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얼마 전 타계한 " 로저 에버트 " 가 스스로 선정한 위대한 영화들에 대한 리뷰모음이다. 영문판으로는 3권까지 나왔지만, 지금 번역된 것은 2권까지다. 한권당 대략 100 편 정도로 보이는데, 2003년에 나왔던 " 위대한 영화 " 1권은 90편이었다. 10편이 빠진 이유는 이 영화들이 당시에 우리나라에서 보거나 구하기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2권이 번역된 2006년에 때를 같이해서 10편이 마저 추가된 " 위대한 영화 " 1권이 재출간됐다. 아쉽게도 이 리뷰는 2003년판에 관한 것이다.

귀동냥으로 들은 영화 제목들이 3분의 2 정도 되고, 실제로 본 영화들은 20 ~ 30 편 정도에 불과하지만, 퓰리쳐상을 받았다는 로저 에버트의 글솜씨라는 게 어떤 것인지 실감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 저널리즘 분야에서 1975년에 수상했다고 한다.

출처 : YES24



이 책에 등장하는 영화를 모두 봤다면 더 재미있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모두 보지 못했더라도 리뷰들을 읽고 나면 몹시 보고싶은 갈증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사실 이미 본 영화인데도 로저 에버트의 말에 혹해서 다시 살펴봐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니 ( 이게 그런 영화였나 싶은 생각도 곧잘 든다. ) 그의 문장에는 확실히 힘이 느껴진다.

이런 설득력은 로저 에버트가 영화를 볼 때 쇼트 바이 쇼트 ( short by short ) 방식으로 분석하고, 반복해서 살펴보는 그의 노력, 열정 그리고 영화에 대한 사랑에 기반한다. 리뷰 곳곳에서도 밝혀두지만, 머리 속에 담아둔 영화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시 꺼내보면서 곱씹은 뒤에 정리되고, 평가된 것이 이 리뷰들이다.

책소개에는 로저 애버트가 비교적 쉬운 문장들로 핵심을 찌르는 서술을 했다고 하지만, 읽기는 쉽지 않았다. 문장이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그의 의도나 표현을 머리 속으로 짚어가며 읽으려면 꽤나 시간이 소요되는 편이다. 게다가 아는 영화라면 로저 애버트와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해 이것저것 잠시 따져 보기도 하지만, 곧바로 덮어두는 게 상책이었다. ^^;; 번역상의 문제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뉘앙스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해 번역하는 게 쉬운 일이었다면 번역가라는 직업은 아주 하찮아졌을 것이다.

어줍잖게나마 영화리뷰를 블로그에 올리기에 이 책을 읽으면서 로저 애버트에게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야 수십번 다시 보고, 끊어보고 비교해가며 즐겁게 글을 쓸 수 있었지만,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영화를 보고 글을 써야 한다면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한번 듣고 싶었다. 압력이나 돈때문이라면 당연히 쓰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약속때문이라면 상당히 난감할 때가 있었다. 지금으로써는 상상해보는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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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영화를 보면 드는 생각 두가지.
정작 봐야 할 사람은 안본다는 것과 보고 난 후에는 기분이 꿀꿀해진다는 거다. 

" 인권 " 이라는 개념을 세뇌시켜서라도 집어넣어야 할 사람들은 도망쳐 버리고, 인권영화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은 볼 기회가 마땅치 않다. 그나마 보는 사람들 마저도 " 나는 과연 잘 살고 있는 건가 " 하는 막연한 미안함만 느끼기 일쑤다.

" 인권 " 이라는 말은 언제나 뜨거운 감자다. " 인간이 삶을 영유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 " 라는 간단하고 분명한 정의가 있음에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가 항상 분분하기만 한 말이다. 그 논란의 대부분은 우리가 잠시 외면하거나 못본척 하거나 실제로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쳐 버린 습관들 속에 자리하고 있다.

