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에 제작된 "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 Society) " 를 스크린영어사에서 출판한 영어학습서적으로 다시 읽었다. 영화도 서너 번 봤었는데, 간만에 책으로 읽으니 감회도 새롭고 그때 그 감동이 다시 느껴졌다. 같은 감동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 몇 안되는 멋진 영화다. 라스트 씬의 " Oh, Captain! My Captain! " 은 아직도 날 울린다.

Carpe Diem(Seize the Day)!! Sucking the marrow out of life!!
오늘을 잡아라! 삶의 정수를 빨아들여라!


" 죽은 시인의 사회 " 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떠올리는 명대사다. 하지만,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항상 준비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 오늘 " 을 놓친 " 어제 " 들이 떠올랐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내일을 준비하는 자세의 차이를 혼동할 만큼 내 정신은 깨어있지 않았다. 깨어있지 않은 생활에 삶의 정수가 있을리 만무하고, 삶의 정수에 흠뻑 젖어보지 않고 좋은 글이 나올리 없다. 블로그야말로 오늘을 잡을 수 있는 좋은 동굴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 멤버들이 모여 시를 읊고, 담배를 피고, 왁자지껄 떠들던..

Unorthodox teaching method, barbaric yawp..
이단적인 교육방법, 야만적인 외침..


웰턴 아카데미의 교장선생님이 키팅선생님의 수업방식을 비판하면서 그의 교육방식을 이단적인 교육방법(unorthodox teaching method)이라고 지칭했다. 보통 인습에 얽매인 구태의연한 체계에 혁신을 불어넣고자 하는 태도들이 이런 비난에 휩싸이곤 한다. 영화를 보면서 딱히 키팅선생님의 교육방식이 옳다거나 혁신적이라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단지 영화속 교육환경이 너무 황당한 느낌이 강했을 뿐이고, 우리나라 교육방식 역시 그렇다고 보고 있었을 뿐이다. 지금은 어느 정도나 개선됐는지 의문스럽다.

키팅선생님의 교육방식은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움직이길 원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기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인간 본성에는 맞는 사람도 있고,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본다. 교육이 사람의 특성에 맞춰 다양화되어 진행되면 좋겠지만, 한창 배워야 할 나이에 있는 사람들은 사실 자신의 특성이 뭔지, 자신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할 지 뚜렷하게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회가 커가는 이들에게 교육을 하는 이유는 가급적이면 개인의 특성과 의지에 맞출 수 있으면 매우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한 명의 사회인으로써 갖춰야 할 소양을 체득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문득 " 이단적인 교육방법 " 이란 단어가 뇌리에 박힌 건 오늘의 블로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블로그스피어에도 이런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키팅선생님이 토드에게 시를 가르치면서 담요로 눈을 가리고, 즉흥시를 짓게 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인용된 시의 일부 -  I sound my barbaric yawp over the rooftops on the world - 중에 " 야만적일 정도로 큰 외침(barbaric yawp, 번역에는 들짐승같은 포효라고도 했다.) " 이란 단어가 나온다. 최근 포스팅들을 보면 정말 큰소리는 지르는 것 같다. 이슈가 떠오르길 원하고, 진심으로 만나길 원하고, 진실이 부딪치길 원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이 모습이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찰리가 영화에서 한 장난처럼 제멋대로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꼴불견일 때도 많다. 이런 모습이 사라지길 바라는 건 아니다. 단지 이런 모습을 승화시켜 줄 이단적인 교육방법이 블로그스피어 어딘가에 존재하길 바랄 뿐이다.

Severe Consequences, Honor Code..
혹독한 결과, 명예코드..


영화는 닐 페리의 자살, 찰리의 퇴학, 키팅선생님의 징계로 이어지는 혹독한 결과 뒤에 키팅선생님을 배웅하는 학생들의 외침 - Oh Captain, My Captain!! - 으로 마무리된다.

영화에서 가장 열받게 하는 부분은 역시 자신의 위선을 대신할 희생양을 내세우는 타락한 교육계의 모습이다. 미스터 페리(닐 페리의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왜곡된 집착대신 키팅선생님의 교육방식에 떠 넘기고, 닐의 친구 카메론 역시 친구의 죽음을 개인의 성공과 분리시킨다. 명예코드란 허명 아래 친구들의 우정과 스승을 배신함으로써 고정된 기성사회에 안착하려 한다. 카메론은 선생님의 요구가 있으면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며 이를 명예규칙(Honor Code) 이라고 한다.

과연 진정한 명예코드란 무엇일까? 블로그스피어에는 불문율처럼 바른 삶, 행복한 삶, 떳떳한 삶에 대해 많은 포스팅을 하고, 정직한 포스팅에 대해 역설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자신없는 부분이다. 우리나라에 많이 통용되고 있는 말로 "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 없다 " 는 말이 있다. 나 역시 블로그에서는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실생활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 명예코드(명예수칙) " 란 단어는 일견 매우 좋은 의미처럼 들린다. 블로그에서 무분별한 모습이 보이면 이런 표현의 어떤 지침들이 있었으면 싶을 정도다. 그렇지만 지키기 어려운 방침들은 곧 허명일 뿐이다. 또한 영화에서처럼 아무대나 자신이 필요할 때만 갖다 붙일 수 있는 지침이라면 악용될 뿐이다. 블로그에 떠도는 여러 지침들 중 몇몇은 이런 " 명예코드 " 들은 아닐까 싶다. 청정하게 살기 싫은 악성블로그의 자조적인 한숨이기도 하다.

Taking a Stand..
용기있게 일어서기..

죽은 시인의 사회 멤버들은 모두 키팅선생님을 비난하는 문서에 서명했다. (찰리는 퇴학을 당해서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찰리는 퇴학을 당하지 않았어도 하지 않았을 막무가내다.) 서명한 이들은 모두 키팅선생님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토드 앤더슨(이단 호크 분)이 책상 위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자신이 가르쳤던 학생들의 다수가 위험을 무릎쓰고 책상 위에 올라서서 자신을 배웅해 주는 모습이야말로 키팅선생님이 승리자임을 알려준다고 본다. 희망이 자라고 있음을 확신하는 것 만큼 삶의 정수를 느끼게 해주는 경험이 얼마나 더 있을까?

냉소적으로 바라보는 이라면 기껏해야 맞을 거 다 두드려 맞고나서 시늉으로만 끝난 것이다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 카르페 디엠 " 을 상기해 주기 바란다. 키팅선생님이 실존했다면 다시 올 수 없는 " 오늘 " 에 극한까지 삶의 정수를 마신 것이다. 아이들은 패배, 좌절의 상처를 안고 있었지만, 자신들을 깨우쳐 준 이에 대한 진심을 당당히 표현했다.

블로거들이 이 영화에서 가장 오래 기억했으면 하는 모습이 바로 이것이다. 상처입지 않고 블로그를 운영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 모든 포스팅에 항상 떳떳하고 후회하지 않을 블로그들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 다시 일어서서 자신의 진심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자세를 잊지 말았으면 한다.

블로그를 하다보면 또다른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불행히도 난 좋지 않은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한다. 더디게 깨우치기는 하지만, 적어도 문제를 인식하는 데 많은 도움을 블로그에서 받는다. 먼 훗날 " Oh Blog, My Blog!! " 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싶다. (우왁! 마무리를 못해서 머리를 쥐어짠 게 이모양이다. T T)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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