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 원정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베르킹게트릭스와 맞붙은 알레시아 공방전이다. 8만여명의 다수임에도 구석에 몰려 있던 베르킹게토릭스는 전 갈리아지역에 기병대를 보내 약 24만명의 대군을 포위하고 있던 로마군의 후방에서 공격하도록 지시했다. 로마군은 후방에 병력이 집결되는 동안 베르킹게토릭스를 압박하면서 높은 방어시설들을 구축해 길게 늘어뜨려놨다. 비교적 고지대에 보루까지 갖추긴 했으나, 숫적으로는 압도적으로 열세인데다 양쪽에서 공격을 받게 됐으나, 끝내 버텨냄으로써 오랜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다.

전략가 혹은 무장으로써의 능력이 출중함에도 명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모습들 때문이기도 한데, 다른 천재적인 전략가들이라면 평야로 유인해 회전을 벌여 압도적인 전투력을 보여주거나 조직적인 모습으로 엄청난 피해를 적에게 안겨줄테지만, 카이사르의 경우에는 부하들의 전투력에 의존하는 듯한 모습이 종종 보였다. 이는 기존의 명장들과 달리 정치적인 요소 혹은 계략이 깔려 있기 때문이었고, 적들이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거나 갈리아 특유의 자유분방함으로 인해 어수선하게 전투를 진행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자신의 승리를 너무 드러내지 않지만, 실수도 굳이 감추는 스타일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7권은 이 알레시아 공방전이 어디서 시작됐고, 어디로 진행됐으며,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보여준다.




서막 ( 기원전 52년 )

카이사르가 로마의 정치적인 대립으로 인해 부산한 틈을 타 갈리족은 슬금슬금 반란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베르킹게토릭스가 갈리족의 리더로 부상하기 시작한다. 해마다 당하고도 또 일어나는 갈리족의 자유정신(?)은 인정해 줄 만 하다. ^^;;




아바리쿰의 포위와 함락 ( 기원전 52년 )

베르킹게토릭스는 로마와 정면으로 붙어서는 승산이 없다는 걸 일찌감치 알고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자고 했는데, 말 안듣던 갈리족으로 인해 아바리쿰에 갇혀 게기다가 도망친다. 이 일로 베르킹게토릭스는 리더로 확실히 자리매김한다.




게르고비아에서 로마군이 패하다 ( 기원전 52년 )

카이사르는 지휘관으로써 전세를 냉철하게 판단한 뒤, 겁만 주고 후퇴할 것을 지시했으나, 도망가는 적들을 보고 로마군이 미친듯이 싸우는 바람에 도리어 패퇴하게 된다. 카이사르는 부하들을 더욱더 장악할 수 있게 됐다.




베르킹게토릭스가 야전(野戰)에서 패하다 ( 기원전 52년 )

한번 로마군을 물리쳤어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던 갈리족이 카이사르의 부관인 라비에누스와 붙었다가 깨진다. 다시 말하지만, 전쟁터에서는 카이사르 못지 않았던 부장이자 동년배인 라비에누스다. 갈리아 전쟁에서 유일하게 카이사르가 전혀 신경쓰지 않고 모든 걸 믿고 맡길 수 있는 인물이었다. 아쉬운 건 나중에 벌어진 로마의 내전에서 카이사르를 떠나 폼페이우스의 편에 가담한다는 점이다. ㅡㅡ;;



알레시아의 포위와 함락 ( 기원전 52년 )

상식적으로는 정말 무식한 작전이 아닌가 싶지만, 어쨌거나 갈리족은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항복한다. 나름 지형적으로 높고 튼튼한 방어진을 구축했다고는 하지만, 숫적으로는 엄청난 열세인데다 앞뒤 양쪽에서 공격을 받게되는 형세였다. 게다가 갈리족이 무작정 공격한 것이 아니라 방어진 중 가장 약한 쪽에 집중하기 위해 전담팀을 따로 짠 후에 그곳을 돕지 못하도록 전체적인 공격을 진행했음에도 무너뜨리지 못했다. 전술적으로는 뛰어나지 못했을지 몰라도 로마군 개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장악하는 능력에서 카이사르를 따라올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이후에 로마에서는 20일동안 감사제를 지냈다고 한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





트레베리족을 격퇴하다 ( 기원전 53년 )

카이사르와 라비에누스의 활약상이 정리되어 있다. 트레베리족을 평정하는 라비에누스는 카이사르가 사용한 유인책을 똑같이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 단지 연설할 때 내용만 다를 뿐이었다. " 여러분은 우리 사령관인 카이사르에게 그토록 자주 보여주던 것과 같은 용기를 지금 지휘관인 나에게도 보여주시오. " 라고..