어느 새 " 시선 시리즈 " 가 다섯번째 영화까지 만들어냈다. " 여섯 개의 시선 " 을 마지 못해 본 뒤로 처음인 것 같다. " 시선 시리즈 " 를 모두 챙겨볼 만큼 투철하지도 않고, 주변 사람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는 것도 별로 달가와하지는 않는다. 딱 그정도 수준이지만 살다보면 나도 겪게될 수 있는 일이고, 헛소리는 하고 싶지 않아 기회가 되면 봐두는 편이다. ( 사실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중년남자 솔로가 칙칙한 옷 입고 혼자 헤매고 있다고 다 변태는 아닙니다. --;; )

시선너머_포스터_2011.04.26_01

출처 : 시선너머 블로그


인권영화들에서 중요한 건 역시 메시지를 얼마나 충실하게 전달했는가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에 못지 않게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도 중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아직 흥행영화와 비교해 맞먹을 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없는 듯 보인다. " 방가방가 " 를 인권영화로 간주할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흥행을 위해서인지 인권얘기는 아예 털끝하나 드러내려고 하지않는다. ( 사실 외모로 인해 불평등한 고용기회만 주어지는 것이나, 다양한 인종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로 간의 경계는 인권사안 아닌가? ^^;; )

정직이 최고라고 여기지는 않지만, 그래도 사기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 시선 너머 " 가 웬만한 상업영화보다 재밌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 하지만 그지같은 영화들보다는 훨씬 낫다. ) 144 분의 긴 상영시간도 부담이 크다. 허리 아프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고 나서 후련해지는 영화와 보고 나서 눈썹이 모아지는 영화 중 어떤 걸 고르겠는가? 나같아도 전자다.
여기서 잠시 더 생각해 봤으면 하는 건 뭔가를 보고 나야 후련해질만큼 뭔가 쌓이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과 한번 눈썹이 모아진 후 그 뭔가가 훨씬 덜 쌓여서 후련해질 필요성 자체가 더 작아지는 일상을 살아가는 것 중 어떤 것을 고를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수도 있지 않겠는가? ( 내가 딱 이정도다. 뭔가 강력한 게 부족하다는.. --;; )

그나마 이번 " 시선 너머 " 라는 영화에서는 재밌게 즐길 만한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 바나나쉐이크 " !!
3 편의 힘든 에피소드를 거친 후에야 볼 수 있는 왕거니다. ( 건데기라는 뜻인 줄 알았더니 " 살코기 " 를 뜻하는 은어랍니다. )
혹시 이 에피소드를 더 재밌게 만들려고 준비한 3단 배치 ( 3단 고음 아님 ) 일지도 모르겠지만, " 바나나쉐이크 " 는 그 짧은 시간에도 긴장감, 유머, 익살(?)이 넘친다. 고난이도의 화면빨 없이도 몰입도를 이렇게 높일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보면 안다.




전체적으로 보면 5 개의 에피소드가 다양하면서도 보내주는 시선이 분명하고 다르다.
날 재미있게 해주려니 하고 이 영화를 보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기대를 가졌으면 한다. 
UCC 동영상을 만들어 보고픈 사람들에게도 좋다. 흥행영화를 만든 감독들도 제작여건이 어려우면 원형 그대로를 드러내거나 한계적으로 표현할 수 밖에 없다. 독립영화나 인권영화에서 이런 부분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다. 제작여건 되면 영화가 정말 복잡해진다. 이 경우 둘 중 하나다. 그냥 재미로 보던가 아니면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서 보던가.

이런 인권영화에 대해 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인권영화는 시선을 모두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시선을 늘어놓고 서로의 입장이 되어보려는 것 뿐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도 공감가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분명히 있었다.
( 난시라서 시선이 좀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으니 양해 바란다. --;; )

4월 28일에 10 개 정도의 개봉관을 잡아 상영을 시작한다고 한다. 꾸준하게 상영해야 할 영화이긴 하다.

블로그 : http://blog.naver.com/sisun2011/

이빨 두 개 : 애들이 귀엽다. 되도록이면 요즘 애들 말투를 쓴 느낌?

니마 : 어디엔가는 있을 듯한 탱크스타일 아줌마. 난 우리나라 아줌마삘이 나던데..

백문백답 : 공감 안가는 스토리. 돈은 제일 많이 사용한 듯.

바나나 쉐이크 : 제일 괜찮다. 아마추어 외국인 배우가 꽤 호감가게 연기해 준다.

진실을 위하여 : 고 최진실씨를 추모하는 의미도 있다는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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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훈훈한 미소가 넘치는 코믹 휴먼 드라마.

비평가들은 시큰둥해해도 관객들은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재미가 가득한 영화.


버컷리스트란?
" 죽다 " 라는 뜻의 " Kick the bucket " 라는 말에서 유래한 제목으로, 죽기 전에 해야할 일들을 목록으로 만들어 둔 것을 말합니다. 영화대사 중에도 나오는데, 카터(모건 프리먼)가 젋었을 때, 대학교 교수로부터 받은 과제물이기도 합니다.


