 시절, 혹성탈출 1편을 TV 에서 보면서 손에 땀을 쥐었던 기억이 납니다. ( 토요명화였는지, 주말의 명화에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 원숭이들의 움직임도 신기했지만, 마지막에 그곳이 지구였다는 사실 - 자유의 여신상의 잔해를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 이 아주 충격적이었지요. 

1편을 본 지 오래되서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와 영화 속에서 유인원 ( 원숭이, 침팬지 혹은 고릴라 등 ) 들이 보여주는 사회적인 구조가 마치 오늘날의 갑갑한 지도층들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을 줘 암울했습니다. 그렇기에 " 진화의 시작 " 은 이런 인간의 한계(?) 혹은 오만함에 촛점에 아주 집중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결과는 반반이었습니다. 


출처 : DAUM 영화


크게 세 흐름으로 느껴지는데, 첫째가 주인공 침팬지인 " 시저 " 가 진화를 시작하며,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이고, 두번째가 인간 주인공인 " 윌 " 의 인간적인 모습, 그리고 주변 인간들의 답답하고 이기적인 환경이었습니다. 

혹성탈출 1편에서는 인류 멸망의 원인에 대한 메시지가 인간 스스로에게 있었다고 강하게 암시하는 데 반해, 프리퀄 ( 진화의 시작 ) 에서는 침팬지 쪽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이 있었다는 데서 좀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1편은 인류가 자멸해서 다음으로 유인원이 지구를 지배했다는 느낌인데 반해 " 진화의 시작 " 은 인류의 실수로 유인원들이 진화를 시작했고, 진화가 시작되자 인간은 퇴장될 것이라는 모양새인데, 제게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더군요. 

개인적인 상상으로는 실험실의 침팬지가 인간들끼리의 다툼, 혹은 지배와 피지배층 간의 갈등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을 지켜보다가 스스로 인간들이 멸망하는 과정이 벌어지고, 더이상 관리되지 않는 실험실로부터 침팬지들이 튀어나와 그런 인간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문명을 개척하는 쪽이 아닐까 예상했지만, 아무래도 오락성이나 권선징악 쪽을 중시해서인지 침팬지의 역할이 아주 커져 버렸습니다. 

출처 : DAUM 영화



시저의 모습에서 많은 관객들은 재미와 공감을 느낄 것이라고 보고, 저 역시 그랬습니다. 지능과 감성을 가진 자신을 단지 유인원이라는 이유로 학대하고, 배척해 버리는 환경 속에서 스스로 주변의 힘을 모아 자신의 이상향 ( Home ) 을 찾아가는 모습은 많은 이들이 공감할 자수성가형 성공담입니다. 게다가 유인원들의 모습과 표정에서 너무나 인간적인 냄새를 느낄 수 있었고, 특수효과가 기술적으로는 어느 정도 뒷받침해 줘 더 그랬습니다.

이 부분을 부각시키는 건 역시 이기적인 인간군상들의 모습인데, 정말 생각없고, 무책임한 존재들로 그려집니다. 이 두 요소는 나름 안정적으로 짝을 이루는 데 반해 남자 주인공의 역할이 아주 맥빠지게 만듭니다. 순수한 청년의 모습이긴 한데, 결정적인 대립의 순간에서 그냥 방관자로 빠져 버립니다. 외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건 아닌데, 기껏해야 " 시저 " 를 쫓아가서 잘 살라는 게 전부죠. " 시저 " 가 곤경에 처했을 때도 나름 역할을 해보려고 발버둥치지만 체제에 묶여 힘을 잃은 나약한 모습입니다.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위험약물도 과감히 훔쳐오던 때와는 다르죠. 

" 진화는 인류를 위협하는 혁명이다 " 라는 황당한 광고문구에서 이 영화가 작품성을 위해 만든 영화라기보다는 작품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오락성을 덧붙이는데 주력했다는 게 느껴집니다. 진화가 인류를 멸명시킨 것이 아니라 인류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가 들어있어야 했다고 봅니다. 차라리 혹성탈출의 딱지를 떼고 만들었다면 싶을 만큼 어느 정도 재미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 생각해 보니, 혹성탈출이 인간의 자멸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어도 영화 속에서 유인원의 역할이 아주 컸었고, 혹성탈출하면 유인원이라는 게 떠오를 정도니 유인원에게 뭔가 주도적인 역할을 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
감독 루퍼트 와이어트 (2011 / 미국)
출연 제임스 프랭코,프리다 핀토,앤디 서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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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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