두 번째 라인 강 도하 ( 기원전 53년 )

게르마니아는 일부 부족들에게만 로마의 영향이 퍼진 상태라 여전히 갈리족의 내분을 틈타 병력을 보내고 있기에 카이사르는 다시 한번 라인강을 건너려고 한다.

두 번째 도하인지라 이번에는 카이사르가 여러 풍습과 문화를 기록해 뒀는데, 제법 재밌다.


갈리족의 관습과 제도

싸움을 하는 기사 ( 혹은 전사 ) 계급과 종교를 주재하는 드루이데스 ( 혹은 드루이드 ) 들이 존중받는 계급이며 그밖에는 별반 차이없이 고달팠다고 한다. 미신이 유행했음에도 아폴로, 마르스, 미네르바 등의 신들을 숭배했고, 그 중 메르쿠리우스가 으뜸이었다고 한다.

갈리족은 자신들이 모두 " 디스 " 라는 한 아버지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는데, 디스는 저승의 신 플루토의 다른 이름이라고 한다.


게르마니족의 관습과 제도

싸움 잘하기로 유명한 게르마니족은 우유, 치즈, 육류를 주로 섭취하고, 주변에 넓은 황무지를 갖고 있는 게 자랑이었다고 한다. 성문제에 대해서도 개방적이었단다.

두 뿔 사이에 또다른 거대한 뿔이 있다는 소와 엘크라고 하는 넘어지면 못 일어나는 동물, 그리고 난폭한 들소를 봤다고 카이사르는 주장하는데, 제일 처음 말한 동물이 아마 유니콘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있으나, 비현실적인 얘기라 카이사르가 오해했을 것이라는 게 더 상식적으로 보인다.




에부로네스족의 나라를 초토화하다 ( 기원전 53년 )

카이사르가 전쟁에서 중요한 것 두 가지를 말했다. 전쟁에서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고, 운도 전쟁의 큰 요소 중 하나라고. 오늘날에도 통용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에부로네스족과의 전투는 멋진 지휘보다는 난잡한 세력싸움에 가까웠다. 카이사르는 주변의 우호적인 부족들과 자신의 주력부대를 동원해 가능한한 넓은 지역에서 에부로네스족을 괴롭혔는데, 그 빈틈을 뚫고 다른 외부세력이 로마군의 기지를 급습한다. 로마군 스스로 겁에 질렸다는 표현이 이곳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아마 이때가 신입으로 들어온 병사들이 가장 많은 때로 보인다. 카이사르는 기지로 돌아와 기지 밖으로 나가지 말라는 지시를 따르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서만 지적한다. 그밖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이들이 신참들이라 주력병력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두 번째 라인강 도하도 비교적 성공적으로 끝났다. 신참들의 병사를 좀 잃기는 했어도 나름 전쟁경험을 쌓았고, 정보도 많이 수집했으며, 게르마니족의 영토를 초토화시키며 위세를 떨쳤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


겉표지에는 " I.CAESAR COMMENTARII DE BELLO GALLICO " 로 써있고, 안쪽 첫 페이지에는 " COMMENTARII DE BELLO GALLICO " 로 써 있는 것으로 보아 후자가 원래 책제목이고 전자는 제목 앞에 율리우스 카이사르 자신의 이름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Gaius Iulius Caesar. 카이사르는 코끼리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 을 붙인 것으로 보여진다.

지은이의 설명에 따르면 ' commentarius ' 라는 건 좀 특이한 이름이라고 하는데, 지은이가 추측하기로는 공식적인 보고서와 역사서 집필을 위한 초고의 중간형태로 자신의 기술이 사실에 근거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짐작된다고 한다. 읽는이는 저 단어의 뜻도 모르고, 로마시대의 공식적인 보고서는 어떤 형태의 단어가 쓰이는지 모르고, 자유로운 역사서 집필인 경우에 쓰이는 단어도 모르니 그냥 그러려니 해야 한다. ^^;; 시오노 나나미의 " 로마인 이야기 " 에 이 책에 관한 설명이 나오긴 하는데, 지금으로썬 딱히 떠오르는 부분이 없다.