평범하지만, 인간적인 소재

에드워드(잭 니컬슨)와 카터(모건 프리먼)은 자신들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고 남은 여생을 좀 더 새롭고 충실하게 채워보고자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 여행계획이 버킷리스트이고, 평소에 해보고자 했으나, 하지 못했던 일들을 서로 기록합니다. 버킷리스트의 항목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인생의 마지막을 정말 가치있고, 소중한 것들을 되돌아 보는 과정으로 영화는 채워집니다.

이런 소재의 영화는 이전에도 많이 만들어 진 적이 있어 그다지 신선하거나 특이한 점은 없지만, 언제나 스스로를 겸손하게 돌아볼 시간을 만들어줍니다. " 버킷리스트 " 는 이렇게 평범해져 버린 소재에 훈훈한 미소를 짓게하는 위트들과 잘 버무려 아주 평범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죽음에 대해, 인생에 대해 어렵고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려 하기보다 차분하고 덤덤한 시각으로 인생의 일부분인양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드러진 영화기법, 화면구성보다 보는 이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려는 데 집중한 느낌이 강해 어떻게 보면 좀 더 정성들인 TV 드라마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고도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훈훈한 일들로 채울 시간이 있음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줍니다.


훈훈한 등장인물들 -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 션 헤이즈..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에게는 강렬한 카리스마말고도 이런 매력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평범해 보이는 영화에 유쾌함을 더해주는 요소가 바로 등장인물들의 훈훈한 인간미입니다. 사실 에드워드, 카터, 토마스(에드워드의 비서) 가 아니라 잭 니컬슨, 모건 프리먼, 션 헤이즈 라는 영화배우들이 그대로 보여지는 듯 합니다. 잭 니컬슨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밉지 않은 짖꿎은 악동의 모습은, 모건 프리먼은 밤색의 간달프같은 모습을, 션 헤이즈는 허당 훈남같은 모습으로 영화 속에서 자신들의 매력을 발산합니다.

자신의 남은 인생을 통보받고서는 카터의 남은 인생도 물어보게 한 후, 빤히 쳐다보는 잭 니컬슨의 모습은 영락없는 악동 그자체입니다. 스카이다이빙, 자동차 경주를 하면서 어린아이들처럼 웃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재미를 만끽하는 데 나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새삼 보여줍니다. 정말 애들같이 귀엽기까지 합니다. ㅎㅎ

이미지 출처 - 버킷리스트 공식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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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뛰어내린 건지 아니면 그래픽처리인지 궁금합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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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화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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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습이 더 웃기던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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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귀여우시죠? 모건 프리먼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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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말년에 이렇게 보내고 싶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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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멋드러지게 보여줬었으면 하는 장면입니다.


아기자기한 구성과 대사들..

평범함 속에 깃든 유쾌하고 아기자기한 설정들이 마치 퍼즐맞추듯 등장합니다. 그들이 작성한 버킷리스트들이 어떻게 하나씩 완수하게 되는지 맞춰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과연 버킷리스트는 끝까지 완료될 수 있을지, 어떻게 맞아떨어져가는지 궁금해하다 보면 절로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또한 의외의 암시들도 숨어있어 반전까지는 아니더라도 참 아이디어를 담뿍 담았구나 싶습니다. 물론 영화평론가들이 보기에는 그닥 새롭지 않겠지만, 일반관객들에게는 반복되는 요소들일지라도 관객들이 만족할 만한 재미는 원하는 만큼 반복해서는 즐기려는 욕구가 있습니다. 마치 아침신문의 재미있는 퍼즐을 맞춰보듯이..

대사 또한 가슴을 울릴 정도는 아닐지라도 인생의 대부분을 지나고 나서 남게되는 평범하고 진솔한 대화와 질문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모건 프리먼이 도에 지나치게 지식인이고, 모범적인 인물로 묘사되어 대사가 약간 작위적인 느낌도 들긴 하지만, 그의 한계도 여실히 보여주어 이를 어느 정도 무마해줍니다. 그래도 인생을 살다보면 한번쯤 던질 수 있고, 내뱉을 수 있는 말들일 것입니다.

최근 사회적인 메시지 영화(Message Movie)나 자극적인 영화에 다소 식상하신 분들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가족영화, 가슴이 뭉클해지는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도 추천입니다.



