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몰타의 매

대실 해밋 저/고정아 역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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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슈뢰딩거의 고양이..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된 " 하드보일드 " 스타일의 소설을 접했다. " 하드보일드 " 의 정확하게 부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나 등장인물들이 프로다운 모습을 보이는 설정과 전개들을 좋아하는데 요즘에는 그런 소설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 몰타의 매 " 는 1928년을 배경으로 유능한 탐정 새뮤얼 스페이드 ( 샘 스페이드 ) 가 겪은 복잡미묘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인터넷의 정보에 따르면 하드보일드 소설 장르는 대개 탐정소설이며 범죄, 폭력, 섹스에 대해 담담하게 묘사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하는데, " 몰타의 매 " 에서도 그 장르적 특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소설의 시작부터 불쑥불쑥 등장인물들이 등장하고, 예측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어 캐릭터들의 속내를 알 수 없다는 게 이 소설의 특징이자 최대의 재미다. 다른 일반적인 소설들과 비교해 보자면, 캐릭터들의 행동이나 모습을 표현할 때 감정적인 묘사를 넣어 독자가 눈치챌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드보일드의 특성상 이 소설에서는 담백한 정밀묘사일 때가 많다. 가끔 손이 떨리거나 인상을 쓰고 있다는 걸 알려주기는 하지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 확정적으로 알려주는 부분은 없다. 이게 " 몰타의 매 " 가 보여주는 매력이자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근본적인 힘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샘 스페이드가 정말 브리지드 오쇼네시를 정말 사랑했을까 의심될 정도다. 전반적인 스토리나 대사를 보면 사랑했을 것이라고 보여지지만, 진실인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스페이드가 오쇼네시도 다른 캐릭터들처럼 다루고 있다는 가정하에 소설들의 주요 내용을 떠올려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단지 둘이 더 오래 같이 있었기에 뭔가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는 건 당연하지만, 스페이드는 각 캐릭터들과 따로 있었을 때는 언제나 자연스레 그들을 위하는 척 하는 일관성을 보였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한다. 스페이드는 과연 누굴 위해 의뢰를 수행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몰타의 매 " 는 험프리 보가트가 등장한 영화로 먼저 알게 됐다. 오래 전에 재밌게 본 명작영화였는데, 그 재미를 다시 떠올려 보고픈 마음에 읽었다가 그에 못지 않은 재미를 느낀 경우다. 영화에서보다 여주인공의 팜므파탈적인 강렬함과 혼돈이 짙게 다가왔다. 그런 여주인공을 완벽하게 다룬 탐정의 냉철함에 절로 빠져들게 된다.


" 슈뢰딩거의 고양이 " 라는 말이 있다. 상자 안의 고양이가 살아있을지 죽어있을지 알 수 없으니 확정할 수 없고, 어떤 상태는 가능하다는 뜻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이게 하드보일드 소설, 3인칭 관찰자 시점의 재미를 귀뜸해주는 것 같다. 캐릭터의 속내를 끊임없이 추측해야할 뿐 전혀 확정할 만한 증거가 없기에 읽는 이로 하여금 끊임없는 긴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


 이 책에는 대실 해밋의 연보와 옮긴이의 친절한 설명이 충분히 곁들여져 있어 오래 전의 명작을 좀 더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게 도와준다. ^^;; 


참고로, 1920년대에 " 핑커턴 " 이라는 미국 최대의 탐정회사가 있었다고 한다. 영화 " 3:10 투 유마 " ( 2007 ) 라는 웰메이드 서부극에서 악당 밴 웨이드 ( 러셀 크로우 분 ) 가 지긋지긋해하는 단체로 언급했는데, 그때부터 궁금해했었는데 마침내 여기서 지은이인 대밋 해실이 20대 때 입사한 탐정회사란 걸 알게 됐다. ^^;;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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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 the funny thing is that...
when you think about it,which I have been lately,
was they weren't paying me to walk away.
They were paying me so they could walk away. "