" 갈리아 원정기 " 는 천병희님의 책 외에 범우사에서 나온 " 갈리아 전기 " ( 박광순 옮김 ) 라는 번역본을 읽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시오노 나나미의 " 로마인 이야기 " 를 읽은 직후여서 화려한 시오노 나나미의 글솜씨에 비해 너무 담백한 문체라 지루한 느낌이 있었으나, 이제 지리, 문화, 전투 등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지니 천병희님의 번역본은 상당히 흥미진진하게 읽혀지고 있다.

어린 시절에는 " 삼국지 ", " 초한지 ", " 수호지 " 등의 동양 고전들을 주로 읽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서양고전에 더 재미를 느끼고 있다. 막연한 호기로움에서 현실적인 역동성을 즐기는 쪽으로 변해가고 있는데, 철딱서니 없는 정신상태는 여전하다. 이기는 편! 우리 편!! ㅋㅋㅋ

갈리아원정기
카테고리 역사/문화 > 서양사
지은이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숲, 2012년)
상세보기



" 갈리아 원정기 " 는 로마가 낳은 유일한 천재라고도 불리는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당시의 갈리아 지역 ( 오늘날의 프랑스 일부, 스페인, 포르투칼 등등의 지역 ) 과 브리타니아 ( 영국 ), 게르마니아 ( 독일 ) 지역에서 전쟁을 수행한 기록이다. 전 8 권 중 7권까지는 카이사르 본인이 썼으면 8권은 카이사르의 막료 (? 해방노예? ) 인 히르티우스가 작성했다고 한다.

기원전 58년 카이사르가 전직 집정관 ( 로마 공화정의 최고관리 ) 자격으로 갈리아 지역에 총독이 됨으로써 갈리아 원정이 시작됐으며, 9년동안 갈리아 지역을 완전정복하는데, 읽다보면 " 삼국지 " 에서 제갈량이 맹획을 7번 잡았다 7번 놓아주는 사건에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적을 때는 2만여명, 많을 때는 4만여명의 중무장 보병들과 대개 몇 천 단위였던 기병 ( 기사계급 ) 들을 데리고, 끊임없는 전쟁을 치뤄내 갈리아 지역과 게르마니아에 로마식 평화를 정착한다.

카이사르는 정치가로써도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장으로써도 이전의 명장들에 못지 않은 전략가였다. 카이사르 이전에 알려진 유능한 무장으로는 병참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피로스,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진출했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로마의 악몽이었던 한니발과 그를 무찌른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등이 있었는데, 이들이 존경받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배우고 따라할 만한 전형적인 전술을 보여줬다는 점이다. 피로스를 보고 그 후대의 무장들은 전쟁터에서 병참기지를 세우기 시작했고, 알렉산드로스를 기억하면서는 기동력과 병력의 배치를 넓게 가져가면서 전투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알게 됐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이들보다 비슷한 시대이면서도 가장 늦게 등장한 인물인터라 앞사람들이 보여준 전술과 참고사례를 활용해 로마에 많은 승리를 안겨줬다.

이렇듯 로마의 희대의 명장이자 희대의 정치가였던 카이사르는 로마나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지만, 오늘날의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는 그 시선이 다르다. 그렇지만, " 갈리아 원정기 " 를 통해 보자면 적어도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인 건 분명하다. 자신의 전쟁기록이자 갈리아 지역에 대한 관찰기지만 실수도 분명히 드러내고, 상황을 굉장히 객관적으로 서술하려던 점이나 불필요하게 과장하지 않았던 점등은 동시대의 다른 인물들에 비해 훨씬 고결해 보이기까지 한다. 실제로는 바람둥이였지만서도.. ^^;;

독일의 황제를 일컫던 카이저 ( Kaiser ) 나 러시아 황제를 가리키는 차르 ( tsar ) 의 호칭은 카이사르에게서 기원한다고 한다. ( 영화 " 유주얼 서스펙트 " 에 등장하는 악당의 이름이 " 카이저 소제 " 이기도 했다. ^^;; ) 이렇듯 강력한 군주나 힘을 가진 호칭을 카이사르에게서 유래하게 된데는 바로 갈리아 원정기에서 보여준 카이사르의 전쟁수행 능력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다시 말하지만, 카이사르는 되도록이면 사실을 중심으로 담담하게 기록하려 했기에 전쟁상황은 삼국지같지만, 그 자세한 내막은 삼국지에 비해 훨씬 현실적이고 인간적이다. 전쟁터에서 보여준 리더십이나 위기극복, 전략적 사고가 음미해 보면 아주 재밌다. 물론 머리에 뿔이 하나 달린 말같은 짐승을 봤다는 황당한 얘기도 있지만.. ^^;; ( 이걸 후대 사람들이 유니콘을 묘사한 게 아닐까 하고 떠들어 대기도 했다. ^^;; )