PS : 영화를 보고난 후 롤링리스트 라는 웹서비스에서 자신만의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합니다. 왜 영화마케팅할 때 이 서비스와 연계해서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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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INDIE SPACE)에서 주최한 이벤트에 당첨되어 전수일 감독님의 "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Time Between Dog and Wolf) " 라는 영화를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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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정보를 전혀 모르고 갑작스레 관람하게 되어 참신하기 그지없었다.(? ^^;;) 영화시작 직전 남여가 등을 보이고 함께 앉아있는 포스터만 잠시 볼 수 있었다. 개봉관 안으로 들어가니 80석 규모(?) 정도 되는 공간에 드문드문 10며명 남짓의 사람들이 앉아있었고, 중간쯤 위치에 자리를 잡았으나, 내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독립영화 초보 관람자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 (영화가 끝난 후, 감독님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 코앞에서 진행하실 줄이야.. 뭔가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중압감이.. --;; 그래도 대화의 시간은 재미있었다..)

영화정보를 하나도 모르고 관람을 하게되니 영화가 끝나도록 중구남방의 생각만 가득했다. 머리가 아파올 때 쯤 허망하게 끝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갑작스레 엔딩크레딧이 올라왔다. 뭘 봤지?


영화제목 -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

제목만 보고는 길들여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관한 로드무비일까 싶었다. 영화포스터를 보면서는 아닌 듯 했고, 사랑얘기를 바탕으로한 길들여진 사람과 길들여지지 않은 사람간의 갈등이 나올까? 싶었다.

영화초반에 힘든 현실에 시달리는 남자 영화감독(김, 안길강 분)과 무엇인가를 찾아헤매는 듯한 " 영화 " 라는 이름의 여자(김선재 분)이 나온 후, 실향민, 철책 등이 자주 등장하길래 혹시 오늘날의 분단현실을 잊고 사는 남한사람과 분단현실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간의 얘기를 개와 늑대에 비유한 건가 싶었다.

그런데, 영화가 왜 이리 허망하고, 뭔가 텅빈 느낌인지..

영화가 끝난 후, 감독님과의 대화시간이 되서야 영화제목의 의미를 알았다. 프랑스에서는 해가지고, 저녁이 되기 직전의 어슴프레한 시간을 개와 늑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불분명한 시간이라고 한댄다. 그래서 하루 중 그런 시간들을 개와 늑대 사이의 시간이라고 한답니다. 아.. 역시 독립영화는 어느 정도는 알고 봐야할 필요성이 있다.


상실감 - 겨울, 실향민, 동생, 고향

이 영화는 제목처럼 자신이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상실감에 젖어 있는 한 남자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북쪽에 제사를 드리는실향민 가족, 동생을 잃어버린 여자, 자신이 살던 집의 위치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감독, 점점 제 모습을 잃어가는 고향, 심지어는 잠깐 등장했다가 산속에서 실종된 등산객들까지 일어버림, 상실, 망각과 연관된 요소들이 곳곳에 보인다. 여자주인공도 정말 동생을 찾고 싶긴 한건지 이리저리 방황하듯 동생을 찾는 모습이라니..

감독님과의 대화시간에 영화제목을 듣고, 주제가 상실에 대한 것이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 저녁무렵 날이 어둑해지는 시간이라면 왜 굳이 겨울에 작업을 했나 싶었다. 그런 시간이 가장 짧은 겨울을 선택하면 촬영이 무척 힘들 것 같았는데, 굳이 겨울에 촬영을 했다면 어떤 의미가 있겠다 싶어 질문했더니 감독님은 겨울이 상실감을 표현하기 좋은 계절이라고 생각했다고 하셨다. 또한 흑백의 색채(색감?)를 좋아하고, 녹다만 눈이 있는 상태를 좋아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영화 중간중간 그런 장면이 보였나 싶다. 심지어 차의 앞유리에까지..