" 최근에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정부)은 내가 도망가서 나를 버린 게 아니라
내게 돈을 줬기 때문에 나를 버릴 수 있었던거야.. "

한 남자가 있다.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고 제대한 후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고 있다.
매우 열심히 살아가고는 있지만, 마을의 악질적인 패거리들의 괴롭힘과 둘째 아들의 지병으로 인해 하루하루를 힘들게 버텨내고 있다. 위안이 되는 건 전쟁영웅이라는 허울좋은 가족의 존경심뿐이다. 그마저도 점점 위태해지고 있다.

또 한 남자가 있다.
원하는 건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법을 무시한 채 자신의 기준에 따라 자유롭게 살아간다. 게다가 그를 열렬히 따르는 뛰어난 무법자 부하들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부하들과 항상 거리를 둔다. 심지어 일을 할 때도 합리적인 이유로 부하를 죽이는 데 서슴치 않는다. 그에게는 목적이 없다.


버림받은 두 남자의 묘한 로드무비 서부극
스타일은 고전적인 서부극이지만, 주제는 지극히 현대적인 영화


남성적 매력을 물씬 풍기는 크리스챤 슬레이터(댄 에반스)와 러셀 크로우(벤 웨이드)가 만나 독특한 분위기의 서부영화를 만들었다. 기존 서부극에서 보여주던 시원한 활극과 긴장감을 유지하면서도 권선징악을 벗어나 가족주의를 지향한다.

대악당 웨이드가 우연히 잡히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된다. 감옥(유마)으로 가는 기차에 3시 10분까지 웨이드를 호송해가면 200 달라의 수고비를 준다는 말에 에반스는 기꺼이 따라 나선다. 전직 저격수 출신의 퇴역군인이 막강한 부하를 거느린 대악당을 과연 무사히 호송할 수 있을런지..

여기까지 보면 일반 서부극과 별반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끝내는 악당들을 물리치고, 주인공의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것 같은 영화다. 물론 대악당은 기차에 올라탄다.

하지만! 그 과정은 기존의 전개와 사뭇 다르다. 주인공이 악당을 기차에 태우는 게 아니라 악당이 주인공을 위해 기차에 올라탄다.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천하에 무서울 게 없는 밴 웨이드는 한 건 해치우고 난 뒤 유유자적하다가 마을의 보안관에게 붙잡힌다. 붙잡힌 상태에서도 전혀 두려움없이 당당한 밴 웨이드는 자신을 호송하겠다고 나선 댄 에반스를 눈여겨 본다. 첫 만남에서도 가소로와 보이던 댄 에반스는 보면 볼수록 이해할 수가 없다. 한쪽 다리는 전쟁에서 잘려나간 상태에, 목장은 빚더미로 위태위태하고, 아들을 끔찍히 아끼지만 그다지 존경을 받지는 못함에도 푼돈을 얻기 위해 목숨을 건 호송길에 오른다. 나름 전쟁영웅일 것 같은 냄새는 풍기지만 하는 짓은 그다지 뛰어나 보이지 않는다. ( 영화 속에서 댄 에반스가 제대로 된 총실력을 보인 건 철도공사판에서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릴 때와 마지막 장면 뿐인데, 그나마 마지막 장면에서도 많은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라 잘 도망치고 있을 뿐이다. 이는 웨이드의 부하들이 보여주는 총실력에 비하면 그다지 화려해 보이지 않는데, 그럼에도 크리스챤 슬레이터가 뿜어내는 카리스마 때문에 혼동스럽다. 개인적으로 미스캐스팅이 아닌가 싶다. 좀 평범하고 소박한 인물이 연기했으면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 단지 위급한 상황에서 일반적인 사람들이 취해야 할 행동을 잊지 않을만큼 매우 성실할 뿐이다. 그나마도 무슨 강력한 의지가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냥 우직해 보일 뿐이다.