덧붙이기 : HBO 에서 방영했던 " 로마 " 라는 미니시리즈 드라마가 있다. 그 드라마에서도 " 카이사르 " 가 등장하는데, 갈리아 전쟁을 끝내고, 로마의 내전도 다 마무리한 상황에서 시작된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그의 후계자로 지목된 아우구스투스가 전제군주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진행되는데, 이 드라마를 이끄는 두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 갈리아 원정기 " 에서 따온 것이다.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는 기원후 50년 이전부터 120년 이후까지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플루타르코스 ( PLOUTARCHOS ) 라는 인물이 남긴 비교열전 - 2명의 인물들을 서로 비교하는 형태로 서술했다는 의미 - 이다.

우리나라에 출간된 책 중에서 천병희님의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 BIOI PARALLELOI by PLOUTARCHOS, 2010년, 도서출판 숲 ) 과 이윤기, 이다희 부녀의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 Plutarch's Lives, 현재 6권까지 출간, 모두 9권으로 기획됨 ) 을 읽었는데, 각기 장단점이 있어 정리해 둔다. 시오노나나미님의 " 로마인 이야기 " 도 같이 읽는다면 금상첨화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은 기원후 50년부터 씌여졌기 때문에 그 이전에 살았던 그리스, 로마 시대의 인물들을 다뤘고, 기원후 4세기경에 작성된 " 람프리아스 목록 " ( Lamprias ) 에 플루타르코스의 작품 227개의 제목이 나열되어 있다. 그 가운데 현재 남아있는 것은 50 편의 " 비교열전 " 과 " 윤리론집 " 인데, 이 비교열전이 23쌍의 비교와 4명의 기타 인물에 대한 업적과 평가가 들어있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은 그리스, 라틴 문화권에서만 퍼져 있다가 1559년경에 프랑스어로 번역된 후,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아직 완역판이 나왔다는 얘기는 못들었는데, 천병희님의 작품은 50 명 중 중요한 인물을 그리스, 로마 각 5명씩 뽑아 있는 그대로 번역하셨으며, 플루타르코스가 서술한 " 비교 " 부분이 없다. 천병희님은 서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희랍어검정시험 ( 그리스어 ), 라틴어 검정시험 등을 거치셨기에 매우 세밀하게 번역하시고 각주에 자신의 견해도 달아두셨다.

예를 들자면, 카이사르의 유명한 대사인 " 브루투스! 너마저 " 는 셰익스피어의 " 줄리어스 시저 " 라는 책에 등장한 말이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의 그리스어 판에는 " 내 아들아! 너마저? " 라고 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 플루타르코스 2010년판 551쪽 아래 각주 ) 이런 부분들은 시오노나나미의 " 로마인 이야기 " 의 내용들과 비교해 보면 아주 재밌다.


플루타르코스영웅전
카테고리 인문 > 인문고전문고
지은이 플루타르코스 (숲, 2010년)
상세보기



반면 이다희씨의 " 플루타르크 영웅전 " 은 이제는 돌아가신 이윤기님의 기획으로 9권에 걸쳐 발간할 예정이라는데 지금까지 6권이 나와있고, 꽤 많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삽화도 풍부하고, 쌍으로 이루어진 인물들의 경우, 플루타르코스가 남긴 " 비교 " 부분이 들어있어 재밌긴 하나, 플루타르코스가 남겼던 내용 중에 번역하는 이가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뺀 것이 아쉽다.


플루타르코스영웅전.6
카테고리 역사/문화 > 신화
지은이 플루타르코스 (휴먼앤북스, 2012년)
상세보기


천병희님이나 이다희씨 모두 권위있는 영역본인 " 페린 " 의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을 주자료로 번역했는데, 이 영문판은 그리스어와 영어가 병행되어 들어있다. 천병희님은 그리스어 텍스트를 중심으로 여러 다른 자료를 참고하셨다고 한다. 이다희씨의 경우에는 영어 텍스트를 참고로 한 듯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시오노나나미의 " 로마인 이야기 " 와 천병희님의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이다희씨의 번역본 순으로 읽는 게 재미있어 보인다. 천병희님의 번역본은 이미 2006년에 " 그리스 영웅들 ", " 로마의 영웅들 " 로 따로 번역된 책들이 있었는데, 2010년에 다시 합쳐져서 출간된 것이다.