음.. 역시 독립영화는 극단적인 취향이 곳곳에 배여있는 영화다. 나같은 무한솔로는 겨울보다 여름에 더 상실감을 많이 느낀다는.. 겨울에는 그나마 돌아다니는 커플이 적거나 어딘가에 파묻혀 있어 살 만 하답니다. ㅋㅋ(여담이었습니다. --;;)

전수일 감독님은 흑백의 화면 등을 좋아한다고 하셨는데, 혹시 영화에 초반에는 하얀 똥개 한마리가 나오고, 후반에는 까만 똥개가 한마리 나오는데, 이것도 같은 맥락인지요? (두번째 여담이었습니다. ^^;;)

잃어버린 것들

주인공은 처음에는 현실에 도피나 혹은 마지못한 여행으로 고향을 찾았다가 여주인공을 만나서 자신의 고향을 돌아보는 동기를 부여받는다. 결국,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인식하지도 못하고 있다가 다시 찾으려 하나, 만났던 여자(여주인공)도 자신의 고향집도 찾지 못한 채 일터로 돌아간다. 그후, 친척분의 죽음으로 다시 고향을 방문했을 때, 여주인공이 눈밭에서 원을 그리며 마구 뛰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엔딩장면을 마무리한다. 여전히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 쳇바퀴돌 듯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장면인지, 아니면 무한히 원을 그리며 돌다보면 희망을 찾을 수 잇다는 것인지 잘 모르겟다. 하지만, 느낌으로는 전자에 가깝다고 본다. 상실상태의 무한한 반복.. 요즘 서민들 인생이 다 그렇지 않나 싶다. 난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은데.. --;;  나는 그런 상실감을 느끼는데 그리 강하지 않다. 세상에는 견딜 수 없는 감정들도 참 많다고 보는 편이다. 여기서 견딘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혹은 성향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그런 느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의미다. 나름대로는 견뎌냈다고는 하지만 바깥쪽에서 볼 때는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잃어버린 것을 찾으면 복원될른지도 모르겄고..

기억나는 장면

영화 중간에 술에 취한 주인공이 자신의 고향집을 찾지 못해 괴로와하는데, 술집 주인아주머니가 지나가자 손을 붙잡고, 자신의 고향집이 어디냐고 묻는 장면이 있다. 그러자 주인아주머니는 너 취했구나 하며 혀를 차며 돌아선다. 이 장면이 왜 그리 웃기던지..

오늘날의 독립영화의 현실과 비슷한 싶어서다. 독립영화 감독들은 온갖 고생해 가며 다양한 영화, 소중한 영화, 좋은 영화들을 만들다가 술에 쩔어 관객을 붙잡고 우리가 설 곳은 어디요? 라고 묻는다면 관객들이 이렇게 말할 듯 싶다. 너 취했구나? ㅋㅋ

모든 관객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독립영화가 보여주는 너무나 다양한 취향들로 인해 일반 관객들도 독립영화라면 일단 머리써서 봐야할 영화라고 인식하는 게 당연하다고 본다. 나도 그래서 독립영화는 자주 보는 편이 아니다. 그나마 같은 회사에서 영화관련잡지를 발행하니 얻어보게 되고, 읽게 되어 대충 이런 건 보면 내 취향이겠구나 싶은 것들만 우연히 찾게되면 보는 상황이다. 김기덕 감독님의 " 악어 " 라는 데뷔작을 난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게 독립영화라는 거구나 싶었다. 지금도 김기덕 감독님을 독립영화인인 듯 싶다.

뭐 영화인도 아니고, 영화관련자도 아니니 독립영화가 제자리를 잡아야 하네 마네, 어때야 하네 마네 는 말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간혹 만나게 되는 참신한 독립영화들이 좋았으니 립서비스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나 싶어서 포스팅해 본다.

독립영화관 잘 될까?

옛날 중앙극장 자리가 중앙시네마로 이름을 바꾸고, 이번에 인디스페이스 라는 독립영화관이 생긴 듯 하다. 3층만인지 전체가 독립영화관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늘처럼 자주 감독님과의 대화시간이 있으면 재미있겠다. 물론 감독님들은 바쁘시기도 하겠거니와 모든 분들이 다 얘기꾼들은 아니시라 퍽퍽한 면도 있으리라 본다. 유쾌한 전문 진행자들도 양성해야 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 진행하신 분이 못했다는 건 결코 아니다. 대화시간에 보니 너무들 조심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 아직 이런 문화가 익숙하지 않은 듯 하다. 나도 그랬고..

독립영화관의 수익구조로 인해 문 닫은 곳이 있다는 걸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새롭게 오픈하는 곳은 좀 현실적인 운영방안이 있는지 궁금하다. 블로그마케팅의 귀재라도 있지 않는 이상 저가형 마케팅으로는 유지가 어려울 듯 싶은데.. 어쨌거나 잘 되길 빈다. 뭐 나도 월급나오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한두달에 한번꼴로 이런 데 가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특히 익히 들었거나, 관심있는 감독과의 대화시간이 있다면.. 이런 영화는 한번 보면 한두달은 머리가 아프고, 포스팅하는데 손가락도 아프다.