가장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댄 에반스는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은 간절하지만, 잘 할 수 있는 게 뭔지 자신이 없다. 게다가 잘려나간 한쪽 다리는 전쟁에서 용감히 싸우다가 잃었다는 허명까지 있어 부담감만 더하다. 우연히 대악당 밴 웨이드가 잡히게 되고, 그나마 돈이 되는 일거리가 생기자 주저없이 뛰어든다. 이것마저 하지 못한다면 방법이 없다. 밴 웨이드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그 부하들이 얼마나 흉폭한지 따져볼 겨를도 없다. 일단 탈출구라고 보이니 뛰어들어 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 대악당은 사람죽이는 데 도가 텄을 뿐만 아니라 매우 영리하다. 지켜 볼수록 갑갑함이 더해지면서도 같이 있을수록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대부분의 로드무비가 그렇듯 에반스와 웨이드는 서로 티격태격하다가 조금씩 호감이 생기고, 마침내 서로를 느끼게 된다. 국가를 위해 전쟁터에서 근무했으나 어이없는 사고로 인해 정부로부터 버림받은 에반스, 8살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버리고 간 웨이드는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음에도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목적없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실행하는 웨이드는 에반스를 보면서 문득 자신이 외면하던 것들을 보고 도와주고 싶어진다. 그는 가족을 잊고 있었다. 그에게 부하는 가족이 아닌 자신이 부리는 일꾼에 불과했고, 부하들과 함께 있을 때는 항상 무자비하고 냉정했다. 오히려 자신을 호송해가는 인물들과 함께 있을 때 더 편안해 하며 그들을 관찰했다.

지쳐가던 에반스 역시 웨이드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능력의 한계, 주변 사람들의 배신으로 인해 여러 극한 상황을 겪게 되지만, 그 와중에 마침내 자신의 의지를 찾게 된다. 영화 후반부에 너무 위험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웨이드가 에반스를 제압하고 그냥 달아나려하자 마침내 에반스는 부탁한다.

" 난 한번도 영웅이었던 적이 없어.. "

이 순간 웨이드는 다시 한번 에반스를 바라본다. 그토록 고집스럽게 굴고, 깝깝스럽기까지 했던 미운오리새끼같던 인물이 자신에게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자신이 원했지만 차마 이루지 못했던 일에 대한 것이다. 과거의 상처로 인한 성격 탓에 결코 그는 그것을 가지지 못할 것을 알고 외면했던 것이다.

그는 부하들의 외침을 무시하고 에반스를 도와 기차에 타려 한다. 두목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하들과 돈에 눈 먼 마을주민들로 인해 상황은 심각해져만 간다. 하지만 에반스와 웨이드는 마지막 난관을 뚫고 웨이드를 기차에 태우지만, 두목을 구하겠다는 부하의 충성어린 총탄에 에반스는 쓰러진다.

웨이드는 죽어가는 에반스를 보며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폭발을 느꼈고, 부하들이 자신의 총을 건네자마자 모두 쏴 죽여 버린다. 그는 결국 대악당인 것이다. 그에게 가족은 없었다. 맘에 들지 않으면 바로 처리해 버린다. 이 호송길은 단지 대악당이 잠시 고단하지만 가치있는 삶을 엿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무의미한 삶에 잠시 가치있는 삶을 사는 보통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에반스의 아들은 아버지의 죽는 모습을 본 후 웨이드에게 총을 겨누지만, 이내 거둔다. 아버지의 참 우직스런 뜻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를 죽인 부하들을 처리해 준 것에 대해 이해를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혹은 웨이드의 모습에서 에반스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모습을 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반스의 아들이 총을 거두자, 웨이드는 다시 기차에 올라탄다. 에반스의 아들은 출발하는 기차옆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한다.

기차 안에서 웨이드는 기차 안에서 휘파람을 불어 자신의 말이 기차를 따라오도록 한다. 아마 또다시 정처없이 떠돌 것이다.


WRITTEN BY
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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