이렇게 추천하는 이유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기원전 800년부터 기원후 50년 이전까지의 인물들인데, 시간순서대로 비교한 것이 아니라 업적과 성격 등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중심으로 서술해 놓은 터라 처음 읽는 이들에게는 혼란스러운 부분이 있다.

먼저 " 로마인 이야기 " 를 통해 주요 인물들이 살았던 순서와 큰 사건들을 머리 속에 배치한 후, 천병희님의 깊이있는 번역으로 재미를 만끽하고, 이다희님의 번역본으로 뒷맛을 정리하면 될 것 같다. 몇몇 역사적으로 크게 중요하지 않은 인물들은 이다희님의 번역에서 만날 수 있다.


시오노나나미의 현대적인 사고방식에서 바라본 당시의 영웅들과 사건들을 플루타르코스의 시선에서 비교해볼 수 있어 재미있었는데, 이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 에 대한 평가와 가치는 천병희님의 번역본 앞쪽에 일목요연하게 나와있다.





평소 이 50 명의 인물들에 대해 헷갈리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기에 천병희님의 책을 참고로 모두 적어둔다. 가장 멋있었을지도 모를 스키피오전 ( 한니발을 자마대전에서 이긴 로마의 명장 ) 이 사라진 게 못내 아쉽다. ^^;;


1. 테세우스 (  Theseus ) - 로물루스 ( Romulus )

2. 뤼쿠르고스 ( Lykourgos ) - 누마 ( Numa )

스파르테의 입법자 뤼쿠르고스는 대체로 기원전 800년경에 활동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실존 인물인지 혹은 동명이인의 활동이 한 사람에게 몰린 것인지 의심되기도 한다.

3. 솔론 ( Solon ) - 푸블리콜라 ( Publicola )

솔론은 기원전 640년경부터 560년경까지 활동한 아테나이의 귀족이다.

4. 테미스토클레스 ( Themistokles ) - 카밀루스 ( Camillus )

테미스토클레스는 기원전 524년경부터 459년경까지 활동한 아테나이의 정치가인데, 살라미스 해협에서 페르시아의 함대를 무찌른 것과 이 전쟁 후 누명으로 쓰고 페르시아 왕에게 넘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5. 페리클레스 ( Perikles ) - 파비우스 막시무스 ( Fabius Maximus )

페리클레스는 기원전 495년경부터 429년경까지 활동했으며 아테나이를 그리스의 정치, 문화의 중심으로 만들어 20년간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기간을 페리클레스의 황금시대라고도 한다.

6. 알키비아데스 ( Alkibiades ) - 코리올라누스 ( Coriolanus )

7. 티몰레온 ( Timoleon ) -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 ( Aemilius Paulus )

8. 펠로피다스 ( Pelopidas ) - 마르켈루스 ( Marcellus )

9. 아리스테이데스 ( Aristeides )  - 대(大) 카토 ( Cato Maior )

최초의 라틴어 산문작가인 마르쿠스 카토는 기원전 234년부터 기원전 149년까지 살았으며 한니발을 이긴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10. 필로포이멘 ( Philopoimen ) - 플라미니우스 ( Flaminius )

11. 퓌르로스 ( Pyrrhos ) - 마리우스 ( Gaius Marius )

12. 뤼산드로스 ( Lysandros ) - 술라 ( Sulla )

13. 키몬 ( Kimon ) - 루쿨루스 ( Lucullus )

14. 니키아스 ( Nikias ) - 크랏수스 ( Crassus )

15. 에우메네스 ( Eumenes ) - 세르토리우스 ( Sertorius )

16. 아게실라오스 ( Agesilaos ) - 폼페이우스 ( Pompeius )

17. 알렉산드로스 ( Alexandros ) - 카이사르 ( Iulius Caesar )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는 기원전 356년부터 323년까지 활동했으며,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쳐들어간 바로 그 알렉산더 대왕이다. 아드리아해에서부터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으며, 기원전 323년 6월 10일에 32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18. 포키온 ( Phokion ) - 소(小) 카토 ( Marcus Minor )

19. 아기스 ( Agis ) / 클레오메네스 ( Kleomenes ) - 티베리우스 ( Tiberius ) / 가이우스 ( Gaius ) 그락쿠스 ( Gracchus ) 형제

20. 데모스테네스 ( Demosthenes ) - 키케로 ( Cicero )

21. 데메트리오스 ( Demetrios ) - 안토니우스 ( Antonius )

22. 디온 ( Dion ) - 브루투스 ( Brutus )

23. 아라토스

24.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5. 갈바

26. 오토

WRITTEN BY
리컨
영화를 즐기는 취미를 기록한 블로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