스포일러 : 전수일 감독님은 가수 윤수일, 홍콩영화배우 황추생 을 닮은 듯 하다. 첩보는 사람이 이런 소리 한다고 화내시지는 않으시리라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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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인 가치에 억눌렸던 사랑이라는 욕망의 끔찍한 회상..

애절한 사랑이 공포영화라는 장르를 뒤집어 써야했던 이유..

평소 공포영화장르를 기피했으나, 잘 만든 영화라는 소문이 심심찮게 들려와서 마지못해 본 영화.. 결과는 기대이상..

영화는 1979년 한 대학강의실에서 노교수(정남, 전무송 분)가 오래 전 의료시술 자료화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남이 오래 전에 근무했던 안생병원이 헐린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정남은 그곳을 다시 찾아가 자신의 젊은 시절에 있었던 4일간의 기억을 되짚어 본다. 1942년 경성에서 있었던 이해할 수 없었던 체험들을 영화는 보여준다.

1. 사회적인 가치관과 개인의 애절함.

영화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지만, 1980년대는 학생운동이 그 끝을 향해가던 치열했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민주화 등의 사회적, 정치적 이슈만이 사람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가치관이고, 다수의 민중이 요구하는 정의롭고 불의에 대한 투쟁심만이 인간의 본연의 모습인양 비춰지던 시절이었다. 그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개인의 순수하지만 현실적으로 적절하지 못한 사랑들은 드러내지 못할 치부쯤으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2. 시간의 이동 - 1979년과 1942년

직접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애절한 감정을 액자구조, 옴니버스 형식안에 구겨넣고, 1942년이라는 일제강점시기로 뛰어넘어 보여주고 있다. 이는 1979년과 1942년의 억압적인 사회분위는 통일시키되, 1942년으로 이동시킴으로써 1980년대의 사회적인 흐름에 대한 시선은 배제시키려는 듯 보였다.

그런 사회의 변화에 대해 옳고 그름을 떠나 개인의 순수한 감정을 삐뚤어지게 분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애절한 사랑을 주제로 한 영화가 공포영화라는 장르의 형식과 만났던 이유로 보인다.

3. 공포가 말하는 것은?

기담의 공포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대비되고, 적절한 음향효과의 사용, 곳곳에 배치된 암시와 짜임새있게 편집됨으로써 항상 그 흉폭함을 드러내고 있다. 공포는 사회적인 억압이 얼마나 잔인한지, 혹은 파괴된 개인의 정서로 얼마나 삐뚤어질 수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려는 듯 보였다. 적어도 단지 계절흥행용으로 공포의 형식을 입힌 것은 분명 아니다.

꽃다운 나이에 죽어버린 딸에 대한 애절함으로 자신의 부하직원을 속여 강제로 영혼결혼식을 올려야만 했던 병원장, 새아빠에 대한 사랑과 엄마에 대한 질투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 어린 소녀의 죄책감, 남편의 억울한 죽음을 감당하지 못해 다중인격으로 자신을 제어할 수 없게 되버린 여의사까지 현실적으로는 그들의 억울한 속내를 풀어낼 수 없기에 스스로 파괴되어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애절함을 공포형식을 통해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것으로 보였다. 그만큼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재미적인 요소와 함께 애절함을 떠올려주길 바랬던 것 같다.

문제는 너무 무서워서 애절함이라고 나발이고 한참 지나서야 떠올려보게 됐다는.. --;;

4. Whatever~~ 재미있다.

적어도 보는 내내 재미있기는 하다. 공포영화들치고는 앞뒤맥락이 짜임새있고, 서스펜스영화처럼 곳곳에 복선이 깔려있어 적극적으로 뇌를 움직여야 하는 재미도 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 머리가 텅 비기도 하고(특히 소리에 집중하면 짜증이 날 정도다.) 어린 연기자의 발군의 노력에 감탄사가 나오기도 한다.

아름다운 영상은 많은 의미를 암시하려는 듯 보이지만 몰라도 뭐 어떤가?
우리는 관람자일 뿐..

그래도 하얀 눈은 많은 것을 덮어주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차갑지만 세상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주고 적어도 시각적으로는 따뜻해 보이지 않는가? 그렇게 순수했고 억울했고 애절했던 떠나버린 옛사람들의 마음을 덮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WRITTEN BY
리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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